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교향곡 앙드레 지드

아이의 세계는 내 언어 밖에서 자란다

by 맑고온화한

앙드레 지드의 『전원 교향곡』 속 목사는 눈먼 소녀 제르트뤼드를 자신이 이해한 세계로 이끈다.

그가 건네는 언어는 맑고 정제되어 있고, 그 안에서 소녀는 고요한 낙원을 살아간다.


그는 다정했다.

그리고 동시에, 잔인했다.


세상의 비명과 일그러진 그림자를 지운 채, 오직 아름답고 고결한 것들만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건넸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드러나는 것은, 그 빛이 온전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덜어낸 진실 위에 세워진 아름다움은 구원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고립이었다.


그리고 소녀의 눈이 뜨인 순간, 그 낙원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세계가 된다.


책장을 덮은 뒤에도 목사의 사랑은 오래 마음에 남았다.

이상하게도, 한 장면이 떠올랐다.


아이와 질문을 주고받던 순간이었다.

나는 그 대화를 꽤 잘한다고 믿어 왔다. 함께 묻고 답하며 아이의 생각을 끌어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내가 준비해 둔 논리를 조용히 반박했다. 짧은 정적이 흘렀고, 나는 그 순간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짧은 당황이 오래 남았다.


그 안에서 문득, 목사의 모습이 겹쳐졌다.

자유롭게 생각하길 바란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내가 마련해 둔 언어 안에서 자라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과

‘보이지 않는 것은 없다고 믿게 만드는 것’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가깝다.



아이에게 전해주고 싶은 것은, 아름답게 정리된 세계가 아니라 스스로 세계를 읽어내는 힘이다. 눈앞의 말과 장면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를 의심하고 해석해 보는 힘. 그것은 설명으로 길러지지 않는다. 슬픔도, 실패도,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들도 직접 겪으며 자라난다.


목사는 제르트뤼드의 눈을 가림으로써 결국 그녀를 무너지게 했다.

어쩌면 그가 진짜 두려워했던 것은 세상의 추악함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소녀가 스스로 세상을 판단하게 되는 순간, 그 판단 안에 자신도 포함될 수 있다는 것.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가장 먼저 지워진 것은, 그 가능성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두려움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나의 언어가 아닌 자신의 언어로 세상을 읽어가기를 바란다. 언제나 나에게조차 망설임 없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기를.


오늘도 아이와 함께 길을 나선다.

매끄럽게 다듬어진 낙원이 아니라, 내가 미처 그려두지 못한 세계를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