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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을 Nov 23. 2021

동생이라는 이상한 존재

밤 12시, 동생에게 톡을 보냈다.

"내일 우리 모자와 함께 놀아줄 테야?"

언제나처럼 별다른 말 없이 한마디가 돌아온다.

"몇 시에?"


친구랑 놀 여력은 없지만 혼자 있기 싫을 때, 육아가 고될 때, 장날에 돈가스 아저씨가 나왔을 때, 갑자기 사람이 그리울 때, 나는 동생을 찾는다. 편안하고 다정한. 그게 그 애를 설명하는 가장 가까운 표현일 것이다.



결혼하기 전까지 나는 남동생과 함께 살았다. 후미진 언덕길을 한참 오르다 '아 이제 못 가겠다' 싶을 때쯤 나오는 오래된 다세대 주택의 4층. 커다란 창으로 남산타워가 보인다는 이유 하나로 계약한 집이었다. 꼭대기 집이라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웠다. 이사 갈 때까지 도대체 뭐가 있는지 차마 확인하지 못한 다용도실과 아무리 청소해도 깨끗해지지 않던 화장실과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열고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은 창문들이 흠이었지만, 널찍한 창으로 한눈에 보이는 야경이 마음에 들었었다. 그 집에서 우리는 엄마 아빠 없이(=잔소리 없이) 몇 년을 살았다.


내 방에서 보이던 풍경


평소에는 서로 방문 닫고 각자 생활하지만 닫힌 문 너머에 동생이 있다는 게 이상하게 든든했다. 혼자 살면서 혼자 살지 않는 기분. 헛헛한 마음이 들 때마다 똑똑 동생 방을 두드리면 남동생답지 않게 살가운 그 애는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나 영화를 틀어주었다. '누나가 좋아할 것 같아' 한마디를 덧붙이면서. 동생이 추천해준 것들은 신기하게도 정말 다 좋았다.


물론 우리가 서로 다정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내 방에서 당장 나가!"를 외치며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싸운 적도 있었고, 누나는 왜 청소를 안 하냐, 그럼 너는 왜 빨래를 안 하냐, 그러면 생활비를 더 내라, 치사하게 싸운 날도 왕왕 있었다. 하지만 대개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공감한다. 우린 그걸 '재미난 부모님과 유년 시절을 공유한 덕'이라고 친다.


추석 연휴부터 한 달 동안 아이와 함께 친정에서 지냈다. 그중 열흘을 동생이 시간을 내서 함께 있어주었다. 동생이 오기 전까지 나와 아이를 챙기느라 여념 없던 엄마는, 동생이 오자마자 우리를 마트에 데려갔다.

"너네 먹고 싶은 거 골라."

익숙한 멘트였다. 고등학교 때까지 주말마다 엄마는  마트에 데려가 원하는 걸 마음껏 고르게 하고 평일에는 훌훌 자기 일상에 충실했다. 엄마가 출장으로 자리를 비우거나 회식으로 늦는 밤에도 우리는 마트에서 골라 담은 최애 아이템들로 엄마 없는 저녁을 신나게 보내곤 했다.


엄마는 그때처럼 이번에도 간식 창고를 꽉꽉 채워놓고는 훌훌 자기 일상으로 돌아갔다.

"얘들아, 점심 챙겨 먹고 있어. 엄마 미술 학원 갔다가 점심 먹고 온다?"

심지어 그 주 주말엔 아빠와 둘이서 여행도 다녀왔다. 무려 2박 3일을. 나와 아이만 있었다면 엄마는 여행 같은 건 꿈도 꾸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또 우리대로 그때처럼 엄마 아빠 없는 자유를 누리기 바빴다. 엄마랑 둘이 있으면 엄마가 힘들까 봐 내가 먼저 몸을 일으켜 사부작 거리게 되는데, 동생과 있을 땐 철저하게 역할 분담이 되었다. 그게 참 편했다. 몸도 마음도.

내가 아이 밥을 차리고 먹이는 동안 동생이 우리가 먹을 음식을 만들고, 다 먹고 동생이 뒷정리를 하는 동안 나는 아이를 씻겼다. 낮잠을 재우고 둘이서 수다를 떨며 소풍 가방을 싸고 와플을 구우면서 오늘은 어디를 갈지 상의하고, 아이가 일어나면 데리고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햄버거를 테이크 아웃한다. 다시 아이 밥을 차리고 먹이는 동안 동생이 같이 볼 영화 한 편을 틀어놓고 먹을 준비를 마치면, 함께 햄버거를 먹으며 내일 낮에는 뭘 먹을지 고민하는 날들. 손발이 착착 아주 완벽했다!


열흘 뒤 동생이 서울로 올라가기로 한 날, 우리는 마지막 소풍을 다녀왔다. 돗자리에 앉아 다 식은 와플을 나눠먹으면서 동생은 "이걸 누나가 서울에서 혼자 할 생각을 하니 걱정이다. 내가 자주 갈게." 했고, 나는 "둘째를 낳아야겠다"라고 했다.


엄마처럼 "너네 먹고 싶은 거 다 골라." 하고는 훌훌 내 할 일을 하러 다니고 싶고, 여름이가 내 동생 같은 동생과 재미있는 유년 시절을 공유하면 좋겠다. 엄마 입장에서도 첫째 입장에서도 둘째는 사랑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마음이, 생각이 그랬다는 거다. 육아는 또 다른 얘기니까. XD


내일도 동생이 집에 오기로 했다. 쌓아둔 수다가 한 보따리다. 주말에 아빠가 얼마나 진상이었는지부터 일러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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