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알지 못할 이 겨울의 의미
내 인생은 불확실성의 연속이자 모험의 연속이었다. 계속되는 모험 속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새로운 환경도 미래에 대한 불안함도 아닌, 끊임없이 나를 쫓아다니는 질문들이었다.
"일본에는 왜 간 거야?"
"일본에는 왜 온 거야?"
일본 유학을 결심한 이유가 그리 유쾌하지도 당당하지도 않았기에 그 질문들이 무엇보다 싫었다. 그래도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그러한 질문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예상과는 다르게 이 질문들은 계속해서 나를 따라다녔다. 대충 둘러대며 몇 년을 버티고 어느 정도 일본에 있는 나를 사람들이 당연하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할 때쯤 나는 또 다른 새로운 환경 속에 놓였고 이제는 새로운 질문들이 추가되었다.
"왜 그렇게 열심히 해?"
"왜 그렇게 까지 하는 거야?"
기존에 질문들이 그저 성가신 정도였다면 새롭게 맞닥뜨린 질문은 나를 아무 말도 못 하게 만들었다. 떠오른 대답은 '할 수 있으니까'였다. 내 직업이고 내가 선택한 일이니 내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었다. 정말 그냥... 할 수 있으니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대답을 납득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든 생각이다. 왜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없는 것일까.
"좋아해서"
'지금 일이 즐거우니까' '좋아해서 열심히 한다' 이 말이 왜 그렇게 무거운지 모르겠다. 내가 좋아한다고 할 정도의 실력이 있는 걸까. 내가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는 걸까. 아직 완전한 자신감을 갖추지 못한 채로 그저 하루하루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왔다. 언젠가 자신감을 채우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으면서. 언젠가 모든 것을 보상받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으면서. 이겨내지 못한 과거와 오지 않을 미래를 왔다 갔다 하며.
그리고 지금 나는 또 한 번 더 큰 바다를 건너서 미국에 와있다. 어떻게 서든 살아남아보자 라는 각오로 도착한 멀고 먼 낯선 땅인데 이제껏 그 어느 곳에서도 느껴본 적 없는 포근함을 느꼈다. 새로운 지도 교수님은 원래도 좋은 분이신 줄 알았지만 더욱더 좋은 분이셨다. 좋은 분이 수장으로 있는 연구실은 그 학생들도 모두 좋은 사람들로 되어있었다. 그들은 나의 국적을 신경 쓰지 않았다. 나의 억양을 신경 쓰지 않았다. 나의 성별을 신경 쓰지 않았다. 나의 일을 존중했다. 나의 생각을 존중했다. 처음으로 온전한 나로서 꾸며내지 않은 나로서 인정받고 존중받았다. 그리고 그를 만났다.
서툰 영어로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그를 보며 어려서 용감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의 나를 만났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는 자심감에 차있다는 것 정도.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로 가서 공부를 마저 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곳에 본인이 생각하는 최고의 학교가 있다고 했다. 더 먼 곳으로 나가 더 큰 세상을 마주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깊은 에메랄드 빛 눈동자와 헤이즐넛 색 머리칼이 반짝였다. 머리칼이 반짝인 건 역광 때문 이긴 싶다.
그의 말에 나는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내가 걸어온 길이 맞았음을 나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모험을 떠나는데 설명 따위 필요 없다. 주위사람을 설득할 필요도 납득시킬 필요도 없다. 그것이 가족이라 할지라도. 명분 따위도 필요 없다. 잘할 필요도 없다. 꼭 성공해야 할 필요도 없다. 내 인생에서 내 선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의사이다. 내가 원했다는 것. 내가 좋아해서 그랬다는 것. 이걸 너무 늦게 깨달은 것 같다.
어쩌면 나를 쫓아다닌 질문들은 다른 사람의 입에서는 그리 많이 들은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한두 번 들은 그 질문들이 내 몸속 여기저기에 부딪혀 반사되며 메아리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나 스스로가 내 인생의 주도권을 잡고 있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제삼자가 보았을 때 납득할만한 사유인가. 남들이 보았을 때 보기 좋은 그림인가.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인생인가. 나를 가둔 것은 나 자신이 만든 감옥이었다. 그 감옥은 투명한 벽으로 되어있어서 남들이 다 지켜보고 있는 형태의 감옥이었다. 이제는 그 감옥에서 나올 때가 되었다.
처음으로 가족과 친구들과 떨어져서 맞는 연말이다. 나는 아마 평생 이 겨울을 잊지 못할 거다. 평생 그리워하겠지. 마치 서울에 온듯한 두 뺨을 할퀴는 찬 공기도 따뜻하고 말랑했던 그의 손도 다정한 눈 맞춤도 그 어느 것 하나 잊고 싶지 않다. 일본에 도착한 그날부터 멈춰있던 시계가 드디어 오랜 겨울잠을 끝내고 째깍째깍 돌아가기 시작했다. 염치없게도 이제야 내 열아홉이 시작됐다. 늦은 만큼 기대되는 내 청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