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의 사조영웅전 속 곽정과 Leo the Late Blommer
구음진경, 항룡십팔장, 타구봉법, 탄지신공, 합마공, 일양지. 이것은 김용의 소설 사조영웅전에 나오는 절대 신공이다. 무협소설은 클리쉐를 따르는 이야기 진행방식이 많아 진부하지만 읽는 내내 마음은 편하다. 항상 같은 결과를 도출해 내기 때문이다. 악인은 벌을 받고 주인공은 복을 받는다. 읽으면서 마음 졸일 일이 없다.
무협지 주인공의 인생은 주로 결핍된 상태로 시작한다. 부모님이 억울하게 죽는 일이 다반사다. 하지만 역경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는 주인공은 절대 고수 혹은 절대 신공을 우연히 만난다. 주로 깊고 외진 계곡 속에 떨어지면 그곳에서 무공을 연마하여 천하 절대 고수가 돤다. 그리고는 다시 강호로 되돌아와서 복수를 하고 천하 미인과 사랑에 빠지며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된다.
중학교 때 사조영웅문을 처음 읽었다. 이야기에 푹 빠져 몇 번을 다시 읽었고 2부 신조협려, 3부 의천도룡기를 연달아 읽었다. 영웅문 시리즈와 실제 중국사를 분간 못해서 친구들이 걱정할 정도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영웅문 시리즈는 1부 사조영웅문이다. 이 장편 소설의 주인공 곽정은 마음 착하고 정의로운 소년이지만 지나치게 고지식하고 배움이 느리다. 열개를 알려주면 하나를 알까 말까 하는 아이다. 다행스러운 일은 우직하고 끈기가 강해서 다 익힐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보기에는 배움이 늦되기 때문에 바보 같다고 여겨지지만 스승의 입장에서는 안타깝고 안쓰러워 더 챙겨주고 싶은 아이다. 그래서일까. 곽정에게는 행운이 많이 일어난다. 죽지 않으려고 고군분투하다가 우연히 먹게 된 30년 된 보약, 이름도 모르고 배우고 되는 천하제일신공, 절대 고수의 무남독녀와 결혼까지 온통 좋은 일만 벌어진다. 하지만 우연한 행운이 곽정에게만 쏟아지는 이유가 충분히 수긍이 간다. 우직하게 자신의 신념을 밀고나가는 고집이 남들이 보기에는 어리석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냈기에 좋은 일만 , 그리고 성공가능한 일만 일어나기 때문이다. 결국 곽정은 나라를 위험에서 구하고 정의를 실천하면서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영웅으로 다시 태어난다.
가르치는 일을 하다보면 늦게 꽃 피는 학습자들을 종종 보게 된다. 영어 그림책 <Leo the late bloomer> 속의 레오(Leo)도 곽정과 마찬가지다. Leo는 읽지도 못하고 쓰지도 못하고 심지어 밥도 지저분하게 먹는 아이입니다. 그래서 레오의 아빠는 걱정이 많다. 늦된 아이 레오의 문제를 고민하는 아빠에게 엄마는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Leo is just a late bloomer. Patience.
아빠는 여전히 불안하다. 레오가 잘하고 있는지 매일 지켜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레오가 나아지지 않자 아빠는 지켜보는 것을 포기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레오는 글을 읽고 문장으로 말하고 밥도 깔끔하게 먹어치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I made it!
남들보다 시간이나 양적으로 더 열심히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대기만성형이다. 아이들에겐 시간과 기다림이 필요했을 뿐 아이들의 능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레오의 아빠처럼 아이를 감시하지 말고 레오의 엄마처럼 인내심을 가지고 아이를 기다려보자. 그럼 아이는 성취감에 가득차서 레오처럼 말할 것이다.
해냈다!
혹시 모른다. 걱정스러운 눈길만으로 바라 보았던 주변의 Leo가 사조영웅전 속의 곽정처럼 종국에는 노력과 행운의 경계가 모호한 멋진 인생을 살게 될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