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장녀의 곁에 찾아온 언니들의 이야기
겨울밤처럼 어둡고 외롭던 20대가 지나고 앞자리가 3으로 바뀌었을 때 그들이 왔다. 책을 매개로 다가온 그들은 나보다 나이가 조금씩 많았는데 그들이 하는 말과 행동은 백 년도 더 산 사람의 것처럼 느껴졌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6월에도 우리는 구태여 야외 철제의자에 앉았고 목에 스카프를 두른 채로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앓고 있는 관절 시림에 공감할 수 있어서 15년째 항암을 하고 있는 이 시기가 아깝지 않고 외려 반갑다는 말을 듣는 순간에 깨달았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것이다.
언니들은 정말 모르는 게 없었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았다. 마음이 허한 날이면 집에서 불러내어 열무김치와 마른반찬과 알맞게 익은 물 복숭아를 챙겨주었고 날이 흐릴 땐 생각나서 연락했어, 하고 몇 년 만에 문자가 오기도 했다. 쉬기로 했어요, 라는 말에 5월 달에 종합소득세 신고하는 건 알지? 하고 물어봐주었고 생년을 물어 국가 건강검진을 챙겨주었다.
옆에서, 화면 너머에서, 또는 마이크 뒤에서 말을 걸어준 언니들이 있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 마흔은 더 좋고, 쉰 되면 더 좋다고 말해주는 언니들이 없었더라면 살아는 있더라도 지금의 내 모습과 달랐을 것이다. 오십까지 살아져 보니 일흔까지는 살아야겠다고 말하는 언니의 옆모습을 보면서 그제야 나는 할머니가 된 스스로의 모습을 그려 본다. 칠순이 되면 더 맑아지고 여든이 되면 더 여유로워질 미래를 기대하면서.
그리고 여전히 때때로 언니들의 어깨에 기대며 다짐하는 것이다. 나도 누군가의 언니가 되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