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의 작은 반란, 검은색 롤에 대하여
처음 그걸 본 건 여행 중이 아니었다. 흔한 흰 화장지만 가득한 집 앞 마트 진열대 한구석. 강렬한 존재감으로 시선을 훔친 건, 노랑도 주황도 아닌 검은색 화장지였다.
포르투갈산 Renova. 누가 화장지에 ‘산지’를 따지냐고 묻겠지만, Renova는 달랐다.
색깔 하나로 욕실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버리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에 허락된 미학적 사치였다.
처음엔 '이걸 어디다 써?' 싶었다. 쓰면 버릴 것을, 굳이?
그런데 그 ‘굳이’ 때문에 손이 갔다. 포장지를 뜯는 순간 손끝에 전해지는 부드러운 감촉, 그리고 욕실에 놓였을 때의 압도적인 존재감.
마치 “이 집주인, 취향 좀 아네”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손님이 왔을 때 “이게 뭐야?”라는 질문을 받는 순간, 그 미묘한 우월감은 덤이다.
물론, 이 제품은 당신의 지갑을 가볍게 만들 수도 있다. 하얀 화장지가 12 롤에 8천 원이라면, Renova는 6 롤에 만 원이 훌쩍 넘는 가격이니까.
이건 단순한 '필수품'이 아니다. ‘기분’을 위해, '나만의 감각'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다.
생활의 품격은 거실의 소파보다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 드러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제 이 검은 롤이 필수적인 즐거움이 되었다.
그래, 화장지에도 드레스 코드가 있을 수 있잖아.
나는 가끔 Renova를 보며 생각한다. 우리는 왜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에도 아름다움을 원할까?
아마도 그건, 그 아름다움을 가장 먼저 마주하는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포르투갈에서 건너온, 색깔 있는 당신의 프라이버시.
“사소한 것 속에서 삶의 진짜 아름다움이 숨어 있다.” – 버지니아 울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