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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년 유럽 왕실의 향수, 겔랑(Guerlain)

피에르 프랑수와 파스칼 겔랑


1914년 겔랑 하우스는 샹젤리제 거리(68, Champs- Elysées)로 옮긴다 / 사진=겔랑 웹사이트 © Guerlain



겔랑(Guerlain) 창립자, 피에르 프랑수와 파스칼 겔랑(Pierre-François Pascal Guerlain)

(1798년 – 1864년)



피에르 프랑수와 파스칼 겔랑 / 사진=겔랑 웹사이트 © Guerlain



겔랑 하우스(Guerlain house)의 창립자 피에르 프랑수와 파스칼 겔랑(Pierre-François Pascal Guerlain)은 화학자이자 탐험가였다.



파리의 루에 드 리볼리(Rue de Rivoli) / 사진=Wikimedia Commons



그는 1828년 프랑스 파리의 루에 드 리볼리(Rue de Rivoli)에 첫 번째 매장을 열게 된다. 당시 리볼리(Rivoli)는 젊은 사람들로 가득 찬 거리였다. 처음에 겔랑 하우스(Guerlain house)는 일반적인 위생 제품을 판매하였다. 그러나 피에르 프랑수와 파스칼 겔랑은 사람들이 신선한 꽃향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고 맞춤형 향수도 제조하여 고객들에게 판매하였다.


또한, 겔랑 하우스는 향수뿐만 아니라 스킨케어 제품도 만들었다. 1830년 바우메 드 라 페르떼(Baume de la Ferté)는 젖을 먹이던 유모의 가슴이 트고 갈라지는 것에 착안하여 만든 제품이다. 이는 현재 림밥(Lip balm)으로 발전하여 판매되고 있다.



오 데 코롱 임페리얼(Eau de Cologne Impériale) / 사진=겔랑 웹사이트 © Guerlain



The bee bottle / 겔랑 유튜브 © Guerlain



황후를 상징하는 벌 모양이 새겨진 향수 '오 데 콜롱 임페리얼'은 현재도 판매되고 있는 겔랑의 대표적인 향수다.



유럽 왕실에서 겔랑 하우스의 명성이 높아진 사건이 하나 있었다. 1853년 나폴레옹 3세(Napoléon III)와 황후 유제니(Eugénie) 결혼식 기념으로 특별히 조제된 '오 데 코롱 임페리얼(Eau de Cologne Impériale)'을 황후 유제니에게 선물한다. 이를 계기로 겔랑 하우스는 유럽 왕실로부터 명성을 인정받았다. 이처럼 겔랑 하우스는 유럽 왕실 전속 조향사로 지정되면서 오랫동안 명성을 이어나간다.


피에르 프랑수와 파스칼 겔랑은 1864년에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첫째 아들 에메 겔랑(Aimé Guerlain)이 겔랑 하우스의 2세대 조향사를 이어 받았고, 둘째 아들 가브리엘(Gabriel)은 경영을 맡았다.



겔랑 2세대, 에메 겔랑(Aimée Guerlain)

(1834년 – 1910년)



에메 겔랑  / 사진=겔랑 웹사이트 © Guerlain



겔랑 하우스를 이어 받은 첫째 아들 에메 겔랑(Aimé Guerlain)은 1889년 지키(Jicky)를 만들었다. 겔랑 지키(Guerlain Jicky)는 합성 요소 쿠마린(Coumarin)을 최초로 첨가하여 만든 향수다. 이는 현대적 향수의 시초라 할 수 있다.



색조 립스틱의 기원은 '메소포타미아'다. 하지만 현대적 의미의 립스틱은 겔랑에서 시작되었다. 겔랑은 1871년에 '나를 잊지 마세요'라는 의미인 '느 무블리에 빠(ne m'oublie pas)' 립스틱을 출시하였다. 본격적으로 립스틱의 시대가 열린 것은 금속형 용기에 담긴 립스틱이 개발된 1915년부터다.



겔랑 3세대, 자크 겔랑(Jacques Guerlain)

(1874년 – 1963년)


자크 겔랑  / 사진=겔랑 웹사이트 © Guerlain


에메 겔랑(Aimé Guerlain)의 조카이자 가브리엘 겔랑(Gabriel Guerlain)의 아들인 자크 겔랑(Jacques Guerlain)이 겔랑 하우스의 3번째 조향사를 이어받는다. 자크 겔랑은 그림, 음악, 문학 등 예술적인 분야에서 많은 영감을 받곤 했다. 16살 무렵 이미 그는 자신의 최초의 향수 앙부르(Ambre)을 만들어 낸다. 또한, 에메 겔랑(Aimé Guerlain)은 겔랑 하우스를 대표하는 향수도 만들었다. 예를 들어, 뢰르 블루(L'Heure Bleue, 1912), 미츠코(Mitsouko,1919), 샬리마(Shalimar, 1925) 등이 있다.


그중에서 샬리마(Shalimar, 1925) 향수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샬리마(Shalimar) 향수

황제 샤 자한(Shah Jahan)과 황후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의 숭고한 사랑에서 탄생


샬리마 오 드 퍼퓸 / 사진=겔랑 웹사이트 © Guerlain



4세기 전 인도 무굴제국의 제5대 황제 샤 자한(Shah Jahan)은 두 번째 부인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을 무척이나 사랑했다. 그녀를 향한 사랑의 표시로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샬리마(Shalimar) 정원을 만든다. 그런데 황후 뭄타즈 마할은 아이를 출산하다가 39세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황제 샤 자한(Shah Jahan)은 황후를 추모하기 위해 타지마할(Taj Mahal) 무덤을 짓기로 한다. 막대한 비용과 22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완성된다. 이처럼 타지마할 무덤과 샬리마 정원은 황제의 숭고한 사랑을 상징한다.



사진=brandtruth.com.au



사진=brandtruth.com.au



놀랍고도 황제의 숭고한 사랑에 자크 겔랑(Jacques Guerlain)은 많은 영감을 받았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1925년 최초의 오리엔탈 향수 샬리마(Shalimar: 산스크리트어로 '사랑의 신전'을 의미)이다. 바카라 크리스털(Baccarat crystal: 프랑스의 최고급 크리스털 제작 회사) 병에 담겨 있는 샬리마는 섬세하고 유혹적인 향기를 지녔다.



겔랑 4세대, 장 폴 겔랑(Jean-Paul Guerlain)

(1937년 출생)


장 폴 겔랑 / 사진=겔랑 웹사이트 © Guerlain



장 폴 겔랑(Jean-Paul Guerlain)은 자크 겔랑(Jacques Guerlain)의 손자이며 겔랑의 4번째 조향사이다. 처음에는 어시스턴트로 일하였지만 점차 발전하여 그의 첫 번째 향수 겔랑 베티버(Guerlain Vetiver, 1959)을 출시한다. 그가 만든 유명한 향수로는 아비 루즈(Habit Rouge, 1965), 샤마드(Chamade, 1969), 오 드 겔랑(Eau de Guerlain, 1974), 나헤마(Nahema, 1979) 등이 있다.


그동안 겔랑 하우스는 150년 이상 동안 패밀리 비즈니스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1994년 LVMH(루이비통 모에 헤네스)에 겔랑 하우스가 매각된다. 매각된 이후에 장 폴 겔랑(Jean-Paul Guerlain)은 2002년까지 컨설턴트로 남아서 일을 한다. 결국 자크 겔랑(Jacques Guerlain)은 겔랑 가문의 마지막 조향사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겔랑 5번째 조향사, 티에리 바세(Thierry Wasser)


티에리 바세 / 사진=겔랑 웹사이트 © Guerlain



2008년 티에리 바세(Thierry Wasser)가 겔랑 하우스의 다섯 번째 조향사 후계자로 임명되었다. 그는 향수 제작에 필요한 천연 재료를 구하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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