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도시에서 내 공간 만드는 방법
아무튼, 이사(1)
이 글을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의 <아무튼,> 시리즈 담당자분들께 드립니다.
부디 아무튼 시리즈의 다음 글로 채택해주시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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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면 한쪽 벽에는 각종 사진과 엽서, 그림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같은 시기에 모은 것들은 아니고 이사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 지기는 하는데 마치 항상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전과 후를 명확히 비교하기 어렵다. 드림 캐쳐도 두 개 벽에 붙어있고, 중국에서 사 온 빨간 잉어가 그려진 바구니(작은 종 4개가 바구니 아래 달려있어 조금만 움직여도 종소리가 난다) 하나가 커튼 봉에 달려있다. 침대 위에는 아침에 옆으로 밀어둔 이불과 함께 바디 필로우가 길게 벽을 따라 누워있고, 인형도 여럿 놓여 있다. 침대의 남은 공간에는 잠옷 겸 속옷이 놓여있고 바닥에도 옷가지가 늘어져있는데, 나와 엄마는 기준을 알지 못하지만 본인에게는 명확한 기준이 있는지 절대 손대지 말라고 한다. 책상 위도 무언가로 가득 차있는데 손바닥 만하게 생긴 저주인형 같은 것, 펠트로 만들어진 약간 미쳐 보이는 토끼 모양 연필 옷 같은 것들이 책과 종이와 스티커, 언젠가 뽑은 사랑니와 함께 놓여있다. 이건 내 동생의 방이다.
놀랍게도 동생의 방은 어디로 이사를 가나 항상 같은 모습이다. 취직하고 짧게 생활했던 원룸에서도 그렇고, 부모님 집과 내가 있는 집을 오가며 두 집 살림을 하면서도 그렇다. 파리에서의 방도, 서울에서의 방도, 문을 여는 순간 동생의 세계가 펼쳐진다. 문을 열자마자 펼쳐지는 카오스는 혼돈스럽기만 한데, 물어보면 척척 물건을 건네주는 걸 보면 동생에게는 아주 명료한 법칙이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이 법칙 아래, 동생의 방은 어느 도시에서든 자신만의 고유성을 뽐낸다. 이사를 하면 새 공간에 낯을 가렸던 나와 달리 동생은 어느 방이든 금방 자신의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한 번 자신의 방을 만들고 나면 아늑하고 편안해 보였다. 그 공간에 발을 들인 모두가 동생의 법칙을 따랐고, 이는 여러 도시를 이사하며 항상 다른 모습을 했던 내 방과 비교되어 늘 부러웠다.
유독 추위를 많이 타고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 탓에 부모님은 항상 나에게 조금 더 따뜻한 방, 좀 더 해가 많이 드는 방을 내주었다. 그것만이 내가 거쳐온 여러 방의 공통점이었을 뿐, 새로 만난 공간에게 마음을 내어주고 내 방에서 마음을 놓기까지 언제나 시간이 걸렸다. 동생을 따라 사진을 붙여보고 포스터로 장식해보아도 그건 내 방 같지가 않았다. 인플루언서들이 생기기 전부터 알음알음 알게 된 멋진 30대 언니들을 따라 그럴싸해 보이는 물건을 들여보아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공간에 낯을 가리는 사람이니 물건이라고 낯을 안 가리란 법은 없었다. 그렇게 들인 물건들은 잠시 내 방을 채웠다가, 오랫동안 서랍 안에 들어가 있다가, 다른 도시로 이사하기 전 이사 박스에 담기거나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그렇게 이사 박스에 담긴 짐들은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 들인 물건들에 밀려 박스 밖으로 나오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낯선 도시에서 내 공간을 만드는 법을 알게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여행을 가서 잠시 머문 도시에서였다. 암스테르담 여행에서 발레 수업을 들은 것이 그 시작이었다. 비교적 정형화된 수업방식 때문인지 취미 발레를 하는 사람들은 국경을 넘나들며 수업을 듣는 모양이었다. 나도 한 번 시도해볼까 싶어 암스테르담 여행 중 댄스센터에 갔는데 첫 번째 수업을 들은 후에 깨달았다. 이거구나.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기분. 내가 사는 도시인지, 이제 막 이사 온 곳인지, 여행을 위해 잠시 들른 도시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나일 수 있게 하는 공간을 찾자 방이 문제가 아니라 도시가 통째로 내 공간이 된 기분이었다. 곧바로 회원등록을 하고, 2주 동안의 여행 동안 여섯 번의 수업을 더 들었다. 시차 때문에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하게 되었고, 찬 공기 때문에 모자까지 쓰고 자야 하는 방에 머물렀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캐리어에 짐을 싸면 이 나라에 남아있는 것은 내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암스테르담에 머무는 동안 댄스센터는 내 공간이 되었다. 그렇게 파리, 니스, 샌프란시스코와 홍콩에서도 나의 공간을 찾았다.
발레를 시작하기 전을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살았던 어떤 도시에서든 나의 공간은 도서관이었다. 새로운 방이 어색해 거실에서 종일 삐대거나, 괜히 옷방에 들어가 있었던 때에도 내게는 언제나 도서관이 있었다. 아직도 초등학생 때 드나들던 단지 내 도서관이나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하교 후 매일 들렀던 도서관, 파리 15구의 도서관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조용하고, 책이 가득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있던 공간. 초록색 소파와 큰 나무 책상. 통창으로 비치는 해와 빗방울, 해가 진 후의 모습까지. 남의 나라로 이사를 했을 때에는 무엇을 하든 새로운 시도였지만, 그 와중에도 도서대출카드 만들기는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혹독한 신입시절을 벗어나고 직장인으로서의 삶이 자리 잡은 후 찾은 곳도 동네 도서관이다. 코로나로 인해 휴관과 단축 운영을 반복하면서 더 이상 들리기 어려워졌지만 책이 있는 곳이 나의 공간임에는 변함이 없다.
바깥출입을 조심하고,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공간의 중요성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일터가 집으로 옮겨오기도 하고, 베란다에 홈카페를 만들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길가에는 ‘임대’라고 붙인 종이가 붙은 가게들이 휑뎅그렁한 모습으로 보이고, 더 이상 카페에서 앉아있을 수 없게 되면서 원룸과 고시원에 자리한 사람들은 더 구석으로 밀려났다고 한다. 가정폭력 신고는 예년보다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발생률이 줄은 것은 아니고 피해자와 가해자가 머무는 공간이 분리되지 않기 때문에 신고할 수 없어서라는 이야기도 있다. 모두 공간을 빼앗겼지만, 누군가는 더 많은 공간을 빼앗겼다. 책과 발레, 식물 같은 것은 내가 살 수 있는 다음에야 욕망할 수 있는 것이기에 나의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마음 편하지만은 않다. 그렇지만 오늘도 이 도시에, 집에, 방에, 마음 붙이지 못해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자기만의 공간을 찾는 방법은 각자 조금씩 다를 수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