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과 파를 먹는 마음으로
나에게도 남들에게도 비밀로 하는 신년 계획에 대해
매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글을 쓴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마음가짐으로 2009년부터 시작한 일이다. 일 할 때 들고 다니는 다이어리와 핸드폰, 책상 위의 달력을 살펴보면서 월 단위로 이벤트를 되새겨 보고, 사진도 한 번씩 다시 보며 지난해에 대한 소회를 한 번 더 적어보는 것이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올 한 해도 용케 살아냈구나’ 스스로 대견해하면서. 글의 제목은 항상 이전 해를 떠나보내고, 새해를 맞는 것으로 썼지만 열두 달을 돌이켜보는 글을 쓰고 나면 이미 진이 빠져 새해의 목표는 없고 바람만 있다. 어떻게 무엇을 이뤄야겠다는 성과를 새해의 첫 공휴일부터 생각하다니. 아무리 목표지향적인 사람이라 해도 설렐 리 만무하다. 자고로 신년 계획이란 장대함에 그 매력이 있는 것인데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세우는 것은 무슨 재미이며, 그렇다고 장엄한 계획을 세우자니 실행하지 못할 것이 뻔한데 굳이 헛수고를 할 필요가 굳이 있을까 싶다. 설령 계획을 세우더라도 남에게 내보이고 싶지 않다. 내 계획은 온전히 나만의 것. 소중하게 나만 볼 테다.
다만 마침 오늘부터 새로이 시작한 것이 있어 말해보자면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매일 200자를 쓰는 줄 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나도 껴달라고 했다가 200 단어라는 말에 움찔했다. 2주에 한 번 문장 수업 과제를 위한 글을 써가는 것도 버거운데 매일 1500자 이상의 글을 쓸 수 있을까? 청탁받지 않은 원고를 쓰기와 셀프 마감을 만들어낸 이슬아는 얼마나 괴물 같은 작가인가. 나는 엉덩이 힘없는 회사원이지만 일생을 살며 한 번은 책을 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글은 써야겠고, 혼자서는 글을 쓸 리가 만무하고, 초고가 있어야 퇴고를 하니까. 곳간을 채운다는 마음으로, 글쓰기 근육을 좀 더 키워보자는 마음으로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기로 했다.
마음을 먹고 나니 명치에 뭐가 얹힌 듯 가슴이 답답했는데 무엇에 대해 써야 할지 몰라서 그랬다. 해가 바뀌기 전에도 백일 동안 무엇을 쓸 것인가 고민했다. 100일이라는 것은 계절이 두 번은 바뀔 정도로 긴 시간이라 어디서든 주제를 찾아야 하는데 도통 글감이 보이질 않았다. 남들은 그 날 있었던 일을 쓰라고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새우 머리 튀김과 새해벽두부터 두 시간 동안 제목조차 알 수 없는 팟캐스트를 녹음하고 온 것에 대한 서사를 엮어낼 수가 없었다. 남이 읽기에도 재밌는 글이 되려면 시간 순으로 이야기를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포인트가 되는 부분부터 시작하라고 해서 ‘오늘 두 번째로 만난 사람과 팟캐스트를 녹음하고 나와서 연인과도 해보지 않은 한겨울 지하철 역사에 서서 몇 십분 동안 이야기를 나눈 경험’에 대해 써보려고 했더니 지금은 2021년 1월 1일 23시 37분이다. 시간이 촉박하다(이 글쓰기 프로젝트는 매일 자정이 되기 전까지 인증해야 한다). 어쩔 수 없다. 그나마 세워둔 목표를 첫날부터 걷어차지 않으려면 나만 보기로 했던 내 소중한 신년 계획을 밝히는 수밖에.
그리하여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나의 새해 계획을 밝힌다. 매일매일 마늘과 파를 먹는 마음으로 새로운 글을 쓸 것. 이것은 100일 후에 두 발로 햇볕 아래 서있을 스스로를 응원하는 글이자, 어두운 동굴 안에서 마늘과 파로 처음 차린 상이다. 새해 첫날의 글이란 모름지기 신년 목표에 대해 쓰는 것이 도리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