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인격권의 행사 제한
캐릭터 IP 사업을 하다 보면 외부 디자인 전문 업체나 프리랜서에게 캐릭터 개발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브랜드를 만들거나 IP를 키워나가는 과정에서 이런 외주 제작은 필수적인 과정이지만, 의외로 많은 회사들이 계약서 작성 시 중요한 조항 하나를 빠뜨린다. 바로 저작인격권 행사 제한에 관한 부분이다.
저작권에는 두 가지 큰 축이 있다. 하나는 저작재산권, 다른 하나는 저작인격권이다. 저작재산권은 쉽게 말해 ‘돈이 되는 권리’다. 계약을 통해 양도할 수 있고, 사업자가 이 권리를 확보하면 상품화와 라이선스 사업 전개에 필요한 권리 기반이 생긴다. 반면 저작인격권은 창작자의 인격과 연결된 권리로, 법적으로 양도할 수 없다. 공표권, 성명표시권, 동일성유지권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문제는 이 인격권을 계약서에 아무 언급 없이 방치해 두면, 향후 사업 전개 과정에서 외주 개발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발주사인 A가 외주업체 B에게 캐릭터 디자인을 맡겼다고 하자. A가 브랜드에 맞춰 캐릭터 색을 바꾸거나 굿즈로 제작하려는 순간, B가 동일성유지권을 근거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이름을 표기해 달라고 주장할 수도 있고, 변경을 허락할 수 없다고 나올 수도 있다.
실제 현장에서는 이런 문제로 인해 상품 출시 일정이 미뤄지거나, 추가 합의금을 요구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IP 사업의 속도가 느려지고 브랜드 전략이 흔들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런 문제를 사전에 차단하는 방법이 바로 저작인격권 행사 제한 조항이다. 인격권은 양도할 수 없지만, 행사 범위를 제한하는 합의는 가능하다. 쉽게 말해 권리는 인정하되, 아무 때나 주장할 수 없도록 약정하는 것이다. 실무에서는 이를 계약서에 명확히 기재해 둔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다.
제○조(저작인격권의 행사 제한)
1. 을(개발자 또는 외주업체)은 본 계약에 따라 개발된 캐릭터(디자인, 설정, 이미지, 도안, 관련 2차 저작물 포함)에 대한 저작인격권(공표권, 성명표시권, 동일성유지권 등)을 보유함을 인정한다.
2. 다만 을은 본 저작물에 대한 저작인격권을 행사함에 있어 갑(발주자)의 사전 서면 동의 없이 일체의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한다.
3. 을은 갑 또는 갑이 지정하는 제삼자가 본 저작물을 수정·변경·편집·가공·전송·복제·공중송신·배포하는 경우 동일성유지권을 행사하지 아니한다.
4. 을은 본 조의 의무를 위반하여 갑 또는 제삼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 이에 대한 모든 책임을 부담한다.
이 조항 하나만으로도 사업자는 캐릭터를 브랜드에 맞게 자유롭게 수정하고 활용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하게 된다. 외주 제작자가 권리를 근거로 사업을 제약할 가능성도 크게 줄어든다. 결과적으로 캐릭터의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사업 전개 속도가 빨라진다.
다만 이 조항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IP 권리 구조를 정리할 때는 저작재산권 귀속 주체를 명확히 하고, 활용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리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계약 대상이 되는 결과물 목록도 부속 문서로 정리해 두는 편이 좋다. 이런 기본적인 권리 설계가 되어 있어야 IP가 하나의 자산으로 기능할 수 있다.
실무자 입장에서 보면 저작인격권 조항은 계약서의 디테일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 사업 현장에서는 브랜드 주도권을 지키는 핵심 장치가 된다. 초기에 몇 줄의 문장을 계약서에 넣어두는 것만으로도 향후 수천만 원의 분쟁 비용을 막을 수 있다. 스타트업이든 중견기업이든, 외주 계약서를 작성할 때 반드시 체크해야 할 부분이다.
캐릭터 산업에서 권리는 곧 힘이다. 디자인이 아무리 뛰어나도 권리 정리가 허술하면 사업은 쉽게 흔들린다. 저작인격권 행사 제한 조항은 이 권리를 안정적으로 지키기 위한 첫 번째 안전장치다. IP 사업을 준비한다면, 이 조항만큼은 반드시 계약서에 담아두는 습관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