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28.
1호가 말을 할 줄 알게 되고 크리스마스와 산타 할아버지를 인식할 즈음에 (대략 3살 때쯤) 산타 할아버지는 착한 아이들에게만 선물을 주신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와! 효과가 정말 좋았다. 아이가 말을 잘 듣기 시작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현재 1호는 생애 5번째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있다.
받고 싶은 선물은 다행히도 변하지 않아 미리 준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중간에 바뀌면 정말 곤란하다.)
1호가 간절히 바라는 선물은 1호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들을 캐치하는 만화의 장난감 마트이다.
주말에 아빠와 1호, 2호가 합심하여 트리를 세우고, 장식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며 열심히 꾸미는 모습에 흐뭇했다.
1호에게 산타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써서 트리에 걸어두면 할아버지가 편지를 가져가시고 선물을 두고 간다고 말해주었다.
아직 스스로 편지를 쓸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지 못한 1호는 나에게 편지에 쓸 내용을 말로 해줄 테니 종이에 써달라고 했다. 본인이 보고 따라 쓴다는 의도이다.
내가 써준 글씨를 보고 열심히 색종이 2장에 걸쳐 따라 썼다.
뒷장에는 야무지게 본인 이름도 쓰고, 예쁘게 접어 트리 중앙에 잘 보이도록 걸어두었다.
요리조리 자리를 잡더니 "엄마! 여기면 잘 보이겠지?" 한다.
아.. 어쩌면 저리도 귀엽고 예쁠까. 천사가 따로 없다.
그렇게 편지 에피소드는 마무리된 줄 알았다.
다음날 아침. 1호는 눈을 뜨자마자 나를 부른다.
"엄마~~ 내가 글씨를 너무 크게 써서 산타 할아버지가 못 알아보시면 어떡하지?"
"아니야~ 산타 할아버지는 1호가 어떻게 쓰든 다~ 알아보셔~ 걱정 마!"
그제야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밤새 잠이 들어서도 그게 걱정이 됐었나 보다.
산타 할아버지는 착한 아이들에게만 선물을 준다고 해서 엄마 앞에서도 동생에게도 착하게 굴려고 노력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저리도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그 순수함을 제발 가능하다면 정말 오래도록 가져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년이면 1호, 2호 둘이 같이 트리 앞에 앉아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겠지?
이 두 천사를 보면 얼마나 흐뭇하고 예뻐하실까?
나도 어린 시절 산타 할아버지를 믿은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아니, 분명 있었을 것이다.
예전에 (몇 살 때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양말을 걸어놓고 자면 산타 할아버지가 그 양말에 선물을 넣어주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언니, 동생과 함께 양말 서랍에서 진짜 우리 양말을 꺼내 머리맡에 놓고 잠든 적이 있었다.
그때는 집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없어서 양말을 걸어 놓을 곳이 마땅치가 않았다. 그래서 머리맡에 그냥 놓고 잤었던 것 같다.
다음날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양말 속을 확인했는데.. 엄마가 넣어놓은 동전이 몇 개 들어있었다.
그것도 언니는 500원짜리인데, 내건 100원짜리여서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산타 할아버지는 없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게 내 크리스마스 선물의 처음이자 마지막 기억이다.
내 기억이 그것뿐이어서 아이들에게 유별나게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주는 건 아니다.
지금의 나도 크리스마스는 여전히 설렌다.
나에게도 정말 산타 할아버지가 갑자기 한 해 동안 고생했다며 짠~하고 선물을 주실 날을 마음 한편으로는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크리스마스트리를 봐도 설레고, 산타 할아버지 인형을 봐도 기분이 좋다.
지금은 길거리에 캐럴이 들리진 않지만, 집에서 아이들과 캐럴을 들을 때면 내가 더 설레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만 기분 좋은 크리스마스는 아닌 듯하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도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올해는 미리 카메라를 준비해서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마주한 1호의 순간 표정을 사진으로 찍어보고 싶다.
그 사진을 보며 1호가 매년 행복할 수 있도록 남겨줘야지.
그 사진을 찍은 엄마를 그리워할 날도 있겠지.
그리고 1호가 1호의 아이들에게도 엄마가 해준 것처럼 크리스마스의 설렘을 알려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