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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by 홍윤표
카메라: OLYMPUS OM-1 / 필름: Kodak Ultramax 400 / 일자: 25.10.23.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매일 아침 집 앞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와 함께 자유투 연습을 했었습니다. 원래는 같이 방학 동안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자고 의기투합했었는데 양쪽 어머니들이 중학생이 헬스 하면 키 안 큰다며 차라리 농구를 하라고 하셨었죠.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이라 친구랑 전 약속시간을 정해놓고 매일 아침 학교 운동장 농구골대 앞에서 만나 슛을 쐈죠. 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서로 별다른 말 없이 30분 정도 슛만 쏘다가 헤어졌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 친구와 그렇게까지 친하진 않았었는데 어쩌다 집이 같은 방향이고 초등학교도 같았고 어머니끼리도 서로 안면이 있어서 이리저리 알고 지내는 사이 정도였습니다. 학교에서 보면 말도 트고 편한 친구이긴 한데 방학 때까지 만날 정도로 단짝은 아니었던 거죠.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친구와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같은 곳으로 갔습니다. 초, 중, 고, 대 쭉 같은 곳으로 다녔던 거죠. 하지만 같은 반, 같은 과는 한 번도 된 적이 없어서 우린 끝까지 미적지근한 친구 사이로 남았었어요. 군대를 갔다 온 이후로 그 친구와는 소식이 끊겼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합니다.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었는데 왜 방학 때 헬스장에 다니자고 의기투합했을까요. 그리고 왜 우린 아무 말도 없이 농구공만 던지다가 헤어졌던 걸까요. 둘이 같이 농구를 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죠.

그런데 더 이상한 건, 그 친구랑 있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참 편했다는 겁니다. 말이 없어도 어색하지 않았고, 대화를 하면 꽤 잘 통했고요.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헬스장 이야기를 하며 터무니없는 약속까지 했겠죠.

결국 전 그 정도의 거리가 편했던 것 같아요. 농구를 하며 서로 몸을 부딪히고 격한 몸짓으로 뒤엉키는 것보다는 조금 멀찍이 떨어져서 각자의 공을 갖고 각자의 슛을 쏘는 게 더 좋았습니다. 치열한 관계보다는 살짝 미지근한 관계가 어쩔 땐 더 편할 때가 있죠. 같이 하는 것보다는 그냥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시간을 갖는 그런 사이 말이죠. 같이 있다고 꼭 뭔가를 같이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농구장에 있다고 꼭 농구를 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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