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일이 사치스럽게 느껴진 지 오래입니다. 무언가 마음이 동하거나 반짝하는 생각이 있어 글로 적고 싶어도, 곧 ‘지금 내가 글 쓸 때가 아니지.’라고 생각해 버렸습니다. 글을 쓰려고만 하면 내가 해야 할 수많은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중요하지 않거나 미뤄도 되는 일들까지 말입니다. 아마 글을 쓰는 일이 내게는 유일한 도피처럼 느껴졌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응당 가져야 할 책임과 부담, 불편과 어려움으로부터 도망쳐 내 생각과 감정에 몰두하며 글을 쓰는 일은 무책임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렇게 언제나 글쓰기는 후순위로 밀렸고, 이것만 해결하고 쓰자,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쓰자 하며 애를 써도 언제나 내게는 새로운 일이 생겼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대단히 멋지게 바쁜 삶을 산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누구에게나 항상 할 일은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잘 살면 잘 사는 대로, 못 살면 못 사는 대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습니다. 이것이 나를 매우 불안하게 만듭니다. 그 불안 때문에 글을 쓰고 싶어도, 불안이 해결되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습니다. 부끄럽지만 나는 그렇습니다.
그러다가 아주 가끔, 내가 쓴 글에 누군가 좋아요를 눌렀다는 브런치 알림이 올 때가 있습니다. 그분들이 어떤 경로로 내 글까지 오게 되었는지 참 신기합니다. 그리고 심지어 재미있게 읽고 좋아요와 구독까지 눌러주신다니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나는 글을 거의 쓰지 않는 사람에 가깝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글 목록을 보면 무려 10년 전인 2016년에 첫 글을 쓴 이후 이제 겨우 열 개의 글을 올렸습니다. 물론 혼자 끼적대다 완성하지 못하고 서랍에 넣어둔 글도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나는 글을 성실하게 쓰는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성실하지 못한 것과 별개로 나는 누군가 내 글을 읽는다는 사실에서 긍정적인 에너지와 영감을 얻습니다. 더 있는 그대로 표현하자면, 내가 보통 하지 않는 말이라서 몹시 어색하지만, 누군가 내 글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합니다. 행복하다고 말하면 그 감정이 훅 날아가 버릴까, 혹은 곧 견딜 수 없는 불행이나 고통이 찾아와 행복하다고 말했던 모습이 초라해질까 두렵지만, 용기를 내어 말하자면 나는 누군가 내 글을 재미있게 읽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행복을 느낍니다.
나는 가수나 배우, 소설가, 화가 혹은 스포츠 선수들처럼 자신만의 유산을 남기는 이들의 삶을 조금 질투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만든 노래나 연기한 작품, 혹은 잊을 수 없는 플레이들은 거의 영원이라 말할 수 있는 시간 동안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사랑받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직 그 정도의 유산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쓴 글이 여전히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 누군가에게는 때때로 다시 읽어보는 글이라는 사실이 기적처럼 느껴집니다. 내가 쓴 글이 오래 전의 것이고 심지어 아주 개인적인 글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나는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고 싶은 욕망이 강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물론 누구에게나 그런 욕심은 있겠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욕심을 넘어 욕망이라 표현할 수 있을 만큼 강한 동기이자 이유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애써 그것을 부정해 왔고 그 덕분에 끊임없이 괴로워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을 외면하고 할 수 없는 것으로부터 의미를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실패했다고 느낄 때 더욱 그랬습니다. 길을 잃고 난 뒤에야 손에 쥐고 있던 성냥이 간절한 것처럼, 나는 캄캄한 숲 속에 고립된 후에야 내가 피울 수 있었던 작은 불씨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물론 글쓰기라는 건 수단일 뿐입니다. 나는 단 한 번도 ‘어떤 글’을 쓰고 싶다는 목표를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대신 언제나 ‘좋은 사람’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사춘기 시절 처음으로 글을 써보겠다고 덤볐던 때부터 지금까지, 글쓰기가 나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나는 오히려 내가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는 이유들, 그러니까 나의 부족하고, 약하고, 부끄러운 부분을 글에 담곤 했습니다. 아마 그게 나에게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나는 글을 쓸 이유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실, 사람들은 나의 고통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멀리 돌아왔습니다. 다른 이유나 변명, 조건 따위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고 오로지 나를 위해서 글을 써야만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다시 해보기로 마음먹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냥 글을 자주 쓰겠다는 걸 넘어 이제는 글쓰기에 삶의 아주 큰 영역을 할애하고 싶어 졌습니다. 문득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10년 전 스스로에게 '나는 새파란 녀석입니까'이냐고 묻던 글을 보면서 깨닫습니다. '아, 저 시기의 나는 웃음이 나올 정도로 새파랗게 젊었구나'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아마 훗날에 지금을 돌아보아도, 새파란 것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푸르다고 말할 정도는 될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지금 이렇게 글을 씁니다. 아니, 글을 씀으로써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그냥 내 마음 편하자고 글을 쓰니까, 글이 참 잘 써집니다.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