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호수를 산책하던 중이었다. 호수에 비치된 공용 피아노에 하늘색 모자를 쓴 할머니가 앉았다. 할머니의 곧은 등, 세월이 묻은 손가락이 누구보다 힘차게 건반을 누르며 경쾌하고 아름다운 음들을 만들어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할머니의 피아노 소리에 잠시 멈춰 서서 연주를 들었다. 그날 밤, 나는 자려고 누워 내 뱃살을 건반 삼아 손가락을 놀렸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다.
건반을 누르니까 소리가 난다. 맑고 명랑한 소리. 오랜만에 악기 앞에 앉아 악보를 보고 건반을 누르려니 괜히 겁이 나고 떨렸다. 아니 설레었던가? 흰색과 검은색이 줄지어 있는 딱딱하고 차가운 건반 앞에서 나는 조금 긴장했다. 드디어 첫 수업이 시작되고, 나는 괜히 긴장해서 더 많이 추임새를 넣어 대답하기도 하고 건반을 두 개씩 누르기도 했다. 이상한 소리가 났지만 손가락을 움직여 이어지는 ’음‘, ’멜로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이 기특하고 놀라웠다.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아도 즐거울 뿐이었다.
얼마 전 할머니의 연주는 당차고, 힘이 있었다. 나는 연주자가 건반을 누르는 힘, 타이밍, 박자들이 연주자의 성격과 닮는다고 생각한다. 그저 앉아만 있을 뿐인데도 곧은 등에서 그 할머니 연주자의 힘이 느껴지는 것 같았으니 말이다. 내 연주는 아직 흐릿하고 연약하다. 그리고 오른손보다는 왼손의 힘이 세서, 연주할 때 왼손의 음이 더욱더 잘 들린다. 확실히 양손의 강약을 조절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내 손에도 세월이 묻어가면 양손의 밸런스도 맞춰지고, 더 조화로운 음을 낼 수 있겠지. 내가 건반을 누르는 힘, 타이밍, 박자들이 나다워지겠지. 그 연주를 들은 다른 사람들은 어떤 느낌을 받을지 궁금하단 생각을 했다.
어렸을 때는 포도알을 거짓말로 색칠하면서까지, 학원에서 도망칠 만큼 하기 싫은 피아노였는데, 성인이 되니 재미있다. 잘 안 되는 걸 되게끔 연습하는 것도 재미있고, 선생님이 알려준 대로 하니 ’이게 되네…?‘ 싶은 당연한 깨달음도 얻는다. 어릴 적엔 내게 가치가 없던 것들이 커가니 큰 의미로 내게 다가온다. 나이를 헛먹지는 않았는가 보다.
취미 하나를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단순히 삶에 즐길 거리 하나를 더 만드는 것을 뛰어넘는다. 취미를 진지하게 배우며 살아가는 태도를 배운다.
’죽을 때까지 배움이 있다. ‘는 옛말도 이제는 완전히 이해가 된다.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