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B를 읽는 방식은 비캐스트를 듣기 전과 후로 나뉜다. 에피소드를 듣다보면 'B스러움'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된다. 단순히 멋드러지거나 있어 보이는 사진으로 표지를 선택하지 않는다. B스러움을 담아낸다는 것이다. 표지 디자인 때문에 출간이 미뤄진 적도 있다고 한다. 러쉬 편에서는 브랜드 정신을 잘 담아낸다는 이유로 새 로고 대신 옛 로고를 표지에 실어 출간했다. 그 후로는 잡지 안에 담긴 사진을 보더라도 어떤 면을 보여주고 싶었나를 생각하며 읽게 되었다.
볼과 튜브가 반짝이는 철 재질을 한껏 뽐내고 있는 표지를 넘기면 USM 공장 사진 몇 장이 자리하고 있다. 가구 브랜드 편에서 가구가 아닌 건축물 사진을 앞 부분에 배치한 데에는 공장이라는 건축물이 가구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USM 할러 시스템은 건축가 프리츠 할러와 창립자의 손자 파울 셰러가 합작하여 탄생시켰다. 셰러는 기능주의 건축과 가구를 동시에 선보인 미스 반데어로에와 르 코르뷔지에를 동경했다고 한다. 그는 제조 공정의 변화에 따라 쉽게 공장을 개조할 수 있는 모듈형 건물의 필요성을 느꼈고, 할러에게 설계를 의뢰했다. 할러는 기둥과 대들보를 추가하거나 분리할 수 있도록 만들어 강철과 유리로 이루어진 USM 공장을 세웠다. 그런데 강철, 유리로 이루어진 사무실과 이를 채운 나무 가구의 부조화로 맞춤형 가구의 필요성을 느꼈고, 이렇게 USM 모듈 가구 시스템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번 호에서 자주 언급되는 단어 중 하나는 '지속가능성'이다. 모노클 편집장 타일러 브륄레는 USM이 지속가능성에 대한 메시지를 던진 최초의 브랜드라고 한다. 또한 프리미엄 모듈형 가구 중에서도 특히나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덕에 비초에, 몬타나 보다 훨씬 오래 사용 가능하다고 말한다. 제품 개발 디렉터 토마스 디네스는 더 나은 제품 개발이 아닌 이미 뛰어난 제품을 개선하여 지속하고 싶다고 한다. 불량률 제로에 가깝도록 만들어내는 제조 공정,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는 점, 원래의 구입 목적과 전혀 다른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모듈성이라는 특징은 앞으로도 USM이 '지속가능성'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견고하게 자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가구를 추가하거나 분리할 수 있는 구조는 '무한한 유연성'을 가능하게 했다. 할러 시스템의 제품은 개인 집부터 시작해서 리테일샵, 일반 사무실, 건축 사무소, 도서관과 같은 공공기관까지 활용될 정도다. 이토록 분위기와 목적이 다른 공간에 모두 놓을 수 있는 가구브랜드가 과연 몇이나 될까.
여가 시간에 wallpaper 잡지를 읽거나 건축 다큐멘터리를 보는 편이라 매거진 B의 이번 호를 참 재밌게 읽었다. 리움 미술관을 설계한 마리오 보타, 뉴욕 모마를 설계한 요시오 다니구치 등 많은 건축가를 알게 되는 수확도 거뒀다. 스위스에 대해서는 시계, 알프스 산맥, 4개의 공용어를 사용하는 나라 정도로만 알고 있을 정도로 무지했다. 스티브 잡스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매킨토시의 아름다운 타이포그래피의 근원도 스위스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가 리드 칼리지에서 배운 세리프, 산 세리프 서체는 '스위스 국제주의 타이포그래피'였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마케팅 도구로써 '표면적인 지속가능한' 브랜드가 아닌 '진정으로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하는 브랜드의 멋과 정신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