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 휴가지는 홍콩으로 정했다. 거의 21년 만에 가게 되는 곳이다. 홍콩을 떠올리면 아련한 추억이 떠오르곤 했었다.
딸아이가 태어나 백일이 좀 지났을 때, 남편은 회사에서 지역전문가로 광저우에 파견을 나가게 되었었다. 일 년 반에서 이년 기한이었고, 혼자만 나가야 했었고, 중국어 교육비와 생활비, 그리고 중국 각지를 여행할 수 있는 경비가 지원되는 조건이었다.
그즈음에 나는 계약직 연구원으로 일자리를 새로 구해서 곧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시 일하고 싶은 욕심에 몸도 안 좋은 엄마에게 어린 아기를 억지로 맡아달라고 했었다. 그리고 아이 맡기는 문제로 남편과 크게 싸우고 서로 감정이 많이 상한 체로 떨어져 살게 되었다.
그렇게 남편과 나는 별거 아닌 별거를 하게 되었다. 주중에는 자동차로 삼사십 분 걸리는 연구소로 출퇴근을 했었고, 주말에는 부모님 댁에 가서 아이를 봤었다. 일요일 저녁때 아이를 떼어 놓고 우리 집으로 가는 발걸음은 참 무거웠다. 엄마 간다고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와 헤어질 때마다 내 눈에서도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퇴근하고 저녁때 혼자서 티비를 볼 때 아픈 아이들이나 아프리카 아이들 모습이 화면에 나오면 혼자 눈물을 쏟곤 했었다. 저녁마다 나는 거의 매일 맥주를 한두 캔씩 마셨었다. 내 마음은 무너져 내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렇게 지낸 지 반년이 좀 안되었을 때, 어느 날 저녁 남편이 우리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내 앞에는 치우지 않은 맥주캔이 쌓여 있었고, 집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남편에게 얘기를 들어보니, 내 제일 친한 친구가 중국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내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고 한국에 들어와 봐야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 전화를 받고는 바로 비행기표를 끊어서 왔다고 했다.
술에 취한 나는 남편을 끌어안고서 “나 너무 힘들다고” 하면서 엉엉 울었다. 남편은 나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진단을 받고 약을 먹도록 했다. 남편은 며칠 후에 바로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야만 했었다.
나는 내 상사에게 휴가를 일주일 얻어 혼자서 광저우로 갔다. 남편이 사는 집은 새로 지은 아파트로 쾌적하고 꽤 넓은 공간이었다. 우리는 단둘이 기차를 타고 홍콩으로 갔다. 중국 같지 않은 홍콩의 밤거리는 이국적이었고, 크루즈를 타고 봤던 반짝이는 야경이 더운 강바람과 함께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 후 한국에 돌아온 나는 직장은 언제든지 다시 구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퇴사를 하고, 아이를 데리고 광저우로 가서 약 일 년을 남편과 함께 살았다.
광저우에 살면서 심천이나 하이난, 기타 다른 지역에도 가보고 홍콩도 아기와 함께 다시 갔었다. 물론 그때는 보채고 뛰어다니는 아기를 돌보느라 뭘 봤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이제 다 큰 아이와 함께 간다고 생각하니 나 혼자서 여러 가지 감정이 밀려든다.
그때는 그랬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