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라는 행위 속 공허

by 자유

나를 끊임없이 읽게 하는 것은 지적 허영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 문젯거리가 된 이후로, 허영에 허덕이고 있다. 허영의 속성은 확장성이다. 그러니 충족이란 어불성설이며, 항로를 설정하는 방향으로만 행위할 수 있다. 허영 앞에 선 실존자는 그 근본이 공허가 된다. 내 안의 역설과 허무에 맞서며 '내가 없음'의 상태로 존재하는 '나'를 견디는 것이, 책을 읽는 행위가 된다.


독서의 즐거움은 부산물이다. 게임 속 하나의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을 때 내 일격을 맞고 죽은 몬스터의 몸에서 경쾌한 효과음과 함께 튀어나오는 금화 가득한 빨간 주머니. 내 소유가 아니던 '것'이 내 '것'이 된다. 이 지점의 즐거움은 소유권의 변경과 동시에 나의 책임이 된다. 시간을 거스를 수 있는 존재가 없기에 내 책임하의 모든 것은 점차 흐려진다.


왜 소비하는 것, 향유하는 것은 이런 책임의 고통으로 변환될까. 나는 왜 텍스트의 허공의 투과체가 되지 못하고, 모든 것을 가두려는 둑, 경계가 되고자 하는 것일까. 읽는다는 것은 도대체 내게 무슨 의미로 다가올까.


나는 마치 부피를 계산할 수 없는 댐의 보와 같다. 누군가 보를 열어주기만을 기다리는지, 기다리지 않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태로 가만히 내가 그 '보'라는 것만을 인지하고 있다. 지적 허영이 저수지 밑에서 간신히 끌어온 언어들로 경계를 다시 세운다. 그것은 또 '나'와는 다른 '무제'의 존재가 된다.


이름 짓지 못하고,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한 외장하드에 몇 년째 묵어 있는 아주 짧고도 긴 여러 소설들의 이름처럼.


세계에 유형의 흔적을 남기는 듯하지만 실재는 데이터들의 총합일 뿐인, 실재하는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관측할 수 없는 소설들처럼.


남에게 보임으로써 의미를 가질 수 있으나, 평생 남에게 보일 일 없는, 그러니 그것이 타고난 가치에 반하기 위해 태어난, 그러니 태어났다고 볼 수 없는 이름의 무제처럼.


부정을 사고할 수 없는 뇌는, 없음이라는 단어를 듣고 가장 처음 꺼내 드는 단어가 뭘까 고민하면서.


아마 처음으로 꺼내지는 단어는 평생 내가 그 존재를 느끼고자 발악하던 존재이지 않을까. 무를 느끼며 유를 가져다 경계를 덮고 사라지지 않기만을 바라며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두 손을 모아, 한 번- 두 번 위아래로 비벼대면서. 제발 사라지지 말아 달라고, 내가 어떻게 하면 당신에게 영원을 부과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알려달라고. 고요하게 울부짖으며, 그러니 그 울음은 내게만 들리고 내게만 너무 시끄러워지고. 나는 내리깐 눈동자의 아주 옅고 좁은 흰자위로 내 앞에 황금으로 도금된, 그러니 금의 표상인 신에게 빈다. 그 안에 무엇이 차있을까 잠깐 고민하자 비명은 속으로 삼켜지고. 그 찰나를 알아채자 나는 다시 입으로 물을 뱉어낸다. 쏟아낸다.


고독 속에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나를 향해 속삭인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 속에서 둑으로 감싼 저수지 가장 깊은 바닥 속에, 표면에 선 나는 그 끝이 보이지 않아 어렴풋이 '아, 끝이 존재하지 않는 무한 속이구나' 짐작하며,


그러니 내가 '없음'을 듣고 처음으로 속에서부터 구토해낸 단어는 바로, 밑바닥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끊임없이 내 입으로 토해진 물이 어디로 향하는가 잠시 궁금해하다,


아. 공허가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는 진리를 깨닫고야 만다. 강제로 행해지는 구역이 나를 투과체로 만드는구나. 나는 응어리진 깨진 장독이자, 하나의 면, 면이 굽은 기둥. 기둥이 된다. 내 안과 밖을 모두 하나로 채우면서 내가 세운 경계 속으로 기투하고, 낙하하고, 투신한다.


내 앎으로 (기투, 낙하, 투신)하는 삶은 내 생의 첫 생일에, 지금의 내 손 절반의 절반보다 더 작았을 고사리손으로 잡은 연필을, 내 쪽으로 주욱- 그어대는 선과 같아서 면에 첫 활공을 하듯 이리저리 치이고, 울퉁불퉁, x축으로- y축으로-. 그 선은 z축이 없음으로 기투도, 낙하도, 투신도 여의치가 않아서 하강을 한다.


언어가 되지 못한 옹알거림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성인들의 목소리를 타고, 아 언어에 담기는 사유는 그런 것이구나, 환생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니 그것은 최초의 읽기 이전의 듣기. 끄덕임으로 표현되는 수용의 행위이다.


나는 내 구역이 무엇을 토하려는지 알지 못해서,

그것을 삼키지도 뱉지도 못한 채.

혹시라도 중요한 것이면 어쩌나, 필요한 것이면 어쩌나. 어쩌나. 어쩌나.

입 속을 보며 눈알을 데구루루-한-번-더-'루' 하며 굴려댄다.


혹시나 그게 생이 될까. 내 삶이 될까.

내 마지막 생이 내 입에서 나오는 구역 속의 하강이, 낙하가, 투신이 될까 전전긍긍하면서.

또 한 번 '루'하며 눈알을 굴린다.

그러면서도 또 내 삶의 마지막은 아주 짧은 도약에서 비롯된 하강일 것이라는 운명을 믿으면서.


그러나 나는 이내

내게서 쏟아지는 것은 무제였구나

하면서,

입을 우악스럽게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