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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다락방 Jan 09. 2023

장날, 그 행복한 속삭임 호떡과 어묵

꿀 호떡이랑 어묵 너 때문이야

   

어릴 적 내 별명은 먹보였다. 먹보가 된 사연이 있다. 나는 아들, 딸, 딸 삼 남매 중 막내로 자랐다. 할머니는 엄마가 임신했을 때 점쟁이가 아들이 태어날 거라고 했다며 좋아하셨다. 아들인 줄 알았는데 딸이 태어나자 할머니는 어린 나를 한 번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엄마가 말했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라고는 매일 오빠만 할머니 방으로 불러 무언가를 먹였던 것 같았다. 그게 무엇인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 맛있는 걸 먹은 것 같은 오빠도 지금까지 그게 무엇인지 기억하지 못하는 걸 보면 아마 엄청 귀한 음식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오일마다 장이 섰는데 나는 장날이 가장 싫었다. 매번 장에 가고 싶다고 울고불고 떼를 써도 할머니 손에는 늘 오빠 손만 덩그러니 잡혀있었다. 한 번도 할머니를 따라 장에 가본 기억이 없다. 매정한 할머니는 결국 눈을 감으실 때까지 오빠만 사랑했고 나는 그런 할머니를 미워하기만 했다. 할머니의 일편단심 오빠 사랑 때문에 오빠에 대한 감정도 좋을 리가 없었다. 늘 좋은 것, 맛있는 것은 오빠 차지였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본능적으로 먹을 것에 집착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먹보가 되었다. 그렇다고 먹거리가 부족했던 집은 아니었다. 아빠는 외출 후 돌아오는 길에 빈손으로 돌아오신 적이 거의 없었다. 어느 날은 양념통닭 한 마리를 사 오셨고 겨울에는 호빵 같은 간식을 꼭 사 오셨다. 꿀맛 같았던 그 시절 야식의 맛이 아직도 생생하다.     


할머니께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했던 사랑을 막내라는 이유로 엄마 아빠께는 듬뿍 받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장날마다 내 손을 잡고 장에 데려갔다. 얼마나 가고 싶었던 장날이었던가. 엄마 따라 버스를 타고 장에 가는 길이 꼭 놀이동산에 가는 기분이었다. 시장에 도착해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의 양손은 반찬거리가 담긴 검은 봉지로 가득 찼다.


장을 다 본 후 마지막에 들리는 엄마와 나의 코스가 있었다. 바로 호떡집이었다. 호떡집에 불이 났다는 말을 장날에 알게 되었다. 줄 서서 먹는 호떡. 달콤한 황설탕이 밀가루 반죽 밖으로 삐져나와 뜨거운 기름에 튀겨져 바삭바삭한 꿀 호떡과 꽃게 육수에 불어 터진 어묵을 입에 넣는 일은 왜 내가 그토록 장에 가고 싶어 했는지, 그 알 수 없는 끌림의 이유가 되었다. 오빠는 이렇게 맛있는 걸 장날마다 먹었다는 거지? 흥! 칫! 뿡이다!


오일마다 돌아오는 장날, 엄마가 물어보는 “장에 같이 갈래?”가 나에게는 행복한 속삭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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