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배는 마루와 같이 마감재의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중요한 공정이다. 단열도 잘하고 목공이 골조도 잘 잡았는데, 도배에 실패하면 대략 난감이다. 그만큼 계속 눈에 보이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한번 도배를 잘못해서 벽지가 울기 시작하면 처음부터 재시공하지 않는 이상 완벽히 AS하기도 어렵다. 저녁에 간접조명이라도 벽면에 비추면 요철은 더 극대화된다.
우리가 진행한 무몰딩 도배는 최고 난이도를 자랑한다. 몰딩을 기준으로 나뉘어진 벽면을 각각 마감을 하는 기존 도배 방식과는 달리, 몰딩 없이 천장 도배지와 벽 도배지가 곧바로 만나는 무몰딩 도배는 하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 무몰딩 도배를 해달라고 하면 애초에 거절하는 도배사도 많다. 우리는 실력 있는 도배사를 찾기 위해 발품을 많이 팔았다. 퍼티와 초배 작업을 꼼꼼히 진행해 '마치 도장 벽과 같은' 마감 퀄리티를 구현하는 것이 목표였다.
답은 발품, 손품 밖에 없었다. 인기통 카페에서 시공 후기를 꼼꼼히 읽으면서 평판이 좋은 도배팀 리스트를 작성했다. 온라인에서 입소문이 난 업체들은 이미 예약 일정이 몇 달 후까지 잡혀있었기 때문에 현장을 맡아줄 팀을 쉽게 구하기 어려웠다. 을지로 무수히 많은 벽지 가게에 대한 시공 후기도 꼼꼼히 검색했다. 가게가 많은 만큼 후기로만 옥석을 골라내기란 쉽지 않았다. 몇 군데 발품을 팔고 도배 견적을 받은 후, 무몰딩 전문 도배팀을 갖고 있고 합리적인 견적을 제시한 신성벽지와 최종 계약했다.
물론 그래도 불안한 건 사실이었다. 어쨌건 처음 거래해보는 가게였으니까. 우려는 첫날 도배 반장님을 만난 후로 싹 걷혔다. 도배 공정이 시작하는 날 현장에 들어서자 문밖에서 걸죽한 전라도 사투리의 우렁찬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이미숙 반장님과 남자 도배사님 두 분이 아침 일찍부터 와서 퍼티 작업을 하고 있었다.
우리 현장은 목공 과정에서 목수님이 쓰신 에어 타카 자국이 큰 편이라(오래된 에어 타카를 가지고 다니셨다) 도배가 이런 자국들을 잘 커버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또 일부 천장재 마감을 합판으로 했기 때문에 이 부분을 잘 처리하는 것도 중요했다.
위와 같은 주의 사항에 대해 먼저 전달드리자, 이미숙 반장님은 걱정하지 마라며 공정 순서를 브리핑 해주셨다. 총 3일 간 10품의 작업량이 투입되는데, 첫날과 둘째날엔 퍼티와 면정리, 모서리 각재 대기, 초배 등 밑작업이 이뤄지고 실크지 도배는 마지막 날 대부분 진행한다. 우려했던 천장의 합판 마감 부분에 대해서는 퍼티와 초배 작업을 특히 더 꼼꼼하게 작업해주겠다고 하셨다.
몰딩 없이도 깔끔한 벽 마감을 구현하려면 무엇보다 모든 모서리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직각으로 맞아 떨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도배팀은 천장과 벽, 벽과 벽이 만나는 부분마다 기역㈀ 자 모양의 빳빳한 각재를 대서 이른바 ‘칼각’을 살려줬다.
[BOX8] 띄움시공이란?
초배지를 바를 때 벽면 전체가 아닌 가장 자리에만 본드칠을 하여 부직포를 붙이고, 그 위에 풀칠한 벽지를 붙이는 방식. 품이 많이 들지만 깔끔한 마감이 나온다. 실크벽지 등 고급벽지를 시공할 때 많이 쓰인다.
무몰딩 시공을 위해 천장과 벽이 만나는 곳마다 각재를 댄 후 퍼티 작업을 하고 있다.
퍼티 작업 후에는 부직포, 삼중지 등을 활용한 초배 작업을 통해 면 정리를 한 번 더 한다.
초배 작업 후 실크벽지를 붙여나가는 모습. 각 단계별로 꼼꼼하게 작업을 해주셔서 매우 높은 완성도가 나왔다.
결과물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우리는 우리가 설계하고 인테리어업체에 시공을 맡긴 신혼집 인테리어에 도장과 함께 ‘도장 같은 도배’ 작업을 병행했던 적이 있어서 총 견적 300만원에 이 정도 마감 퀄리티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마무리 점검 단계에서 조심스레 거실 천장의 미세한 울렁거림에 대해 말씀드리자 반장님은 짐을 싸고 있던 작업팀을 돌려세웠다. "고객이 만족할 때까지 하는게 맞지!" 호탕하게 외치면서 초배지까지 모두 뜯고 퍼티 작업부터 다시 지시했다. 우리 현장을 다녀간 많은 작업자 가운데서도 단연 돋보였던 장인 정신이었다.
[BOX9] 합지와 실크벽지
보통 도배를 하면 실크벽지와 합지 가운데서 벽지를 선택하는데, 특성이 다르다. 합지는 광폭합지와 소폭합지로 크게 나뉘는데, 종이 벽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시공 후에 이음매가 보일수 있고 오염에 약하다. 광폭합지는 단위 폭이 넓은 것, 소폭합지는 폭이 좁은 합지를 말한다. 당연히 소폭일수록 시공이 간편하고 가격이 저렴하지만, 시공 후엔 광폭보다 이음매가 더 많이 눈에 띈다.
실크벽지는 PVC 코팅이 된 벽지다. 오염원이 묻었을 때 물걸레로 살짝 닦아내면 금방 지워지기 때문에 합지보다 오염에 강하다. 합지에 비해 정교한 시공이 가능하기 때문에 무몰딩이나 마이너스몰딩을 하는 경우 대부분 실크벽지를 이용한다. 다만 실크벽지 시공을 하려면 바탕면이 좋아야 한다. 합지를 시공할 때는 초배지 작업을 한번만 하거나 건너뛰는 경우도 있지만, 실크벽지 시공으로 제대로 된 결과물을 얻으려면 퍼티 작업과 초배지 작업을 곁들이는 것이 정석이다. 당연히 더 많은 시공 시간과 품을 소요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합지 시공보다 더 많은 자재비와 인건비가 든다. 벽지 가격도 합지에 비해 비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