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외자의 비애
생물 선생님 우스갯소리에 모두 배꼽이 빠져라 웃고 있었다. 갑자기 교실 문이 벌컥 열렸다. 헤벌쭉 입을 벌리고 있는 나를 쳐다보며, 담임선생님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버지 돌아가셨다."
슬픔만은 아닌, 처음 겪어보는 감정이었다. 상실감이라는 존재론적 감정을 해석할 수 있는 언어가, 열네 살 아이에게는 없었을 것이었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발걸음이 땅에 닿는 순간이 자꾸 어긋났다. 옆구리에 끼인 가방은 헤벌쭉 벌어진 채 기울어져 금세라도 책이며 도시락이 쏟아질 것 같았다. 집으로 가려면 버스를 타야 했지만 이미 정류장을 한참 지나쳐버렸다.
또 한 정류장을 지나친 다음에야 정신을 차렸다. 열흘 전 시내 큰 병원으로 아버지를 보러 갔었다. 병원 냄새가 코를 찌르는 병실에 들어설 때부터 목이 메기 시작하더니 병상에 누운 아버지를 보자마자 그렁그렁 눈물이 차올랐다. 병상 옆에 있던 신문으로 서둘러 얼굴을 가렸다. '컬러 TV時代의 개막'이라는 세로글씨가 아른거렸다. 신문에 얼굴을 파묻고 아무 말이 없는 막내아들에게, 아버지는 힘없이 말끝을 흐리며 말했다.
"용기를 가져..."
아버지의 유언이 되어버린 '용기'라는 말이 눈물로 범벅이 되어 쏟아졌다.
멈출 만하면 나오는 눈물 때문에 하염없이 걷노라니 해 질 녘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산자락 연립주택 우리 집 현관에는 벌써 조등이 달려 있었다. 아버지가 누워있던 안방에 빈소가 차려졌고 어머니가 교복을 수선할 때 쓰는 재봉틀이 있던 거실에는 펑퍼짐한 상들이 놓였다. 형과 나는 장의사가 가져온 상복을 입고 두건을 썼다. 내가 본 사람 중에서 머리가 제일 컸던 형은 두건이 맞지 않았는지 두건 양쪽을 가위로 잘라 썼다. 정수리에 어정쩡하게 걸터앉은 앙증맞은 두건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문상객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문상객과 맞절을 할 때마다 형이 쓴 두건이 훌러덩 벗겨졌다. 처음 한두 번은 곁눈으로 보이는 '그 광경'이 웃음보를 자극하지 않았다. 그런데 단단히 눌러쓴 다음에도, 떨어질 듯 말듯하다가 똑 떨어지는 두건을 보자 급기야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그날 밤늦게까지 맞절을 하는 내내, 터진 웃음보를 틀어막느라 병상에 누운 아버지의 모습과 유언을 떠올렸고, 터진 눈물보를 틀어막느라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생물 선생님의 말, 남녀의 생리현상 차이에 대해 생각했다. 태어나서 가장 난감하고 고된 하루였다.
요의가 느껴져 잠이 깼다. 아직 사위가 어두웠다. 잠잠해진 웃음보와 눈물보에 안심했다. 잠이 달아나지 않도록 조심하며 일어났다. 북새통이었던 화장실에는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화식 대변기에 앉아 소변을 보았다. 엉덩이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볼 일이 끝나고 대변기 앞에 있는 신문지 조각을 구깃구깃 부드럽게 만들어 뒤처리를 했다. 한 차례, 두 차례. 신문지를 접어가며 마무리를 하고 있는데, 신문지 위에 무언가 묻어 있었다.
'까맣고 꼬불꼬불한 터럭이다!'
순간 나는 그것이 엉덩이에서 나온 것임을 직감했다. 동시에 '울다가 웃으면 똥구멍에 털 난다.'는 말이 떠올랐으며, 온종일 울다가 웃던 어제 일이 생각났다. 어제와는 전혀 다른 감정, 두려움으로 내 얼굴은 금세 울상이 되었다. 바지를 서둘러 추켜올리고, 뒤처리 흔적이 선명한 신문지를 펼쳐 들고 엄마가 있는 부엌으로 달려갔다. 나의 두려움을 호소하기도 전에, 엄마의 호된 꿀밤과 꾸지람이 날아들었다.
그 터럭이, 비로소 시작된 2차 성징의 징표라는 것을 알기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았지만, 나의 순진함은 숙명과도 같이 반복되었다. 나는 항상 뒤늦게 알고 뒤늦게 반응했다. 다행히 순진함은 곡해보다는 양해의 대상이었고 상대방의 경계심을 풀게 하는 됨됨이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문제를 유발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삶이 팍팍한 도시 빈민의 막내였던 나는, 마치 전쟁통 아수라장 피난길 아버지 지게 위의 잠든 아이처럼, 늘 열외였고 보호 대상이었으며, 나의 순진함 또한 덩달아 보존되었다. 가족 누구도 나와 의논하거나 내 몫의 일을 주지 않았으므로 나는 집안 대소사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없었고 알아야 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늘 구석에서 국외자의 시선으로 상황을 관찰했고, 사람들의 마음을 짐작했고, 분란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마음을 졸였을 뿐이다.
이런 행태는 밖에서도 이어졌다. 나는 관찰하고 생각할 뿐 현실에 개입하지 않는 국외자처럼 행동했다. 이러한 습성 덕분에 때로는, 미네르바의 올빼미와 같은 통찰력이 발휘되기도 했지만, 이미 낮은 지났고 판은 끝나버린 후였다. 관중석에서 얻은 통찰적 지식으로, 경기가 끝나 버린 운동장에 내려가서 경기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람은 참여함으로써만 성장한다. 온실에서 성장한 다음 참여하는 삶이란 없다. 모든 '열외'는 성장을 가로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