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에 절이다 만 배추
외국 생활 2년, 어린이 영어지도사, 유치원 영어 강사라는 경력을 내세워 아이들에게 엄마표 영어를 시도했다. 몰타에 다녀왔다고 하면 다들 아이들 영어를 어느 정도 준비한 상태로 몰타행 비행기에 올랐는지 궁금해한다. 김치를 담가야 하는데 장바구니에 배추만 딱 담아놓은 상태였다. 부가적인 재료도 사고 집집마다의 레시피를 적용해야 맛있는 김치가 되는 법인데 우리 아이들은 배추를 소금에 절이다 만 상태로 몰타에 갔다. 엄마표 파닉스를 마치고 겨우 짧은 문장 정도 읽을 수 있었던 둘째와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 사교육을 시작해 볼까? 하는 마음으로 동네 영어 공부방 3개월 차에 접어든 첫째. 더불어 필리핀 화상 영어를 1년 정도 꾸준히 한 상태였다. 딱 여기까지가 아이들이 배운 영어의 전부였다.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수업에 신물이 났고 더는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 떠났던 몰타였다. 영어가 첫 번째 목표였다면 어쩌면 미국이나 캐나다 등 다른 나라를 택했을 수도 있다. 물론 가성비로 따진다면 필리핀이나 동남아도 선택지에 있었다. 하지만 2021.8월 우리가 떠날 때만 해도 동남아는 코로나 확진자가 엄청났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데 그래도 비교적 안전한 나라로 떠나야 했다. 외국에 사는 친구조차 지금 나가는 건 무모한 도전이라며 만류했다. 하지만 나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느니 사람한테 잡히는 한이 있더라도 세상을 경험하는 청개구리로 살고 싶었다.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충분히 잘 해낼 자신이 있었다.
몰타에서 아이들이 다닌 학교는 입학 시에 레벨 테스트가 없었다. 1학년을 제외하고는 거의 한 학년에 한 반뿐인 몰타 내에서도 소규모학교였다. 학교에 입학해 처음 3개월이 가장 힘든 시기였다. 특히 파닉스만 겨우 떼고 온 둘째가 너무 힘들다며 매일 숙제를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둘째는 12월 생으로 학교에서 안내해 준 입학서류에 보면 year4로 들어갈 수 있는데 자리가 없어 year5로 입학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year5로 들어갔지만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수업내용이 너무 벅찼다. 기본 단어도 모르는 아이가 꽃봉오리, 암술, 수정 등 과학용어를 영어로 어찌 알 수 있을까? 시간표에는 영어, 수학, 과학, 사회 수업이지만 알고 보면 아이는 영어, 영어, 영어, 영어 수업만 하다 집에 오는 것이었다. 또한 열정 넘치는 담임선생님은 매일 엄청난 양의 숙제를 내주었다. 한국 초등학교에서는 거의 숙제가 없었는데 몰타에 가서 숙제 지옥에 빠진 것이었다. 나의 도움 없이는 전혀 숙제를 할 수 없었던 둘째는 매일이 눈물바다였다. 반대로 첫째는 공부방 3개월을 다닌 덕분이었는지 몰라도 수월하게 학교에 적응했다. 거기다 첫째 담임선생님 또한 그다지 학습에 열의가 있지 않은 게 어쩌면 다행이었다. 둘째에 비해 숙제 분량이 현저히 적었다. 매일 영어 한쪽, 수학 한쪽이 끝이었고 그마저도 어떤 날은 없었다. 둘째는 숙제 적은 형이 부럽다며 자기도 그냥 year6로 보내달라고 애원하기까지 했다.
한 달, 두 달 지나니 이제는 나도 더 이상 못 버티는 상태가 왔다. 매일 우는 아이를 달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어른인 내가 봐도 숙제가 너무 심각하게 많았다. 한국학교에서는 학교에서 학부모 단톡방을 만들지 말라고 학기 초에 알림이 오는데 여기는 그런 제재가 없었다. 외국에도 학부모 톡 방이 있었다. 그렇다고 카톡은 아니고 와츠앱이라는 어플을 사용했다. 외국인 친구들은 주로 소통을 와츠앱으로 한다는 걸 몰타에 가서 알게 되었다. 과한 숙제 때문에 둘째 학부모 톡방에도 난리가 났다. 선생님이 이상하다고 하는 학부모부터 캐나다에서 온 친구도 심지어 영어가 모국어인데 숙제하느라 매일 3시간씩 의자에 앉아있다고 했다. 어떤 학부모는 이건 아이들을 학대하는 행위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스웨덴에서 온 열혈 아빠가 결국 선생님께 숙제가 과하다는 학부모 의견을 전달했다. 내심 숙제가 조금이라도 줄어들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이 선생님 보통이 아니었다. 숙제는 선생님의 권한이고 숙제를 통해 학습효율을 높일 수 있다며 학부모 의견에 거부 의사 표시를 했다.
눈앞이 캄캄했다. 9개월을 더 버텨야 하는데 이러다 아이와 나의 관계도 숙제 때문에 금이 갈 것만 같았다. 대책이 필요했다. 몰타에서 만난 지인에게 들은 소식에 의하면 학기 시작 후 첫 3개월이 지나기 전에 학년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얼른 학교장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담임에게도 보냈다. 담임은 처음이라서 힘든 거다, 충분히 잘할 수 있는 똑똑한 학생이니 그대로 5학년에 머물기를 추천했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달랐다. 이렇게 지속하다가는 정말 영어에 대한 부작용이 생길 것만 같았다. 내가 추구하는 영어의 목적은 의사소통인데 이런 숙제 지옥에 아이를 빠트려 영어와 멀어지게 둘 수는 없었다.
결국 아이와 상의해서 4학년으로 내려가겠다는 결정을 하고 두 번째 텀부터 아이는 4학년 교실로 등교했다. 우리나라는 1학기, 2학기로 운영되지만, 몰타는 1 텀(Term), 2 텀, 3 텀으로 구성된다. 학년을 내려가면서 교재도 모두 새로 사야 했다. 우리나라는 교과서가 무상이지만 외국은 교재비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교재비가 문제인가. 아이가 일단 즐겁게 등교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새 책이나 다름없는 5학년 교재를 옷장 구석으로 밀어두었다. 그리고 지난 3개월 동안 아이가 흘린 눈물과 나의 노고도 가슴 한편에 밀어두었다.
4학년으로 등교한 첫날 집에 돌아온 날 아이가 웃었다. 자기는 4학년이 너무 잘 좋은 것 같다며 선생님 말씀도 귀에 쏙쏙 들어온다고 했다. 숙제하면서 신나게 웃는 아이 얼굴을 보니 어색했다. 교과서를 보니 아이가 왜 쉽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4학년은 직육면체, 정사각형 등 이런 용어를 배운다. 즉 어떤 문제를 풀기 위한 기본적인 용어와 기초적인 지식을 습득한다고 치면 5학년은 기초를 활용한 응용을 배우는 난이도의 차이가 있었다. 파닉스만 마치고 온 둘째에게 필요한 것은 기초였다. 이제야 제자리를 찾았는지 아이는 학교생활에 자신감이 붙었다. 매주 있는 단어 테스트에도 늘 만점을 받으니 선생님께서 ‘너는 항상 퍼펙트’라고 했다며 엄마에게 자랑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결국 아이는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탑재하기 시작했고 학교생활도 몰타생활도 더 즐길 수 있었다.
학년을 바꾼 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또한 처음부터 4학년으로 들어갔다면 맛보지 못했을 경험에 의한 달콤함이라고 생각한다. 고난을 겪은 뒤에 맛보는 행복은 고난을 겪은 자만이 알 수 있는 법. 어차피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를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마흔 넘어 내가 얻은 결론은 무슨 일이든 해보고 후회하는 삶에 미련이 훨씬 덜 남는다는 것이다. 아이들도 직접 외국 생활을 겪으면서 한국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을 겪으면서 조금씩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강요나 통제가 아닌 스스로 깨우칠 때 삶은 온전한 방향을 찾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다시 생각해 봐도 몰타에 다녀오길 참 잘했다 싶은 무모하지만, 용감했던 엄마인 나를 조금 칭찬해 본다. 수고했다 우리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