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쓰는 편지
나는 너를 도저히 사랑할 수가 없었어.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가 한창 유행이었을 때가 있었어. 잠깐 생각했었어. 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 일 수도 있겠다 싶었어.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도저히 사랑할 수가 없었어. 그렇다고 밉다는 뜻은 아니야. 아니다. 어쩌면 사랑할 수 없으니 미워할 수도 없을 것 같았어. 그저 딱하더라. 넌 대체 왜 그러고 사나 싶다.
칭찬을 해줘야 하는 걸까? 내가 너한테? 왜? 네가 뭘 잘했는데? 마치 내가 엄청 시니컬하고 냉소적이게 된 것만 같아. 나는 너를 제외한 모두에게는 친절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배웠어. 잘 웃고 친절하게 대하라고. 근데 너한테 만은 할 수가 없어. 왜냐고?
나는 너를 세상에서 가장 잘 아니까.
마치 레이저 광선처럼 너를 뚫어지게 바라보기 시작한 순간이 있었어. 그전에는 알아도 모르는 척 했고 봐도 못본체 했어. 널 좋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정말 잘 알고 있었거든. 차라리 모르는척하는 게 훨씬 더 낫다 싶었지.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고 뇌가 비대해지고 몸뚱어리가 추해지면서 나는 알게 됐어. 네가 어떤 사람인지. 너는 절대 너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야. 왜 그럴까 하고 고민도 많이 해봤어. 결론은 늘 같았어. 너의 추함 나약함 더러움 뭐 그런 것 따위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어. 네가 믿는 주님도 찾아봤어. 그분은 너를 구원해 주셨으니까. 어느 날은 눈물이 온 뺨과 옷을 적시도록 울부짖으며 기도도 해봤어( 한두 번이 아니었지). 그러나 나는 너를 결코 용서할 수 없었어. 너의 그 민낯을 난 결코 용서할 수 없었어. 누가 용서해 주기를 바라지도 않았어. 그것은 내가 용납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번복과 반복이 난무하는 회개를 그만두기로 결심했어. 너는 용서받을 자격이 없어.
정말 뻔뻔하다. 너를 비난하고 책망하고 짓 밝으면 조금이나마 나아질 줄 알았어. 그렇지만 결국 나는 너로 인해 슬퍼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밉고 원망스럽다. 너를 짓밟고 눌러버리면 조금은 마음이 편할 줄 알았어. 그게 내가 죗값을 치르는 것이라 생각했거든. 그런데 왜 이리 슬플까. 가슴 전체에 돌덩어리 하나가 올려놓은 것처럼 답답해서 누군가 그 돌을 좀 치워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회피일까. 마주하지 못하는 외면일까.
그래 사실 나는 네가 행복하길 바랬어. 나라고 그런 바램이 없었겠니. 그 누가 행복을 마다하겠어. 생각해봐. 한때는 너도 희망이었고 소망이었고 기쁨이었어. 누군가에게 그리고 너 스스로에게. 너 자신을 일부로 위로하려고 하지는 마. 더러운 꼴 이미 많이 봤잖아. 그까짓 거 좀 더 본다고 뭐가 더 달라지겠어. 그냥 더 들여다봐. 그러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가 되면 그때는, 조금만 너의 주위를 좀 둘러봐. 아직 둘러볼 여력이 없으면 하지 마. 다 때가 있는 거야. 단지, 너무 오래 걸리지 말았으면 해. 시간은 널 기다려 주지 않아 세상은 결코 널 기다려 주지 않아. 그래도 괜찮다면 더 시간을 가져. 그렇지만 그럴수록 감수해야 할 것들은 늘어만 갈 거야. 그래봤자 네가 감당해야 할 몫이겠지만.
잘 들어. 너는 너를 놔줘야 해. 이제 그만 놔주고 더 이상 애쓰지 마_그 애쓰는 게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만_ 네가 무엇인가를 엄청나게 애쓴다는 것은 눈 감아도 다 아는 사실이거든.
이제는 그만 놓아줘. 그리 어렵지 않을 거야. 네가 너를 놔주고 비울 때 일말의 행복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너도 잘 알고 있으니까. 널 응원하지 않아. 네가 어떻든 나는 널 지지하지 않아. 그렇지만 하나는 약속하지.
나는 너를 절대 떠나지 않을 거야.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