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1일 일요일 부활절. 기독교가 아니라 이 날이 부활절인지는 정확히 몰랐지만, 내가 자주 가던 카페에서 이스터 기념 식사를 근사하게 제공한다는 홍보를 자꾸 해서 대충은 알고 있었다. 그 날은 이박 삼일 간의 즐거운 엘라 여행을 마무리하고 콜롬보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차를 렌트하긴 했지만 엘라-하푸탈레 기차 구간이 예쁘다길래 그만큼만 기차를 타자 하고 덜컹거리는 기차 안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산들을 보고 있었다. 난 데이터를 꺼놓고 있었는데 언니한테 인터내셔널 sos에서 콜롬보에서 폭발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보내왔다. 우리가 엄청 좋아하는 뷔페가 있는 샹그릴라 호텔이 처참하게 망가진 모습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뭔가 사고가 있어 폭발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이 곳뿐만 아니라 더 많은 폭발이 생기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더 이상 기차 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기차에서 내려 드라이버 아저씨를 만났는데 눈물을 글썽이며 콜롬보에 큰일이 났다고 하셨다. 사람들이 죽었다고, 이때만 해도 사망자 수는 20명 정도였다. 이때만 해도 단순하게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푸탈레에서 콜롬보까지 가는 데에는 6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차를 타고 이동하며 부모님께 연락을 하고 기사를 찾아봤다. 부활절에 교회를 대상으로 폭파를 했기에 종교적인 테러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아, IS테러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점점 더 상황이 심각해지자 회사에서도 계속 연락이 오고 심지어 내 동기 중 세 명은 해외에 나가 있는데 연락이 안 되는 사람이 있어서 차를 타고 가는 6시간 내내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피 말리는 시간을 보냈다.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폭발물은 여기저기서 발견되고 있었다.
콜롬보에 거의 다 와갈 때쯤 7번째 8번째 추가 폭발이 일어났다. 심지어 우리가 콜롬보로 들어가는 길에 있는 지역이었고,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닌 평범한 게스트하우스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정말 아무데서나 폭발이 일어나는구나.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콜롬보 가는 길에, 평범한 우리 집에서도 폭발이 일어날 수 있겠구나. 안전한 곳은 없구나..
콜롬보에 도착해 사무실에 들러 안전함을 알려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콜롬보 시내는 원래 차가 정말 많고, 그만큼 트래픽도 매연도 심하다. 심지어 스리랑카 사람들은 딱히 이유가 없어도 클락션을 울려대서, 정부에서는 소음 공해를 이유로 클락션을 울리는 사람에게 벌금을 물게 할 계획까지 세우고 있을 지경이다. 평소에 나는 길거리를 걸으며 그 소리에 짜증을 내기 일수였는데 이 당시에는 차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무서웠다. 아무도 살지 않는 도시처럼 텅 비어있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무서웠다.
하필 또 그 날의 하늘은 기묘하고 불안한 모양새여서 더 무서움을 고조시켰다. 결국 그 날 저녁 다음날 출근하지 말라는 연락을 받았다. 절대 밖에 외출하지 말고 집에 숨어있으라고. 콜롬보에 도착한 일요일부터 오늘 수요일까지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간 적이 없다. 커튼을 걷는 것도 무서울 지경이다. 불안한 마음으로 방에서 텅 빈 거리를 내다보고 있으려니 지난 시간들이 다 꿈만 같았다. 금요일 저녁에 퇴근하고 카페에서 커피 마시던 일, 바닷가에서 노을을 보면서 평화롭게 저녁을 먹던 일, 쨍쨍한 여름 햇볕에 땀을 흘리면서도 걸어서 40분 거리인 쌀 국숫집에 가서 점심을 먹던 일. 출국이 3주 정도 남았는데 아마 그동안 이런 것들은 다 불가능한 일이겠지 생각하니 너무 안타까웠다. 그게 마지막일 줄 알았다면 더 소중히 할 걸. 언제나 마지막 순간에는 그게 마지막인지 모른다.
아직도 계속해서 폭발물이 발견되고 있다. 이번 테러를 겪으면서 정말 평화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뼈저리게 느꼈다. 항상 평화로웠기에 안전이 보장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몰랐던 거다.
또한 사람들의 선택적 애도가 얼마나 심한 지도 많이 많이 많이 느꼈다. 인명 피해 한 명도 없던 노트르담 성당 화재 사건 때는 애도의 물결을 표하고 기부를 하던 사람들이 사망자가 300명 가까이 되는 이 사건에는 관심조차 없다. 물론 스리랑카가 어떤 나라인지 잘 모르고 그냥 단순히 후진 나라 위험한 나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도 무고한 사람이 약 300명이 테러로 죽었는데 그 자체로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일이 아닌가. 선진국에서는 무슨 일만 나도 보도를 하루 종일 하면서 개도국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꽤 관심이 없다는 걸 많이 느낀다. 개도국 사람들은 항상 이런 식으로 살아왔겠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고 불편했다. 그 관심 없는 사람들 중 하나가 과거의 나였을 생각을 하니 반성도 많이 하게 된다.
편견이 사람들의 눈을 많이 가리는 것 같다. 개도국은 원래 위험해서 사람들이 많이 죽는 곳이라고 생각하니 여기서 테러가 일어났다고 해도 신경 쓰지 않는 것이겠지. 심지어 스리랑카에 간 덴마크인 재벌의 자녀들이 사망했다는 기사 댓글 중 그러게 돈도 많은 덴마크인이 스리랑카 같은 후진 곳을 왜 갔냐는 글도 봤다. 한국인들한테 잘 안 알려져서 그렇지 스리랑카는 서양인들에게 이미 유명한 휴양지다. 관광 도시에 놀러 가 보면 온 도시가 서양인으로 꽉 차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스리랑카 같은 곳에 왜 갔냐는 소리는 이런 걸 모르는 사람이니 하는 소리가 아닐까.
내가 지금까지 겪은 스리랑카는 이런 테러랑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정말 평화로운 곳이었다. 그 주된 이유는 스리랑카가 불교 국가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시에 불교 사원이 많이 있는데 그 안에 들어서면 이렇게 평화로울 수 있나 싶은 마음이 든다. 그 특유의 평화로운 분위기와 세속에 집착하지 않게 해주는 교리 때문에 이 곳에 온 뒤 거의 불교 신자가 되었을 정도다. 또한 여기는 비슷한 다른 동남아 국가에 비해(실제로 스리랑카는 서남아이긴 하지만) 도시 인프라가 꽤 잘 되어있어서 시골 지역에 가도 기본적인 생활은 보장되어있을 정도로 괜찮은 곳이다. 더불어 내가 여기서 만난 스리랑카 사람들은 정말 정말 착하고 순하고, 이 곳에서 살면서 단 한 번도 폭력적인 장면을 목격한 적이 없을 만큼 평화로운 곳이었다. 근데 이런 곳에서 테러가 일어났다니 정말 믿기지가 않는다. 애정이 가득한 나라라서 그런지, 내전이 끝난 지 10년밖에 안되었는데 또 이런 큰 테러가 일어났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
떠나기가 너무 아쉬워서 남은 날들 더 즐기다 가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슬프다. 통행 금지령이 내려지고, 길거리를 평범하게 걷지 못하고, 집에서 3분 거리인 회사도 회사차를 타고 다녀야 하고, 집 앞 슈퍼마켓도 걱정하며 다녀야 하고, sns는 차단됐다. 설상가상으로 와이파이도 잘 안돼서, 집에서 책을 읽고 팟캐스트를 듣고 직접 요리해먹는 강제 아날로그 생활 중이다. 그러나 이런 내 불편은 희생자들, 그 가족의 슬픔과 절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리라. 앞으로 더 이상의 피해자가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