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장미를 사랑한 브랜드, 랑콤(Lancome)

아르망 쁘띠짱(Armand Petitjean)


1935년 아르망 쁘띠장 랑콤(Lancome)을 설립하다.



사진=Lancome USA / © Lancome



1930년대는 경제 공황으로 사회적·정치적으로 불안한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션과 뷰티 산업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1935년 아르망 쁘띠장(Armand Petitjean)은 50세의 늦은 나이에 랑콤(Lancome)을 설립한다. 랑콤을 세우기 전에 그는 유럽에서 제품을 수입해 파는 무역업에 종사했었다. 나름대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이러한 경력은 창업 후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는 현대 향수의 아버지 프랑소 코티(Francois Coty)와 같이 일하면서 조향사의 매력에 빠진다. 후에 아르망 쁘띠장은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 프랑소 코티 곁을 떠나게 된다.



CONQUETE
KYPRE
BOCAGES
TENDRES NUITS
TROPIQUES


▲ 사진=Lancome USA / © Lancome



아르망 쁘띠장은 이국적인 남미 항구를 연상케 하는 트로피크(Tropiques) 향수를 가장 좋아했다.



아르망 쁘띠장은 수많은 조향사와 협력하여 꼬게뜨(Conquete), 키프레(Kypre), 보카쥬(Bocages), 땅드르 뉘(Tendres Nuits), 트로피크(Tropiques) 5개의 첫 향수를 제조했다. 그리고 1935년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Brussels)에 열리는 종합 전시회(Universal Exhibition)에 향수들을 선보이게 된다. 좋은 평가를 받으며 2개의 메달을 수상했지만 판매량은 썩 좋지 않았다.



랑콤(Lancôme) 이름의 유래

고성 랑코스메(Lancosme)에서 영감을 받다.


아르망 쁘띠장은 프랑스의 우아함을 표현할 수 있는 이름을 원했다. 처음에는 자신이 태어난 마을 이름 Saint-Loup를 고려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프랑스 중부의 장미가 흩뿌려진 고성 랑코스메(Le Château de Lancosme)에서 영감을 받게 된다. 운(Rhyme)을 맞추기 위해 알파벳 's'를 뺀 브랜드 랑콤(Lancome)이 탄생한다. 랑콤은 모든 사람이 발음할 수 있고 프랑스의 느낌이 물씬 나는 이름이었다.



랑콤의 전설적인 나이트 크림, 뉴트릭스(Nutrix)가 탄생하다.

Serum-based skincare cream



뉴트릭스(Nutrix) / 사진=Lancome USA, © Lancome



아르망 쁘띠장은 과학적인 방법으로 뷰티를 해결하고 싶었다. 수의학 연구원 메딘스키 박사(Dr.Medynski)와 공업 화학자 피에르 벨론(Pierre Velon)은 세럼(Serum)을 활용한 영양크림을 개발한다. 그들은 이 제품을 뉴트릭스(Nutrix)라고 불렀다. 화상, 곤충에 쏘였을 때, 트고 갈라진 피부, 동상, 면도기 사용 후 상처 났을 때, 기저귀로 인한 발진이 생겼을 때 등 만병통치약으로 통했다. 심지어 영국 국방부 장관(British minister of defense)은 뉴트릭스(Nutrix)가 방사능 화상에 유일한 치료제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뉴트릭스(Nutrix)의 탄생은 훗날 랑콤이 바이오미메틱 연구(Biomimetic Research: 생체 모방 연구)에 많은 투자를 하는 시발점이 된다.



1938년 관능적인 프랑스의 장미(Rose de France) 립스틱


프랑스의 장미(Rose de France) / 사진=Lancome USA, © Lancome



1938년 랑콤의 메이크업 제품도 좋은 전환기를 맞는다.


당시에 유행했던 제품은 키스를 해도 지워지지 않는 립스틱이었다. 그런데 립스틱을 바르면 입술 피부 조직도 같이 염색되었고 건조하게 만들었다. 아르망 쁘띠장은 질감이 부드럽고 키스를 부르는 립스틱을 선호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장미 향이 나는 연분홍색의 립스틱, 프랑스의 장미(Roese de France)였다. 또한, 다른 립스틱 제품과 달리 랑콤의 아름다운 립스틱 케이스는 소장 가치가 있었다. 프랑스의 장미(Rose de France)는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랑콤(Lancome)의 상징 - 장미(향수), 연꽃(미용), 아기 천사(메이크업)

세계 곳곳에 수출하다.



랑콤의 주축: 장미(향수), 연꽃(미용), 아기 천사(메이크업) / 사진=랑콤 USA



랑콤(Lancome)은 짧은 기간에 대표적인 3개의 브랜드를 구축했다. 향수에서는 장미, 미용에서는 연꽃, 메이크업에서는 아기 천사.  또한, 창업 4년 차 1939년에는 보고타(Bogota), 오슬로(Oslo) 등 세계 곳곳에서 제품 주문이 들어오기도 했다.



1942년 에콜 랑콤(Ecole Lancome)을 설립하다.


▲ 사진=Lancome USA / © Lancome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랑콤(Lancome)도 평범한 화장품 제조회사였다. 그런데 전쟁으로 물자가 부족해 지자 향수, 메이크업, 스킨케어 제품 생산을 중단해야 했다. 위대한 사람들은 언제나 위기를 현명하게 대처한다. 마찬가지로 아르망 쁘띠장도 중대한 결단을 내린다. 생산에 제한이 있다면 현재 주어진 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는 특별 교육 기관 에콜 랑콤(Ecole Lancome)을 설립한다. 선발된 젊은 여성들은 9개월 동안 랑콤의 문화와 비전, 브랜드 가치, 뷰티와 관련된 다양한 교육을 받는다. 교육을 수료한 사절단(Ambassador)은 랑콤의 메시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커뮤니케이터가 된다. 그들은 고객들과 직접 소통하며 랑콤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아르망 쁘띠장은 입소문이야말로 브랜드 명성을 쌓는데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랑콤(Lancome)의 후계자는 누가 될 것인가?


아르망 쁘띠장에게는 아들이 한 명이 있었다. 아들의 이름은 아르망 마르셀(Armand-Marcel)로 글을 쓰는 작가였다. 아르망 마르셀은 폭군 같은 아버지와 절대 일하지 않겠다고 말하곤 했다.


대신에 손자 장 클로드(Jean-Claude)는 할아버지를 잘 따랐다. 그는 향수 제조법을 배우고 10개의 언어를 습득하며 운동도 잘하는 완벽한 랑콤의 후계자로 자랐다.


1955년에 그의 아내는 세상을 떠난다. 그러자 아르망 쁘띠장은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이듬해 손자 장 클로드(Jean-Claude)는 랑콤의 후계자의 길이 아닌 자신의 길을 가기로 결정한다. 아르망 쁘띠장은 회사의 통제권이 점점 복잡해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1961년 랑콤(Lancome) 재정 위기가 찾아오다.


아르망 쁘띠장은 그의 자산과 랑콤의 자산 대부분을 셰빌리(Chevilly)에 새로운 공장을 짓는데 쏟아붓는다.


화장품 시장은 빠르게 변화였고 채무는 점점 불어났다. 그러자 은행에서 그의 아들 아르망 마르셀(Armand-Marcel)에게 연락한다. 더 이상 당신의 아버지를 믿을 수 없으니 대안을 내달라는 메시지였다. 아르망 마르셀은 비즈니스 경험이 전무한 작가였다. 사태가 시급한 만큼 그는 랑콤에서 3년 동안 임시 이사로 일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랑콤은 재정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1964년 로레알에 인수되다.


재정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랑콤은 돌파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사태의 중대함을 깨달은 은행은 랑콤을 팔아야 했다. 인수할 기업을 물색해 보지만 소문만 무성할 뿐이었다. 인수 의사를 보인 회사들은 프랑스 회사가 아니었다.


우여곡절 끝에 랑콤(Lancome)은 1964년에 로레알 그룹에 매각된다.



1970년 9월 아르망 쁘띠장 84세 나이로 세상을 떠나다.


뛰어난 지력과 창의적인 아르망 쁘띠장은 충만한 삶을 살았다. 작게 시작하여 막대한 돈을 벌어보기도 잃어버리기도 했다. 또한, 대통령과 왕자와 친분을 쌓기도 했다.


1955년 랑콤은 98개국에 제품을 팔았다. 중국과 같은 일부 국가에서 랑콤은 환영받지 못했다. 언젠가 아르망 쁘띠장은 중국의 모든 여성에게 립스틱 하나를 팔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현재의 랑콤은 중국을 포함한 163개국에 제품을 판매하는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로 성장했다. 이 소식을 듣는다면 아르망 쁘띠짱은 뛸 듯이 기뻐할 것 같다.

이전 06화 로레알은 어떻게 세계 최대 화장품 회사가 되었는가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브랜드에 '왜'가 필요한 이유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