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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스틱(Lipstick) 하나로 평정하다

바비 브라운(Bobbi Brown)


하고 싶던 메이크업을 본격적으로 배우다.


바비 브라운(Bobbi Brown)은 1957년 4월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유대인으로 조 브라운(Joe Brown)과 산드라 브라운(Sandra Brown)이다.


어릴 적 친구와 함께 물건을 팔겠다는 마음으로 지하실에 상점을 열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물건을 살 고객도 없었고 심지어 유동 인구도 없다는 것을 금방 깨닫는다.


위스콘신(Wisconsin) 대학에서 6개월 그리고 애리조나(Arizona) 대학에서 1년을 보낸 후 학교를 그만둔다. 그녀는 어머니에게 무대 메이크업을 공부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 친구 한 명이 보스턴의 에머슨(Emerson) 대학을 추천해 준다. 마침내 바비 브라운은 에머슨 대학에서 무대 메이크업과 사진 공부를 시작한다.  



뉴욕에서 전문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경력을 쌓다.


대학 졸업 후 1년 뒤, 1980년에 그녀는 뉴욕으로 이사를 갔다.


뉴욕에 도착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전화번호부에서 일자리를 찾는 것이었다. 사진기자, 모델 에이전시, 메이크업 등과 관련된 거의 모든 정보를 찾아 연락을 했다. 이처럼 새로운 것에 거리낌 없이 도전하는 것이 그녀의 성향이었다.


사실, 대학에서 만든 그녀의 메이크업 포트폴리오는 내세울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비 브라운은 뉴욕에서 전문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이름을 알린다.



1980-90년대 프리랜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일할 때 잡지 표지 사진 모음 (사진 = justBOBBI.com)



나오미 캠벨의 Vogue 첫 표지 사진 (사진=justBOBBI.com)



Vogue 표지 작업, 일류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인정을 받다.


1989년 바비 브라운은 당시 유명했던 사진작가 패트릭 드마쉘리에(Patrick Demarchelier)와 슈퍼 모델 나오미 캠벨(Naomi Campbell)과 보그(Vogue)의 표지 사진 작업을 함께 했다. 보그(Vogue)의 표지를 담당한다는 것은 일류 아티스트로 인정받았다는 의미였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온다.


1988년 바비 브라운은 패션 잡지 마드모아젤(Mademoiselle) 촬영을 위해 여러 장소를 돌아다녔다. 그중 한 곳이 화장품 브랜드 키엘(Kiehl's)이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한 명의 화학자를 만나게 된다.


바비 브라운: "시중에 나와있는 립스틱은 형편없습니다."

화학자: "왜요?"

바비 브라운: "지속성이 약하고 건조합니다. 악취가 나는 제품도 있어요. 여러가지 색상을 위해서 기존 제품을 섞어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화학자: "아... 그렇군요."

바비 브라운: "오랫동안 촉촉하게 유지되고 자연스러운 색상의 립스틱이 있었으면 합니다."

화학자: "그럼 제가 한 번 만들어 볼게요."



사진=justbBOBBI.com



나중에 바비 브라운은 그에게 견본품을 보낸다. 그리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



1991년 10가지의 립스틱 Bobbi Brown Essentials을 론칭하다.


1980년대는 전형적으로 밝은 색조, 반짝거리는 립스틱, 과장된 메이크업 스타일 등이 유행이었다. 하지만, 바비 브라운은 여성들의 자연스럽고 건강한 아름다움을 부각하는 메이크업이 언제나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자연스러운 메이크업 스타일은 새로운 트렌드가 되었다.


1990년 바비 브라운은 PR회사 케언스 앤 어소시에이츠(Cairns & Associates)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일한 적이 있다. 당시 부사장이었던 로잘리아 랜디스(Rosalind Landis)을 알게 된다. 어느 날 부부 동반으로 저녁을 먹게 되는데, 로잘리아의 남편은 코스메틱 산업에 몸담고 있었다. 이 두 커플은 50 대 50 지분 총 10,000 달러로 바비 브라운 코스메틱(BOBBI BROWN Cosmetics)을 설립한다.


사실, 바비 브라운은 이전부터 좋은 비즈니스 파트너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계기가 있었다. 1981년, 글래머 잡지(Glamour magazine)의 뷰티 에디터가 바비 브라운에 대해서 단 3줄의 글로 표현한 적이 있다. 그 이후로 그녀는 엄청나게 많은 주문 전화를 받았다. 좋은 비즈니스 파트너의 필요성을 깨닫는 기회였다.



버그도프 굿맨(Bergdorf Goodman) 백화점에서 대박 나다.


1991년 아들과 함께 버그도프 굿맷 백화점 밖에서 브랜드 론칭한 날 / 사진=The Guardian



어느 날 바비 브라운은 저녁 파티에서 한 여성을 만난다. 그녀는 버그도프 굿맷 백화점에서 코스메틱 바이어로 일하고 있었다. 바비 브라운은 기회다 싶어 그녀에게 자신의 제품 립스팁에 대해  열심히 홍보했다. 처음에는 구매의사를 보이며 좋은 방향으로 흘렀다. 하지만 그 바이어는 바쁜 시즌이라는 핑계로 말을 번복했다.


다행히도 삭스(Saks) 백화점에서 그녀의 제품을 사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바비 브라운은 버그도프 굿맨 백화점에 전화해서 삭스 백화점에서 자신의 제품을 원한다고 전한다. 10분 후 버그도프 굿맨 백화점에서 그녀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당장 계약하자고 제안했다.



1991년 뉴욕의 버그도프 굿맥 백화점에서 Bobbi Brown Essentials 첫 판매 시작 (사진=justBOBBI.com)



그 후로 바비 브라운은 삭스(Saks) 백화점에는 전혀 가보지 않았다. 버그도프 굿맨 백화점에서 첫 판매를 시작한다. 그녀의 목표는 첫 달에 100개의 립스틱을 파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박이 난다. 판매 첫날에 립스틱 100개를 팔아 치웠다.



1995년 에스티로더에 인수되다.


에스티로더 컴퍼니에 인수되기 전에 두 번의 큰 인수 제안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거절했다.


에스티로더(Estee Lauder) 웹사이트


레나드 로더(Leonard Lauder)는 바비 브라운을 찾아와 인수를 제안한다.


당신을 보면 우리 어머니(에스티 로더)가 에스티 로더 컴퍼니를 시작했을 때 생각이 납니다. 당신의 회사를 인수하고 싶습니다.


인수된 후에 바비 브라운은 계속 남아서 CCO(Chief Creative Officer, 최고 창의력 책임자)로 일하였다. 그러나 공동 창업자였던 로잘리아 랜디스는 회사를 떠난다.


에스티로더에 인수되고 초기에는 실적이 저조했다. 그래서 사내 문화를 바꾸고 사무실을 옮기게 된다. 다행히도 다시 정상 궤도에 오르며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한다.



에스티로더 퇴사 후, 바비 브라운은 여전히 왕성한 사업가


2016년 12월 바비 브라운은 에스티로더 컴퍼니를 떠났다. 그녀는 새로운 사업들((EVOLUTION 18, justBOBBI)을 시작했고, 여전히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Women want to look and feel like themselves, only prettier and more confi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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