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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 Mar 04. 2022

정제된 연출이 주는 압도,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여성으로만 구성된 뮤지컬이 여성 혐오적이라고?

〈베르나르다 알바〉는 스페인 극작가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희곡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을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이다. 1930년대 초를 배경으로, 두 번째 남편 안토니오가 죽고 가장이 된 베르나르다 알바와 다섯 딸들이 8년 상을 치르며 억압되어 있는 동안 벌어지는 파국의 일을 다룬다. 


이 극에는 총 10명의 여자들이 등장한다. 베르나르다 알바와 다섯 명의 딸, 할머니, 하녀장과 두 명의 하녀. 뮤지컬 특유의 인원수로 압도하는 앙상블이나 화려하고 세세한 연출, 무대장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 존재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남자 배우. 이 극은 남자 역은 존재하지만 극에 남자 배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남자 역이라, 조금 더 생각해 보면 남자 인물의 이름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 극이 그들을 표현하는 방식은 하나다. 모자. 


그렇다, 남자는 '모자'로 대표된다. 하녀 역할의 두 명의 배우가 옷을 갈아입은 채, 얼굴을 가릴 모자를 쓰고 남자 역으로 등장한다. 





1. 사물화 된 남성을 못 잃은 여성 서사(?)


<베르나르다 알바>의 배경은 뮤지컬 첫 번째 넘버에서 아주 큰 소리로 말해주듯이 "옛날 옛적 스페인"이다. 그런 평을 봤다. 여성 서사라고 해서 봤는데 남자만 사랑하는 이야기라 실망이라는 이야기. 전반적으로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이 극은 옛날 옛적 스페인을 배경으로, 두 번째 남편의 장례를 8년 상으로 치르며 그동안 바깥세상과의 단절을 강요하는 가부장적인 어머니 베르나르다 알바와, 그의 딸들이 페페라는 남자에게 반해 그와 결혼하고 싶어 하며 일어나는 파국을 다룬다. 첫째 앙구스타티아스와 막내 아델라, 그리고 넷째 마르티리오는 페페를 사랑한다. 


재산을 많이 물려받은 앙구스타티아스와 페페를 결혼시키려는 베르나르다 알바는 페페가 아델라와 관계를 맺고 있는 걸을 알면서도 묵인한 채 결혼을 서두른다. 빼어나지 않은 미모로 남자들에게 선택받지 못하는 마르티리오는 아델라와 페페 관계를 알고 아델라를 괴롭히고, 앙구스타티아스가 가진 페페 사진을 훔치기까지 한다. 


극 이야기만 보면 그렇다. 한 남자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며 사랑하는 흔한 옛날 여자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첫 번째 넘버인 '프롤로그'에서 두 번째 남편 안토니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등장한다. 안토니오는 수양딸인 앙구스타티아스와 어린 하녀를 희롱하는 인면수심의 인간이다. 그런 안토니오는 자신의 모자를 벗어 내려놓는다. 그 행위은 곧 그 인물의 죽음이다. 


조명은 무대 앞에 내려놓은 모자를 비춘다. 그리고 베르나르다 알바는 자신의 앞에 있는 의자를 밀어 넘어트린다. 극은 이 두 가지 연출로 안토니오의 죽음을 표현한다. 


모자와 의자, 이 극에서 남자 인물은 철저하게 사물화 된다. 


안토니오와 페페는 모자로 대체되고, 그 역을 연기하는 배우는 여성이다. 여자라는 이유로 무대에 서지도 못했다는 시절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충분히 현재도 유의하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남성 배우와 함께하는 작품과 여성들만이 꾸리는 작품, 어느 쪽이 더 옳다고 판단할 수는 없으나 그 차이는 충분해 보인다. 


다섯 딸들은 몸 좋은 인부들이 지나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모두 창문으로 모인다. 창문 밖의 그들의 가는 길을 철저히 관찰자의 입장에서 감상한다. 


아델라는 페페가 죽었다고 믿으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 연출은 천장에서 의자 다리를 끈으로 엮어 떨어트리는 것으로 대신한다. 아델라는 남자를 못 잃어 죽었다. 맞다. 그러니 이 서사만으로, 이 극이 여성 서사로서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을까는 메타적인 상황들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편협한 결론일 뿐이다. 





2. 고발적인 극이 서브 스토리를 끼워 넣는 법


뮤지컬 실황 영화 <베르나르다 알바>의 무대 연출은 아주 간소하다. 초현실주의 작품이나 현대미술 전시가 상상되는 흰색 벽과, 아치형 문, 그리고 인원수대로 놓인 의자. 흰 배경과 검은 상복을 입은 인물들, 붉고 파란 조명. 


이러한 무대장치로 집 안의 이야기는 가부장적인 베르나르다로부터 수직적으로 이어지는 폭력, 페페를 향한 일그러진 사랑 이야기가 주가 된다. 


남자 배우를 모두 여성 배우로 대체하기로 마음먹은 이 극은 그럼 정말 남자를 향한 절절한 여자들의 사랑 이야기''을 그리고 싶었을까?


이 극은 고발적이다. 그리고 이 고발은 저 굳게 닫힌 아치형 문밖에서 주로 등장한다. 이 극은 자신의 주제를 폭력과 억압적인 집이 아닌, 그럼에도 더욱더 폭력적이고 여성에게 더욱더 억압적인 집 밖의 세상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러므로 인물들이 어느 곳에서 안전할 수 있고 자유로울 수 있는지 더더욱 알지 못하게 한다. 그 고민 사이에서부터 극은 의미를 가진다.


'창녀.' 8명의 배우들은 입을 열어 아주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굳게 닫힌 문 너머 들려오는 소문이란, 여자의 남편을 가둬둔 채 남자들이 반 나체의 여자를 숲으로 끌고 가고 있다는 이야기, 결혼도 하지 않은 여자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땅에 묻었으나 아이의 시체가 발견되어 여자를 몽둥이로 패면서 끌고 가고 있다는 이야기들뿐이다. 



강렬한 붉은 조명으로 비춘 문밖의 세상은 그런 곳이다. 


베르나르다 알바는 말한다. "여자는" 어때야 한다고. 여자는, 여자는 조용히 수를 놓고 여자는 남자가 밖으로 돌아다녀도 가만히 기다려야 하고, 여자는 남자에게 그의 생각을 물을 수 없고, 가만히, 조용히 모든 일에 순응해야 한다고.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집안을 주체적으로 강력히 억압하는 것은 그렇게 말하는 베르나르다 알바다. 알바의 논리는 다음의 명제에서부터 시작한다. "밖의 세상은 여자들에게 더 억압적이다." 알바는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창녀'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결혼하지 않고 페페와 관계를 맺은 아델리는 자신의 가족들이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낳은 여자에게 '창녀'라고 소리치고 때려 죽이라고 외치는 모습을 본다. 그 여자를 용서해달라는 아델라 혼자의 목소리는, 8명의 노랫소리에 파묻혀 사라진다. 


극에서는 난폭하게 굴던 암말이 열리지도 않은 마구간을 박차고 도망가는 사건이 벌어진다. 알바가 왜 풀어줬느냐고 하녀장에게 물었으나, 하녀장은 답한다. "풀어준 적이 없습니다."


극의 커다란 서사와 전혀 관련 없는 서브 스토리들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말한다. 


세상은 이런 곳입니다. 
알바의 집은 이런 곳입니다.
너무나 폭력적이고 억압적입니다. 


그럼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집과 세상을 모두 떠나,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 억압과 규율을 벗어던진 자들의 최후


검은 상복과 대조되는 흰색 잠옷을 입고 등장한 인물은 두 명이다. 


미치광이가 되어 다시 결혼을 하겠다고 온 집안을 휘젓고, 이불을 아기라고 말하며 안고 다니는 할머니 조세핀과 페페와 밀회를 위해 몰래 밖으로 나가는 아델라. 


베르나르다 알바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이들의 말로는 처참하다. 


아델라는 자신의 욕망을 긍정하며 알바에게 끝까지 저항하지만, 페페가 죽었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목숨을 끊는다. 조세핀은 집 안에 갇혀 살며 모든 행위를 억제당할 뿐이다. 


의문은 여기서 생겨난다. 


'인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의문점은 서브 스토리들을 만나며 다음과 같이 변주된다.


이 인물들이 알바의 집에서 결국 자유 탈환에 실패하고야 마는데, 집 바깥이라면 세상이라면 이들은 자유로이 살아갈 수 있었을까? 



페페는 앙구스타티아스와 결혼을 약속했음에도 아델라와 관계를 맺는다. 이 시대의 남자들은 모두 '바람둥이'에 정조를 지키지 못하는 인물들뿐이다. 이 집에서 도망쳐 페페와 결혼했더라고 아델라가 자유를 얻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죽거나 미치거나. 


욕망에 충실한 여자들의 말로는 둘 중 하나였다. 그러니 이 극의 배경은 "옛날 옛적 스페인"이다. 


그럼 2022년을 사는 우리는 어떨까? 


죽거나 미치지 않고 우리는 어떻게 알바의 폭력과 바깥세상의 억압에 버티며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극은 알바가 "아델라는 처녀로 죽었다"라고 반복해서 읊조리며 끝난다. 성녀와 창녀, 삶과 죽음, 흰색과 검은색, 붉은색과 파란색. 이분법으로 표현된 세상은 반복해서 의도적으로 '빈 여백'을 제공한다. 뮤지컬에 대한 집중도를 한껏 끌어 높이는 효과에 더불어, 느껴진다.


나는 왜 이 극의 빈 여백에 그리도 숨이 막혔는지.  내가 여백에서 읽어낸 이야기가 무엇인지, 다시금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군더더기 없는 최소한의 연출도 압도적인 분위기를 형성해 내는 극은, 베르나르다 알바 역의 뮤지컬 배우 정영주 님과 더불어 등장하는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인다. 연기뿐 아니라 춤, 노래 실력이 빠지는 것이 없다. 


배우 정영주 님이 연기하지 않은 베르나르다 알바가 상상조차 되지 않고, 배우 오소연 님이 연기하지 않는 아델라도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특히 페페가 죽었다는 사실을 듣고 난 처절한 절규를 보고, 실제로 눈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대도 나는 절대 저렇게 절규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들의 연기가 극에 몰입도를 한층 높여준다. 


이 배우진 그대로 뮤지컬을 한다면, 무조건 가야 한다.


빼놓을수록 가득 차는 연출 방식, 몰입력 높은 연기, 생각해 볼 만한 거리들을 던져대는 서사, 


〈베르다르다 알바〉를 모든 분들이 꼭 보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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