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고 쓰는 일기 시즌 2. 이고양 일상 리뷰 (10.19~10.21)
아침형 인간이 있고 야행성 인간이 있는 법. 홍토끼는 아침형 인간에 가깝다. 주로 오전에 일어나서 많은 것들을 하는 편. 새벽같이 일어나는 미라클모닝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오전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반면 나는 아마도 야행성 인간에 가깝다. 스케줄상 어느 정도 강제되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도 오전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많이 늦게 자고 그리 늦지 않게 일어나는, 그냥 잠이 적어서 아침형 인간처럼 보이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마저도 요즘 들어서는 잠이 늘어서 오전은 그냥 사라지는 경우가 꽤 많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아침형 인간인 홍토끼는 운동을 주로 늦은 저녁에 하는 편이고, 야행성인 나는 운동을 주로 오전시간에 하는 편이라는 점이다. 물론 1주일에 4~5번씩은 운동을 하는 홍토끼와는 달리, 나는 1주일에 1~2번도 겨우 하는 꼴이지만 말이다.
아. 참고로 운동에 대한 우리의 견해는 매우 너그럽다. 같이 수다를 떨며 걷는 것도 운동이고, 혼자서 천천히 산책하듯 걷는 것도 운동이다. 헬스장에서 근력 운동을 한다거나, 수영장에 다닌다거나, 하다못해 뛰는 것조차 하지 않아도 운동이다. 그나마 혼자 걸을 때에는 좀 더 빠른 걸음으로 걷기는 한다. 아무튼 1시간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을 걷는 것을 우리는 운동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아침형 홍토끼는 저녁에 운동을 하고, 야행성 이고양은 아침에 운동을 한다. 둘 다 참 유별난 사람이다. 저녁에 운동을 하는 아침형 홍토끼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눈 뜨자마자 운동을 나가는 것은 야행성 이고양에게는 꽤나 힘겨운 걸음이다. 오전에 뭘 하는 건 역시 쉽지 않단 말이야.
음.. 차라리 밤늦게 걸어볼까.
나에게는 옳은 이야기이지만
너에게는 옳지 않은 이야기 일 수도 있어.
그러니, 너가 내 이야기를 반드시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
그게 너에게는 정답일지도 모르지.
그런데
반대로 말이지
너에게는 옳지 않게 들린 그 이야기가
나에게는 진짜로 옳은 이야기였거든.
그러니까 내가 틀린 것도 아니야.
맞아. 너에게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겠지.
그러니까 내가 널 비난하는 건 잘못된 행동이 맞아.
이해했고. 반성했어. 이제 안 그럴 거야.
누군가의 행동을 함부로 비난해서는 안된다는 거잖아.
그런데 말이지.
너를 비난하지 않는다는 게, 널 좋아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잖아?
너에게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는 걸 이해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행동이 싫어.
나에게도 그 행동을 싫어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거야.
그러니까.
비난하면 안 된다는 말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널 이해하고 좋아해야 한다는 건 다른 문제인거지.
책 읽다가 갑자기 써 내려간 짧은 글들.
어떤 책들은 이따금씩 나에게 이렇게
짧은 영감을 준다.
근데 이걸 길게 쓰면 이 맛이 또 안 나온단 말이지.
사실 길게 쓰려다가 실패하기도 한 거지만
이렇게 짧은 글이 더 잘 전달될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패기롭게 시작한 새로운 글이 있다. 그리고 1주일이 넘도록 결국 다음 화를 쓰지 못했다. 쓰려고 몇 번이나 브런치 창을 켰지만, 소재도 잡지 못한 채 썼다 지웠다만 반복한 게 두 번, 그리고 꾸역꾸역 써나갔지만 결국 반도 채 쓰지 못한 게 한 번, 그리고 오늘도 결국 손이 가지 않아서 이렇게 일기로 도망쳤다.
이래서 사람이 겸손해야 하나보다. 시작하면 뭐든지 잘 해낼 수 있을 줄 알고 패기롭게 시작했는데, 결국 잘 되지 않는다. 그냥 안 한 게 아니라, 하려고 했는데 못해서 더 좌절스럽다. 내가 능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서.
어쩌면 말이지. 나의 글을 쓰는 능력이라는 게 벌써 다 바닥나버린 건 아닐까? 예전처럼 번뜩이는 소재가 쉴 새 없이 새어 나오지도 않고, 그걸 붙잡아 끊임없이 써 내려가던 손가락도, 이제는 자꾸만 멈추어 버린다. 어느새 백스페이스를 눌러 지워버리는 글자들이 많아진 기분이다.
한 문장 한 문장 써 내려가는 것이 예전보다 쉽지가 않다. 자꾸 멈추고 자꾸 지우고 자꾸 고민하게 된다. 예전에는 타이핑이 생각을 따라가지 못해서 키보드를 미친 듯이 두들겼던 것 같은데, 이제는 손가락이 생각을 자꾸만 기다리고 있다.
잠시 여기서 글을 멈추고 내가 예전에 썼던 글들을 읽어보았다. 지금의 나와 무엇이 다른지 명확하게 보인다. 그때의 나의 글에는 독특하고 기발하며 재치 넘치는 소재가 있었고, 생동감 넘치는 문장들이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강한 고집과 자기주장이 들어가 있었고, 짧은 식견으로 어리석은 말들을 내뱉고 있었고, 엉성한 문장들을 나열하고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글에서도 읽는 사람들의 기분을 배려할 줄 알고, 나중에 후회할 만한 주장을 하지 않으며, 예전보다는 정돈된 문장을 쓰고는 있지만. 그만큼 눈치를 보고, 내 주장을 잃었고, 재미가 없어졌다.
단점을 고치겠답시고, 장점을 내다 버린 꼴이었다.
내가 왜 그랬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변하게 된 이유를 찾기가 어려웠다. 딱 하나 찾았다. 그냥.. 겁먹은 거다.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일단 지금의 내 글은 겁을 잔뜩 먹은 글이라는 건 보였다.
와.. 씨...
자존심 상해.
이대로 있을 수는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