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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적인 화장품 오르가즘 블러시, 나스(NARS)

프랑수아 나스(François Nars)


My goal is to make people look beautiful and bring out what is on the inside. I truly believe that beauty lies within our character.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패션과 뷰티에 눈을 뜨다

만화보다는 보그(French Vogue) 잡지의 패션과 디자인, 사진을 아주 좋아했다.


프랑수아 나스(François Nars)는 1959년 프랑스 남부 타르브(Tarbes) 지역에서 태어났으며,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프랑수아 나스(François Nars)의 어린 시절 / 사진=interviewmagazine



그의 어머니 클로데트(Claudette)는 다양한 디자이너의 옷을 수집하였다. 이를 보고 자란 프랑수아 나스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패션과 뷰티에 일찍부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머니는 아들 프랑수아 나스가 패션업에서 일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녀는 아들을 파리의 유명한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약속이 있을 때 종종 데려가곤 했다.


또한, 어머니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올리비에 에쇼드메종(Olivier Echaudemaison)의 어시스턴트로 일할 수 있도록 그를 도와주기도 했다.



할머니 리아(Lea)와 어머니 클로데트(Claudette) /사진=interviewmagazine



어머니 클로데트(Claudette) / 사진=interviewmagazine



어렸을 때 나스는 어머니의 메이크업을 해주기도 했다.



1984년 뉴욕으로 건너가다

보그(Vogue) 편집장 폴리 멜런(Polly Mellen)의 권유



사진=NARS Cosmetics 유튜브 / © NARS



그는 프랑스 파리의 카리타(Carita Institute) 메이크업 스쿨을 졸업하고 1984년 뉴욕으로 떠난다.



출처: interviewmagazine



프랑수아 나스는 프랑스 남부에서 사는 것이 지루했다. 당시 그는 아메리칸 보그(American Vogue)의 편집장 폴리 멜런과 함께 일했다. 그녀는 나스에게 미국으로 오라고 제안했고(무려 두 번씩이나), 단숨에 미국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보그(Vogue) 편집장 폴리 멜런(Polly Mellen)의 도움으로 매거진 에디토리얼(Editorial) 작업을 할 수 있게 된다. 당시에 만났던 포토그래퍼 스티븐 마이젤(Steven Meisel)과 헤어 스타일리스트 오리베 카나넬스(Oribe Canales)와 함께 일하면서, 이 3인조 그룹은 패션업계에서 영향력이 더 커진다.





1980-90년대 엘르, 아메리칸 보그, 보그 이탈리아 등 수많은 패션 매거진 에디토리얼 작업을 하면서 승승장구한다.





1994년 나스 코스메틱(NARS Cosmetics)을 설립하다

본사는 프랑스에 있다.


사진=NARS Cosmetics 유튜브 / © NARS



1994년 프랑수아 나스는 자기 이름을 딴 나스 코스메틱(NARS Cosmetics)을 설립한다.


25년 전 뷰티 시장은 지금처럼 빠르게 변하지 않았다. 당시 립스틱은 여전히 인기 있는 제품이었지만, 동시에 여러 립스틱을 론칭한 브랜드는 많지 않았다. 나스(NARS)는 12가지 색상의 립스틱 컬렉션을 뉴욕의 바니스(Barneys) 백화점에 독자적으로 판매한다.


프랑수아 나스가 파비앙 바론(Fabien Baron)을 처음 만난 곳은 마이애미(Miami)에서 '이탈리안 보그'를 촬영했을 때이다. 프랑수아 나스는 누구와 함께 일해야 하는지 감각적으로 아는데, 이것이 그의 강점이다. 그는 브랜드와 광고 캠페인을 제작하기 위해 파비앙 바론을 찾아간다. 결국, 나스(NARS)의 매끄럽고 윤이 나는 검은색의 패키징을 디자인한 것은 바로 파비앙 바론(Fabien Baron)이었다.



사진=NARS Cosmetics 유튜브 / © NARS



그가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15살 무렵이었지만 취미활동에 불과했다.


그런데 1996년 예산 부족으로 나스(NARS) 광고 캠페인 사진을 직접 찍어야 했다. 이후에 그의 독특한 사진들이 인정받으면서 프랑스 보그(France Vogue), 독일 보그(German Vogue), 하퍼스 바자(Haper's Bazaar) 등 유명한 패션 매거진의 전문 포토그래퍼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1991년 뉴욕, 마돈나와 프랑수아 나스 / 사진=violetgrey



1999년 오르가즘 블러시(Orgasm Blush) 론칭

오르가즘 블러시(Orgasm blush)는 전 세계에서 30초마다 하나씩 팔리고 있다.





1999년 나스(NARS)는 오르가즘 블러시(Orgasm blush) 제품을 출시한다. 제품명에서 풍기는 성적인 이미지 때문에 논란이 될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처음에는 자극적인 이름으로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끌었다. 하지만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연분홍색 블러시로 인식되면서 나스(NARS)의 베스트셀링 제품으로 자리 잡게 된다. 또한, 이제는 거림낌 없이 젊은 여성들도 '오르가즘 블러시' 제품명을 말하며, 더 이상 성적인 이미지로 다가가지 않는다.



2000년 시세이도(SHISEIDO)에 인수되다


2000년 나스(NARS)는 일본의 대표 화장품 브랜드 시세이도(SHISEIDO)에 매각된다. 매각 후에도 프랑수아 나스는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포토그래퍼 역할을 수행한다.


회사 매각 대금으로 프랑스령의 타히티(Tahiti) 섬을 사들였다. 그는 이 섬에 머물면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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