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을 맞이해서 친구들을 만나고 왔다. 약속장소는 신논현역 부근 먹자골목의 고깃집이었다.
일찍 도착한 나는 강남역 부근에 사는 친구를 먼저 만나서 약속장소까지 20분을 걸어갔다. 가면서 우리는 오랜만에 만나는 거니 와인잔 부딪히며 우아하게 밥을 먹고 싶었다고 얘기를 나눴다. 고기와 술을 좋아하는 Y가 회사 회식집 분위기의 장소를 단톡방에 올려서 우리는 군말 안 하고 고깃집을 만남의 장소로 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 만남의 목적은 '생일축하'였다. 9월생 세 명과 10월생 한 명이 모여 서로를 축하해 주는 자리였다. 돼지고기는 맛있었다. 술을 잘 못하는 한 친구가 쏘맥을 마는 법을 배워왔다며 호기롭게 소주잔과 맥주잔을 세팅을 했다. 첫 잔은 신중하게 잘 말은 듯 보였는데, 두 번째 잔부터는 우왕좌왕 과하게 부은 소주를 다시 덜어냈다가 다시 부었다가 어설픈 모습을 보여줬다. 그 친구는 수저를 잔 바닥에 강하게 내리꽂는 스텝을 잊어버려서, 이미 각자의 앞에 놓인 나머지 세 잔에 연달아 숟가락을 내리꽂았다. “푸하하하” 우리는 몸을 비틀며 폭소를 터뜨렸다.
2차로 자리를 옮겨 카페로 갔다. 오늘 이 자리에 오기 위해 평소보다 서로 얼마나 꾸미고 나왔는지에 대해 얘기를 했는데, 문제는 그걸 아무도 못 알아봤다는 거였다.
한 친구가 “나 기본 베이스 화장을 섬세하게 하고, 아이라이너에 마스카라도 했다”라고 하면서 눈을 반쯤 감으며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는데, 나머지 셋은 “어디 한 거냐. 잘 모르겠다.”라는 반응이었다.
나도 “날이 선선해져서 아이쉐도우 좀 하고 나왔어”라고 말하며 아이쉐도우가 보이게 눈을 내리깔았더니, “눈이 어두워져서 그 정도 발라서는 눈에 뜨이지도 않는다”라는 웃음 터지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각자의 부모님 근황 얘기가 나오게 되었다.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고 혼자 남으신 어머님 두 분 이야기, 실버 타운에 들어가셨다가 또 다른 실버타운으로 옮기고 싶어 하시는 어머님 이야기, 그리고 요양 보호사가 집으로 돌봄을 오는 지팡이 짚고 다니는 우리 엄마 이야기까지.
먼저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낸 친구 말에 의하면, 병원에서 치료받는 기간에 이미 형제자매 사이에 의가 틀어지게 되고, 장례식을 치른 이후에는 서로 왕례도 잘 안 하게 되고 서먹한 관계가 되었다고 한다. 그나마 지금은 어머니가 살아계시니 이 정도라도 관계가 유지되고 있지만, 어머니마저 돌아가시면 남남처럼 지내게 될 것 같다고 했다. 병원 치료와 퇴원 후의 돌봄 과정에서 형제지간에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씁쓸한 현실 이야기였다.
이 시간까지 왜 이리 잠이 안 오나 했더니, 아까 카페에서 마신 커피때문이구나 라는 생각이 났다. 따뜻한 차를 시켰던 세명은 이미 꿈나라에 가 있겠구나.
얘들아 오늘 즐거웠다. 교집합이 많아서 공감대가 넓고 깊으니 이 보다 더 좋을 수가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