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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es Lee Oct 07. 2020

불편한 진실

옥탑방의 비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꼽으라면 결코 어느 한 가지만 고를 수가 없다. 죽을 것만 같았던 연애의 이별도 끝날 것 같지 않던 가난도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던 외로움도 본인이 아니면 누구도 알 수 없는 육체의 고통도. 그 모두가 고단했고 고달픈 과거들이었다. 이전의 삶을 되돌아보면 셀 수 없이 힘든 시간이 많았고 그 삶의 무게는 전부 똑같이 무거웠다.


어느 때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라고 감히 콕 찝어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앞으로 내 인생 지경에 펼쳐질 훨씬 더 아파할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한 불투명한 미래 앞에 과거는 겸손해지고 그때 그 시절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 사실 돌이켜 보면 막상 견딜만했던 것 같기도 하다.


어느 한 부분만을 선택해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 이 있다는 것이다. 그 시절은 지금 생각해보면 마치 미화된 추억처럼 남아있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가장 큰 상흔처럼 남아있는 듯하다. 재밌는 것은 그 상흔이 나 자신조차 인지하지 못했고, 그것이 아픔이었다는 것을 최근까지 알 수 없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라고는 말할 수 없다.



옥탑방의 입김이 서리던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모님은 당신들의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그 많던 재산을 다 까먹고, 결국에는 달동네 아래 자락의 위치한 3층짜리 건물 옥상의 옥탑방으로 들어섰다는 것이다. 내가 12살이었던 시절이다. 정확히 말하면 12살부터 16살까지 옥탑방에서 다섯 식구가 살았다. 조그만 방 한 칸 부엌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화장실 그리고 샷시로 개조해 놓은 불법적인 공간 하나. 나와 형은 그 공간에서 공부도 하고 잠도 자며 지내고는 했다. 여름에는 30도가 넘는 찜통더위였고 겨울에는 낮이고 밤이고 입김이 서리던 샷시로 이루어진 방(편의상 샷시방이라 하겠다). 지금 생각하면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공간이다.


그때는 결코 몰랐다.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쪽팔린 상황이었는지. 그냥 다 그러고 사는 줄 알았다. 달동네에 살고 있는 친구들 집에 가보면 내 옥탑방과는 그리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니, 그 당시에는 내 옥탑방이 더 낫다고 생각까지 했다. 그들의 집 골목골목은 악취가 났고, 양아치들로 늘 가득했고, 술 취한 주정뱅이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집들이 너무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우리 집은 그 아래 자락에 위치해 있었기에 오르막길은 전혀 없었다. 단지 3층짜리 계단만 올라가면 되기에, 내 나름대로 자부심 따위가 있었던 듯하다.


어렸기 때문일까. 더워도 그러려니 추워도 그러려니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 심정이야 오죽했으랴 싶다. 남들 시선도 시선이지만, 당신들의 잘못으로 인한 죄책감도 컸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누굴 탓하랴. 게으르고 무지했던 당신들 잘못이지 싶다. 원망이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이지 싶다.



아이를 가져보니


난 당신네들의 게으르고 무지했던 사실이 원망스러웠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내가 그 시절이 이해가 안 가고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아이를 낳아보니 알게 됐다는 것이다. 자식을 낳아보면 부모의 심정을 이해한다 하지 않았던가. 그래. 이해되는 부분이 수백 가지다. 특히 아버지의 입장이 가장 이해가 가고 안쓰러워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아버지도 아버지가 처음이었으니까.


허나, 단 한 가지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도대체 왜 두 아들 - 형과 나- 은 그 샷시방에서 지내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제대로 된 방 한 칸에는 유일하게 보일러가 들어와서 따뜻했다. 여름에는 시원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왜 우리 두 형제는 그 샷시 방에서 지내야만 했을까.


아이를 가져보니 더욱더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었다.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나는 추워도 이 아이만은 춥지 않았으면 하고, 나는 아파도 이 아이만은 건강했으면 한다. 나는 가지지 못했어도 이 아이만은 다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범도 새끼 둔 골을 센다 고 하지 않았던가. 범도 제 새끼를 두고 온 골은 끔찍이 생각한다는데, 왜 우리 부모님은 우리 두 형제를 그 덥고 추운 샷시방에서 지내게 했을까 하는 사실이 아직도 의문이다. 지금도 그때의 매해 겨울이 기억이 난다. 전기장판을 깔고, 전기히터를 틀었어도 아침에 일어나 보면 입김으로 인해 샷시 창문이 서리로 송골송골 맺혀있던 기억이 선명하다. 전기 장판 위 이불 밖으로 나올 때면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책상에서 공부할 때도 양말을 신고 두꺼운 점퍼를 입고 공부를 하던 기억도 난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마치 우리 부모님이 이기적이고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다고 들릴 수도 있겠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위하는 마음이 없겠는가. 개인적으로 단지 그때 그 상황이 안타깝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여쭤보고 싶은 부분이다.




이렇게 그때의 일을 떠올리고 그 심정들을 상기하니 참으로 괴롭다. 왜 그러셨을까. 왜 두 아들과 함께 지내지 않으셨을까. 왜 두 아들에게 방을 내주지 않으셨을까. 왜 한 번도 두 분은 그러한 샷시방에서 하루도 지내보시지 않으셨을까. 나는 아직도 의문의 의문이 든다. 그러나 원망은 하지 않는다. 그때는 우리 부모님도 어리셨다. 철이 없으셨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다. 그것을 느끼고 알게 된 이후 나는 그 시절이 추억이 아니라 아픔으로 그리고 피하고 싶은 사실로 남겨지게 되었다. 옥탑방에서 버너를 사용해 끓여먹었던 라면의 맛도 늘 라디오를 틀어놓고 음악을 감상하며 공상하던 시간도 여름밤이면 창문 밖으로 별을 보며 낭만에 빠졌던 기억도. 추억 아닌 추억들이 거대한 무엇인가로 덮혀져 버린 기분이다.


어쩌면,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된 기분이다. 차라리 몰랐으면 추억으로 낭만으로 남아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때그시절 #옥탑방 #달동네 #입김서리던 #전기장판 #두형제 #도대체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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