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타인의 감정에 휘둘릴까
밝게 인사했는데,
돌아오는 건 무뚝뚝한 반응.
나는 순간, 움츠러든다.
‘저 사람이 기분 안 좋은 일이 있나?’는 생각보다
더 먼저 드는 건 이거다.
‘내가 뭘 잘못했나?’
생각의 회로는 재빠르게 돌아간다.
그날 하루는 이미 망한 하루가 된다.
하루 종일,
나는 그 사람의 눈치를 본다.
괜히 더 웃고, 더 상냥하게 말하고,
그 사람의 기분을 풀어보려 애쓴다.
하지만 소용이 없다.
나의 잘못이 아니었으니까.
또 다른 상황.
메신저로 대화하던 상대가
갑자기 단답형으로 바뀐다.
‘또 내가 뭘 잘못했나?’
마음에 돌덩이가 내려앉는다.
묵직하게, 천천히, 깊게.
그 감정이 나를 짓누른다.
점점 나는 가라앉는다.
꼬르륵, 바닥까지.
상대방의 기분은
항상 나의 기분을 먹어버린다.
나는 눈치가 빠르다.
특히, 타인의 감정에 민감하다.
"이 사람 지금 어디가 불편하군."
"배가 고픈 걸까?"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데 왜지?"
나는 남의 표정, 말투, 행동을
늘 조심스럽게 살핀다.
눈썰미도 좋다.
변화를 잘 포착한다.
그런데 그게 내 감정을 갉아먹는다는 건,
한참 뒤에야 알게 됐다.
상대의 감정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나는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가게 앞 풍선 같다.
그 사람이 웃으면 나도 괜히 기쁘고,
그 사람이 무표정이면 내 기분도 처진다.
그러다 상대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으면
나는 그냥 축 늘어진다.
감정 없는 존재처럼.
감정 분리.
이건 이제 내게 중요한 말이다.
심리학에서는 말한다.
“자기감정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치유의 첫걸음이다.”
나는 이제 내 기분을 먼저 들여다본다.
“아, 내가 지금 좀 우울하구나.”
“오늘은 별일 없어도 기운이 없네.”
그리고 상대가 불쾌한 감정을 쏟아낼 땐
이제는 이렇게 생각하려 한다.
그 감정은 그 사람의 것.
나는 그저 바라만 본다.
우리는 굳이 그걸
주워 담아 곱씹을 필요가 없다.
먹어봤자 소화도 안 되고,
결국엔 체하기만 한다.
상대의 감정은 내 감정이 아니다.
그 사람의 감정은
그 사람의 것으로 남겨두자.
그것도 존중의 한 방식이다.
우리가 타인을 치유하려 애쓸 필요는 없다.
내 감정만 해결하면 된다.
나는 점점 배워가고 있다.
내 감정의 주인은
바로 나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