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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록 Nov 22. 2022

34. 바퀴벌레 같은 삶

그 조차도 생명이거늘

심장이 덜컥 내려앉고 눈은 현관문만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우리에게 알아듣기도 힘든 욕설을 퍼붓고 있는 걸 보니 왠지 문을 열어주면 안 될 것 같았다.


“언니, 누구야? 무슨 일이야? 뭐야?” 동생도 놀랐는지 일어서지도 못한 채 네 발로 기어서 내게 바짝 붙어왔다.


“쉿.” 나는 얼른 일어나서 불부터 모두 껐다. 그냥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생존은 본능적인 걸까. 이유도 모른 채 빈 집처럼 보여야 할 것 같았다.


우리는 나란히 웅크리고 앉아 현관 밖에서의 소동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빠른 속도로 눌려지는 벨소리와 알 수 없는 뜻의 욕설이 확성기를 달아놓은 듯 크게 들려왔다. 세찬 발길질을 버텨내던 문이 부서질 듯 덜컹거리다가 이내 조용해졌다.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집에는 전화기가 없었고 우리는 휴대폰이 없었다. 바깥과 연결된 고리는 애초에 없었다. 그저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다음날도  다음 날도. 그들은 아침이고 낮이고 저녁이고 할 것 없이 매일같이 찾아왔다. 그러다 어느 날은 그들 중 한 명이 거센 목소리로 외쳤다.


“XX, X 같네. 누굴 XX으로 보나. 계량기 돌아가는 거 다 보이니까 빨리 나오라고 이 XXX아!!!!”


그 후부터는 그들이 그들의 할 일을 하러 오면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했다. 하루 종일 창문 밖을 망보고 있다가 검은 차 한 대가 길가에 세워지면 우리는 빠른 속도로 두꺼비집을 내리고 어둠 속에서 잠자코 기다렸다. 마치 바퀴벌레가 갑자기 켜진 불빛을 피해 몸을 숨기듯. 몇 시간이고 화장실도 쓰지 못하고 그저 모든 감각을 닫고 기다렸다.


그들은 아주 성실하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찾아왔다. 어느 순간부터는 두드리고 발로 차는 것도 모자라 문 밑으로 커터칼을 쑤셔 넣으며 위협을 하거나 현관 밖에서 자장면을 시켜먹고 남은 음식을 던져 과녁 맞추기를 하면서 낄낄대거나, 현관문에 빨간펜으로 욕도배해놓고 가곤 했다. 나와 동생은 그들이 가고 나면 그 낙서를 손톱으로 긁어내고 걸레로 닦았다.


그러다가 하루는 진짜 경찰이 찾아왔다. 안타깝게도 검은 남자들로부터 우리를 지켜주기 위해 온 것은 아니었다. 경찰과 동행한 사람은 어떤 은행의 직원이라고 했다. 그 직원은 몇 안 되는 우리 집 물건들에 빨간 종이를 붙여놓고 갔다. 절대로 제거하면 안 된다는 말과 함께 그들은 사라졌고 그 후로는 검은 남자들도 오지 않았다.


빨간딱지를 머리맡에 붙인 채 잠을 청했고, 빨간딱지로 가려진 티비를 보고, 빨간딱지를 반찬삼아 밥을 먹었다.


계속 이렇게 바퀴벌레처럼 살 순 없었다.


벗어나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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