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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ian Jul 04. 2022

한국말 잘하는 한국 사람

영어보다는 모국어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

매년 넘쳐나는 한국 관광객으로 가득한 필리핀의 작은 섬 세부.


인천~세부 비행시간 약 4시간 30분, 코로나 이전에는 하루 동안 운행되는 직항이 20여에 달하고, 세부 막탄 국제공항에 도착 후 발권 및 수속 이륙에 이르기까지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승객이 한국인으로 북새통을 이루던 곳이다. 가까우면서 저렴한 가격에 규모 있는 리조트까지 이용 가능하니, 이국적인 해외를 만끽하고 싶은 아이를 동반한 가족 여행객에겐 안성맞춤인 셈이다. 또한 관광지이면서 한국 학생들이 어학연수로도 인기가 많아 경상남도 세부 시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이다. 한국인 전용 편의점과 음식점이 있을 정도로 이곳이 한국인지 외국인지 가끔은 분간이 어려울 정도의 생활 편리성이 높아 음식이나 언어로 인한 여행 스트레스를 받는 이들에게는 최고의 여행지이다. 세부아노어라는 언어도 쓰이며, 타갈로그어 외에도 스페인어, 영어가 쓰이고 있다. 필리핀 내에서 스페인어가 아직도 제대로 쓰이는 거의 유일한 곳이다.

<고급 리조트가 모여있는 막탄 섬, 끝없이 시원한 수영장 너머로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그저 바라만 봐도 날아갈 듯 하다. @vivian>

 생애  해외 여행지. 아무도 나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익명성이 주는 자유로움이 어찌나 짜릿하고 날아갈  한지, 누구나  여행지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것이다.  자체로도 두근두근 설레었던 이곳.  왠지 한국에서는  번도 시도조차 못했던 비키니에 짧은 쇼트 팬츠 차림으로 당당히 길거리를 활보하는 것도 좋고 그냥 처음이라 모든   좋았던 그런 곳이 세부였다. 그만큼 나에게 세부는 명칭만 들어도  당시의 설렘이 다시 찾아와 가슴을 방망이질하게 만드는 특별한 추억의 장소이다.  해외 여행지가 누구에게나 그러하듯 세부도 고작 4 5일이라는 짧디 짧은 일정이었지만 마치 천국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뭉게뭉게 폭신한 구름을 뛰어놀다 다시금 인간계로 하루아침에  하고 떨어진 신세로 전락한 비참함에  달간 눈을 감고는 그때의 이국적인 풍경과 자유로움을 다시금 회상하고자 나름의 노력까지 했다.


그렇게 그리워하고 그리워하다 일상으로 복귀하고 항상 그러하듯 갈등, 연애, 헤어짐, 취업도전, 실패 등의 일련의 사건들과 파리  뉴욕이라는 굵직굵직한 대도시를 탐방한 이후로  첫사랑은 점차 잊히고 메모리에서 점유율이 사라질 무렵 나는 이곳을 다시 찾게 된다. 그것도 여행이 아닌 직접 살기 위해 , 17 만의 귀환이었다.

시원하게 뻗은 야자수와 탁트인 바다 전경을 자랑하는 막탄 샹그릴라 @vivian


차이점을 꼽자면 그때는 청춘이었지만 이제는 30대 중반의 아이 둘의 엄마로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내 주된 일과는 아이들과 신랑 케어하면서 가끔 외국 친구들이랑 차를 마시거나 주말이면 근방으로 여행 가는 것이었는데, 1-2개월을 지나 일 년가량이 지나자 점차 눈에 들어오는 현상이 생겼다. 바로 영어만 유창한 한국 아이들이다. 한국 아이들인데 왜 한국어를 못하는 걸까? 혹시 엄마 아빠가 영어를 너무 잘하는 나머지 집에서도 한국어 대신 영어만 하는 것일까? 대체 왜일까? 그 이유를 찾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세부는 미국, 호주, 캐나다 등이 영어권 국가와 더불어 한국인들에게 어학연수로 인기가 많은 곳 중에 하나다. 물론 가장 큰 매리트를 꼽자면 다른 영어권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학비와 물가를 꼽을 수 있다. 더군다나 세부는 막탄이라는 섬이 가까워 부담 없는 가격에 해양 액티비티, 휴양까지 즐길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를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한국 엄마들이 필리핀을 찾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바로 한국에서는 꿈도 꿀 수 없었던 베이비 시터, 가정부, 드라이버까지 20만 원도 안 되는 비용으로 고용할 수 있으니, 이제 나도 사모님이다. 이곳이 지상낙원이다.


아이들은 한국에서 비싼  주고 학원을 아무리 보내봐야, 문법이나 어휘는 향상될지언정, 부모님 세대를 걸쳐 평생의 숙원 사업이었던 솰랴~솰랴 스피킹은 어째 나랑 별반 다르지 않거나, 해봐야 교과서 앞장에 나오는 기초회화뿐이었는데, 여기서는 발음이야 어쨌든 간에 갑자기 영어로 말을 시작하니 절로 어깨춤이  정도로 신나고, 아이들을 보내고  삼삼오오 한국 엄마들과 어울려 다니며, 마사지에 한국에서는 엄두도  냈던  고급 스포츠인 골프까지 즐기는 우아한 일상을 보낸다. 내가 없어도 살림은 아떼가, 아이는 아야가, 아이 픽업은 드라이버가 해주니 천국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리라.


처음 이곳에 오기  한국 엄마들은 불안반 설렘 반으로 온라인 카페나 블로그 SNS 통해 이곳의 정보를 얻고 공유한다. 문제는 그들만의 세상이라 처음 공유했던 정보가 그대로 돌고 돈다는 것이다.  선발주자가 남긴 정보에 대한 검증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직접 가보기 전엔 믿을 것이라곤 온라인 상의 정보가 전부이니 어느새  정보는 바이블이 되어 널리 널리 퍼지게  것이다.


대표적인 바이블의 내용은 무조건 집에  해주는 사람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주로   살기나   살기로  식구들이 주를 이루며  달에 인건비 20 원도  되는 금액으로 입주 도우미가 생기는 셈이니 한국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에 아무런 의심 없이 합류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15-20 원가량의 월급을 받는 직원들에게 한국에서 제공받던 서비스를 절대 기대해서는  된다는 점이다. 상위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가난이 대물림되면서 하우스키퍼든 유모든 먹고  정도의 급여를 받으며 하루 벌어 하루 먹거나 이마저도   벌어 나머지 시골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내주는 실정이니, 그냥  그대로 아이를 보는 보기만 하는 역할이라고 기대하면 크게 실망까지는 하지 않을  같다. 물론 타고난 심성이 아이를 너무 좋아하고 애정을 쏟는 내니도 간혹 있긴 하지만 그런 친구들은 이미 필리핀에서 나고 자란 상류층 가족들에게 소속되어 아이들이  때까지 지내다 결혼할  부모처럼 혼수나 도움을 준다고 한다. 때문에 괜찮은 내니를 구하는  아프리카 사막에서 팥빙수를 찾는 미션 인양 어렵다.


하지만 맘 카페를 통해 한국 엄마들끼리 떠나려는 가족 혹은 건너 건너 소개를 받아 구해지기만 하면 검증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이게 웬 떡이냐 하는 심정으로 모셔가기 바쁘다. 게다가 현지 평균 급여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말이다. 급히 먹은 떡은 체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필리핀에 온 아이들은 학교에서, 혹은 내니와 주로 시간을 보내며 영어 실력은 늘어나는 반면,  상대적으로 부모와의 시간은 점차 잃게 되면서 자연스레 한국어를 사용할 기회도 사라지게 된다. 한 달 살기 혹은  단기간만 지내는 아이는 사실 큰 영향을 받지 않지만, 많은 케이스가 한 달 살기로 와서 두 달, 6개월, 일 년, 졸업까지 하는 경우로 이어진다. 한국에서는 누리지 못했던 편리한 삶과 사시사철 따뜻한 날씨에 무엇보다 우리 아이의 유창한 영어 실력을 이제 와서 한국에 돌아가서 도루묵으로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많은 부모가 한국에 가서 지금 영어를 다 까먹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물론 영어를 잘하는 건 정말 요즘처럼 국경 없이 전 세계를 오고 가기 쉬운 시대에 필수이며, 이로 인해 아이의 장래에도 더 많은 선택의 폭이 생긴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전에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모국어인 한글의 기초 바탕이 탄탄하게 쌓여야 한다는 것이다.


 말은 한창 자라는 혹은 한국말도   아이들에게 영어가 만국 공통어 인양 강조하고 한글을 배우기 이전에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 대단한 것인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모국어를 바르게 구사하지 못하면, 깊이 있는 사고를 하지 못하며, 논리력도 부족해지며, 결국은  외국어도 어렵게 된다. 내가 항상 하는 말이 있는데 미국에 가면 거리의 노숙인도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데, 한국인이 한국말은  하면서 영어만 유창하면 사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이다. 차라리 한국말이 유창한 편이 훨씬 낫다. 국내의 유수 기업에서도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필요하지 영어만 잘하는 사람을 채용하진 않는다.  


간혹 해외에서 만난 한국 아이들 중에 부모가 영어가 유창한 편도 아니기에 집에서 한국말을 사용하는데도 불구하고, 한국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해외 학교에서 대학 진학 이전까지 많은 시간 보낸 케이스에 해당되는 아이들은 한국말 표현에 상당한 어려움을 느꼈다. 가장  문제는 부모와의 소통에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저학년 혹은 중고등학교에 이민을  가정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겪는 언어의 불편과 불안감을 해소하고자  가족이 동원돼서 집안에서도 영어 사용을 강행하는 케이스가 적지 않다. 하지만 해외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은 반드시 목숨 걸고 모국어를 가르치고 지켜내야 한다. 모국어에 대한 이해와 사용은 결국 깊은 소통과 정서의 교류로 이어져 부모와 자식 간의 견고한 관계 형성에 영향을 끼친다.


같은 공간, 동일한 인물과 대화를 해도 그 언어에 대한 깊이에 따라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얼마나 큰지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효과에 대해 주장해왔다. 살면서 만나는 다양한 인물 속에서 가족이라는 특별한 관계를 통해 아이들은 염려, 걱정, 위기를 좀 더 수월하고 넘기고 단단해질 수 있는 것이다. 부모와 얼마나 안정적인 관계가 형성되느냐에 따라 아이는 그 안에서 올바른 사회화 과정을 경험하고 이를 통해 성장하면서 주변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지낼 수 있다. 이 관계의 형성에 있어서 공통의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인 셈이다.


정말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라면 나중에 아이가 커서도 깊은 소통과 가족관의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모국어는 한국어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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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영어만 잘하는 한국 아이로 키우고 싶은가요?

아니면 영어도 잘하는 한국 아이로 키우고 싶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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