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 종말

에너지 마진이 무너진 문명

by 미친생각

아우구스투스는 뛰어난 정치 감각과 회유 능력으로 귀족 집단을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회유였을 뿐, 강제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합의와 규범을 극도로 정교하게 활용했지만, 이를 끝까지 관철할 수 있는 강제 알고리즘은 갖추지 못한 구조였던 것이죠. 합의는 대등한 주체들 사이에서만 성립합니다. 규범 역시 집단 내부에 일정한 분위기와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작동하지요.


그러나 아우구스투스 생존 당시, 국가 중심 사고를 하고 있던 인물은 사실상 아우구스투스와 소수의 인원뿐이었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귀족 집단의 분위기는 바뀐 것이 아니라 억눌려 있었을 뿐이며, 이미 각자는 개별 정보처리장치 상태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탈선하는 개별 회로를 강제로 교정할 국가 알고리즘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죠. 따라서 아우구스투스의 죽음과 함께 로마가 개별 회로 중심으로 회귀한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피한 결과였다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탈선은 모든 계층에서 동일하게 발생하지는 않았습니다. 주로 귀족을 포함한 최상위 계층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아우구스투스는 생전에 로마 사회를 원로원 계급과 기사 계급, 그리고 평민과 빈민으로 구성된 플레브스로 구분했습니다. 이 시점부터 플레브스의 정치적 영향력은 급속하면서도 점진적으로 축소되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상위 계층을 견제하고 억제하던 압력 또한 사라지게 되었죠. 모든 개별 정보처리장치가 그러하듯, 귀족들도 국가가 아닌 자신의 에너지와 도파민을 최우선으로 추구하기 시작합니다. 이 흐름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행동 패턴으로 고착됩니다.


이후 로마의 황제와 귀족들은 사치와 폭정을 주요 행동 양식으로 삼게 됩니다. 이런 행동이 도파민을 얻는 강력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치와 폭정은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했습니다. 사치와 폭정으로 막대한 에너지가 소모되는 한편, 당시 로마는 자영농의 몰락으로 세수는 크게 줄고 정복전쟁의 감소로 외부에서 조달되는 에너지는 과거에 비해 현저히 약화된 상태였습니다. 로마는 에너지 투입 대비 대사량만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구조에 빠진 것이죠.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로마는 속주에만 부과하던 세금을 로마 시민에게까지 확대합니다. 동시에 로마 시민을 유지하기 위한 자격 조건도 상향시키고, 배급은 시민 자격을 가진 사람에게만 제공하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일부 평민과 빈민은 시민권을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이 배급을 통해 얻는 이익을 넘는다고 판단하여 시민권을 포기하기 시작합니다.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죠. 로마는 군대를 구성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태에 이릅니다. 결국 로마는 갈리아나 게르만 등 외국인에게 토지와 이익을 제공하는 대가로 용병을 고용하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로마라는 거대 정보처리장치와 로마인이라는 개별 정보처리장치는 모두 에너지 비효율 모드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에너지 공급이 부족한 생명체가 지방이 고갈되고 근육이 분해되는 것과 같은 상태가 된 것이죠.


말기에 이르러, 지방 군벌이라는 정보처리장치들은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더욱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획득하고자 합니다. 바로 침략과 약탈이죠. 이 상황에서는 이것이 가장 확실하게 많은 에너지를 얻는 방법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지방 세력이 이웃 속주나 도시를 공격하는 사례가 잦아졌고, 더 큰 세력을 가진 군벌은 쿠데타를 감행하는 단계에까지 도달합니다. 이러한 피의 순환이 몇 차례 반복된 끝에, 서기 476년 외국인 용병 오도아케르에 의해 서로마의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는 폐위됩니다.


로마는 이렇게 끝났습니다. 이 지점을 기점으로 고대 시대는 끝나고 중세 시대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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