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ackie Jun 18. 2020

다양한 작가들의 집단지성으로 탄생한 한국형 SF

월면도시 PART1: 일광욕의 날

모든 민족과 국가는 달에 대한 민화와 신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처럼 달에 사는 토끼나 두꺼비를 믿는 민족도 있었고, 근대에 와서는 부정확한 관측 결과를 갖고 달에 사는 미지의 고등 생물이 운하를 만들었다고 믿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969년 암스트롱에 의해 인류의 한 걸음이 달에 새겨진 이후로 달은 신화의 영역에서 현실의 영역으로 내려와 심리적으로 우리와 좀더 가까워졌습니다. 심지어 현재는 민간인들에 의한 달탐사가 현실화 되어가고 있어 이제 더 이상 달은 미래에 존재할 우리의  후손가 아닌 현재의 우리가 바라보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달은 우리에게 가장 친근하고도 가장 많은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는 존재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단편 모음집 '월면도시: part 1. 일광욕의 날' 속의 배경 도시는 가까운 미래에 존재할 것 같은 곳입니다. 더군다나 소설 속의 사건들은 배경과 등장인물들을 지금 여기의 우리들로 치환한다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저는 필립 K. 딕을 상당히 좋아하긴 하지만 가끔 그의 소설을 읽으면 이건 SF의 영역에서 판타지로 넘어가 마치 작가가 아닌 내가 환각에 빠진 듯한 느낌 속에서 허우적 거리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대표적인 책이 저에겐 '유빅'입니다. 불편함과 호기심 속에서 균형을 잡으며 끝까지 독자로서의 역할을 다했던 책이 '유빅'라면 이 책 '월면도시'는 오로지 호기심과 즐거움만으로 충만하여 읽었습니다. 



첫 단편은 '회색인간'으로 유명한 김동식 작가의 ‘재현’입니다.  한때 최고 권력을 누렸던 가문의 자부심과 정체성이란 어떻게 유지되고 어떻게 후세에 전달되는지를 통해 그들의 자부심과 정체성의 기반이라는 것이 얄팍한 허구에 불과한 것임을 냉소적으로 보여줍니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과거 지구의 문화가 현재 달의 문명으로 전달되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소실되어, 결국은 남아 있는 소수의 정보가 신격화 된 것입니다. 결국 신화나 전설에 불과한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정보가 어떻게 권력으로 변화되는지를 보여주면서 현재의 우리와 달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그닥 다르지 않음을 조롱합니다. 또한 달과 지구 사이에 어떤 사건으로 인해 양쪽의 문화가 이렇게 단절된 것인지가 '월면도시' 책 전체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큰 가닥이 될 것 같다는 복선을 암시하는 듯 합니다. 



정명섭 작가의 '진시황의 바다'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단편집입니다. SF 소설이지만 영생에 대한 인간의 오래된 욕망이 정치적인 목적과 맞닿았을 땐 어떻게 변질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벌써 제목부터 진시황의 바다인데다가 불로초를 찾아 떠났던 서복에서 유래했던 서복의 후예들이 월면도시에서 혁명의 주동자로서 어떤 역할을 했었는지가 등장합니다. 신화와 역사, 그리고 SF가 조합된 소설 '진시황의 바다'는 장르를 아우르는 통섭적 소설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제 13호'는 센트럴이라는 중앙집권적 절대 권력이 숨기고 있는 비밀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힌트를 줍니다. 중앙도시 센트럴을 중심으로 12개의 주변 도시는 트레인이라는 12개의 대중교통으로 연결됩니다. 하지만 도시의 외부지역에서 역사에 기록된 적도 없고, 존재가 확인 된 적도 없는 트레인 13호가 발견되면서 사건은 시작됩니다. 이번 이야기 '제 13호'가 특히 월면도시 전체에서 가지는 중요성은 센트럴이라는 중앙권력이 가지는 독재와 더불어 그들이 숨기는 비밀이 이번 편에서 살짝 보여집니다. 그리고 이번 책 월면도시 part 1의 부제목 '일광욕의 날'이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는지 아주 조금 보여줍니다. 




"분명 이 날짜는 일광욕의 날일 텐데." 

이십년 전 일어난 일광욕의 날은 하늘에서 쏟아진 미확인 이상광선의 노출로 많은 시민들이 피해를 본 유례없던 재난이었다. 이로 인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이상광선에 포함된 방사선 노출로 태어난 돌연변이들은 버림받아 도시의 뒷골목이나 지하수도, 폐기구역 쪽으로 흘러들어갔다. 센트럴에 조사국과 특수조사관이 생겨나게 된 직접적인 배경이기도 했다. 



 홍지운 작가의 '하드보일드와 블루베리타르트' 역시 제일 좋았던 작품 입니다. '진시황의 바다'가 신화와 접목된 SF 단편이었면 이번 편은 하드보일드와 접목한 SF단편입니다. 게다가 블루베리타르트를 구워내는 토끼수인 '흰'은 극적 요소와 반전 요소를 모두 지닌 매력적인 캐릭터인데다가 몸으로 뛰며 온갖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는 뱀 수인 '나'는 전형적인 하드보일드의 탐정이니 두 캐릭터 모두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블루베리타르트는 최근 읽었던 아가사 크리스티의 '쥐덫'에 수록된 단편 ‘검은 딸기로 만든 스물네 마리 검은 새’에서도 사건을 해결하는 결정적인 매체로 등장하니, 이정도면 블루베리타르트는 도대체 작가들에게 어떤 마성을 지닌 디저트인가 싶어지는군요.



김창규 작가의 '가마솥'은 초능력자들의 이야기와 범죄 이야기가 등장하여 흥미롭기도 하지만 센트럴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데에서 어쩌면 '월면도시: part 2'는 센트럴을 붕괴시키려는 혁명군들의 이야기는 아닐까 싶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에필로그:너울'에서 예고편인것 마냥 앞으로의 이야기를 잠시 흘려주시니 읽다가 혼자서 회심의 미소를 짓기도 했습니다. 




최지혜 작가의 '예약 손님'은 일광욕의 날 이후 생겨난 돌연변이 달의 아이들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에필로그: 너울'에도 등장하는 달의 아이들은 초능력을 지녔지만 일반인들에게는 환영받지 못하는 공포의 대상입니다. 이 아이들이 달의 거주민이 아닌 외계인과의 조우를 통해 구원받는 이야기가 바로 "예약 손님"입니다. 


이 책'월면도시'가 다른 SF 소설에 비해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같은 주제와 같은 배경, 같은 모티브를 가지고 여러 작가들이 모여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냈다는 것입니다. 각자의 작가들이 지닌 특징이 있기에 '진시황의 바다'와 같은 신화적 이야기에서부터 '하드보일드와 블루베리타르트'같은 하드보일드류, 그리고 '예약 손님' 같은 휴머니즘을 강조한 SF까지 다양한 분위기의 단편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모두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기에 전혀 위화감 없이 전체의 이야기가 '월면도시' 속에서 조화롭게 어울어집니다. 이렇듯 여러 작가들의 시점과 가치관, 그리고 특징이 묻어나면서도 조화롭게 하나의 방향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는 것이 마치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것과 비슷한 방법은 아닌가 싶어 더욱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 에필로그와 추천사까지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이렇게까지 내 마음에  쏙 드는 한국형 SF 소설을 읽어 본 적이 있었던가'라는 질문과 함께 최근 소설들에 대한 기억의 소환이었습니다. 가장 최근에 읽었던 SF 소설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이었습니다. 물론 좋은 책이었고 생각할 거리가 많았고 작가의 생각에 충분히 공감했지만 정말 오로지 재.미.만을 초점에 맞추고 다시 묻는다면 아마 필립 K 딕의 '죽음의 미로' 와 '월면도시' 사이에서 고민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저에게 최고의 SF 소설은 'SF판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라고 제가 이름 지은, 충격적 결말에 혼란스러웠던 '죽음의 미로'거든요. 




하지만 이제 No,1 SF 소설이 바뀔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우리 SF 소설 장르에서는 말이죠. 그래서 말인데요, '월면도시: part2'는 반드시 나오는 거겠죠? 달의 아이들이 보여준 혁명의 기운으로 센트럴이 어떤 비밀을 숨기고 있는지 알려줘야 하는 거잖아요. 게다가 작가님들은 일광욕의 날에 등장한 그 괴물의 정체도 알려줄 의무가 있습니다. 행복한 마음으로 '월면도시: part 2'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