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이나 미뤄진 뉴욕으로의 졸업 여행
우리 이번 여름에 진짜 뉴욕 갈래?
스물셋 5월. 아직 봄도, 여름도 아닌 계절. 부쩍 따뜻해진 날씨와 얇아진 옷차림에 마음도 기분도 괜히 들뜨는 그런 날들이 흘러갔다. 창밖에서 스미는 나른한 햇살 아래 오후 수업을 기다리는 강의실은 이야기하는 아이들로 떠들썩했다. 마침 친구가 도착하고 옆자리에 앉아 인사를 건네자마자 나는 비장하게 말을 꺼냈다.
"내가 생각해 봤는데, 우리 진짜 이번 방학에 뉴욕 갈래? 어제 살짝 알아보니까 왕복 비행기도 100만 원이면 살 수 있더라고... 물론 지금 돈이 없긴 한데, 아르바이트해서 어떻게 모으면 되지 않을까?"
시작은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사실 나는 미국보다는 유럽파에 가깝다. 오죽하면 현지 영어를 배울 수 있다는 거대한 메리트를 포기하고서 굳이 교환학생을 독일로 다녀왔겠는가. 그런데 이제는 미국이 궁금해졌다. 정확히는 미국 정치학 전공 강의를 들은 이후로 말이다. 정치학을 배우면 배울수록 미국은 누구보다 막강한 패권국가임을 실감했다. 비록 역사는 짧지만 민주주의가 꽃피운 국가이자 자유와 평등 정신 아래 번영을 이룩한 나라. 식민지배부터 수많은 전쟁을 일으키는 등 개인적으로 미국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들이 전 세계에 미친 강력한 영향력은 인정해야 했다.
우리는 강의실에서 비밀스럽게 뉴욕을 꿈꿨다. 그건 일종의 호기심과 동시에 반항심이었다. 너희는 대체 얼마나 잘났길래, 이렇게 세계 정치와 경제를 뒤흔드는 힘을 갖고 있는 걸까? 그럼 그 나라의 가장 큰 대도시는 얼마나 거대한 거지? 매주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미국에 한 번쯤은 발을 딛어야겠다는 열망이 강해졌다. 게다가 뉴욕은 오래전부터 문화예술의 중심지가 아니었는가! 빌 에반스, 앤디 워홀, 벨벳 언더그라운드, 에드워드 호퍼, 패티 스미스 등등.. 내가 동경하는 모든 예술가들은 뉴욕에 있었다. 뉴욕에 살며 음악을 만들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우리는 뉴욕 여행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도 뉴욕의 물가는 악명 높은 소문만큼이나 무시무시했고 보통은 저렴한 호스텔 숙박비마저 결코 착하지 않았다. 지금대로라면 가서 한 끼도 못 먹고 굶어야 할 판이었다. 비행기값만 겨우 가지고 있던 우리는 고민 끝에 여행을 미루기로 결론지었다. 차라리 졸업 여행으로 가는 게 좋겠다며 의견을 모았다. 그때 즈음이면 돈도 지금보다 많이 모았을 테고 졸업하고 가는 여행은 더 뜻깊을 테니까!
하지만 우리는 뉴욕에 가지 못했다. 코로나라는 예상치 못했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뒤덮었다. 학사모를 쓰고 사진을 찍고 졸업식이 끝났는데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뉴욕으로 떠나는 날 만을 기다렸는데... 유독 추웠던 2021년 겨울, 졸업식을 마치고 친구 집에 다 같이 놀러 가 요리를 해 먹고 이야기로 밤을 새우며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졸업하고 한 달 뒤에는 예상치 못하게 빠른 취업을 했다. 친구는 대학원을 준비하게 됐다. 서로 각자의 길을 향해 흩어진 우리. 회사에 적응하며 정신없이 바쁜 나날들을 보내며 뉴욕 여행은 점차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다. 뉴욕에 가려고 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인턴을 거쳐 정규직으로 어연 2년 넘게 열심히 회사를 다녔다. 친구들 중에선 가장 취업을 빨리한 나였고 회사에서는 여전히 가장 막내였다. 언젠가부터 억울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직 젊은데 여행도 더 못 다녀보고 영락없는 직장인이 된 게 슬펐다. 이대로라면 여행을 위해 열심히 모은 돈도 다 쓰지 못하고 시간만 흘러갈게 뻔하다. 이러다 뉴욕에 발도 못 딛고 앞자리가 바뀌면 어쩌지? 걱정과 조바심만 차곡차곡 쌓여갔다.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보기만 하면, 뉴욕에서 살던 작가의 책을 읽기만 하면, 뉴욕에서 녹음된 음반을 듣기만 하면 견딜 수가 없었다. NEW YORK, 이 일곱 개의 알파벳에 한이 맺혔다. 어떻게 해서라도 뉴욕에 가야만 했다.
2023년이 밝아오자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올해는 꼭 뉴욕을 가리라. 연차를 다 쓰는 한이 있더라도 무조건 가리라. 물론, 이번에는 혼자 가는 건 곤란했다. 평소 혼자서도 야무지게 잘 다니는 편이고 유럽에서도 혼자 씩씩하게 다녔지만 미국은 무서웠다. 뉴욕은 워낙 대도시이고 안전하다고들 하지만 나 같은 겁 많은 쫄보에게는 무리였다. 언제 어디서 총기 사고가 날지 모른다는 사실에 눈앞이 캄캄했다.
여정을 함께할 사람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다니고 있던 회사는 연차 사용이 자유로운 편이었지만, 보통의 직장인이 일주일이 넘는 연차를 쓰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아쉽게도 시기와 상황상 뉴욕에 갈 수 있는 친구들은 없었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는 없었다. 급기야 나는 대학생인 동생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갈 수 있겠냐는 '여행라이팅'과 함께.
"야, 이번에 누나랑 뉴욕 여행 안 갈래? 추석 껴서 가면 10일 정도 갈 수 있거든? 물론 수업 몇 번 빠지기는 해야겠지만, 너 지금 아니면 미국을 또 언제 가겠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가는 게 최고야. 진짜 장담해. 학교 수업보다 바깥세상 경험하는 게 더 중요한 거 알지? 가을이면 날씨도 선선하니 좋을 거고. 누나가 숙소비나 경비 같은 거 많이 지원해 줄게. 제발, 같이 가자. 좋은 곳 많이 데려 다녀 줄게." 쿨한 거절에도 굴하지 않고 서너 번을 절실히 설득한 끝에 동생은 나의 뉴욕 여행에 함께 하게 됐다.
차곡차곡 짐을 쌓다 보니 어느덧 출국 날. 새벽 5시 반, 일찍 일어나 우리를 바래다주신 아빠의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버스 정류장에 내린다. 쌀쌀한 9월의 가을 공기 속에 아직 해가 뜨지 않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공항버스를 기다린다. 동생이 셀카를 찍자며 카메라를 꺼내 든다. 사진 속 나는 떨떠름한 긴장이 묻은 표정으로 웃고 있다. 도대체 뉴욕은 어떤 도시일까. 공항에 도착해서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캐리어 택에 쓰인 'JFK' 알파벳만이 내가 뉴욕에 간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몇 시간의 기다림 끝에 비행기에 탑승했다. 배낭에서 뉴욕 예술 에세이 책을 꺼내 무릎에 올려놓는다.
뉴욕에 갈 준비는 다 되었다.
3년이나 미뤄진 뉴욕으로의 졸업 여행.
정말, 뉴욕에 간다.
TODAY's BGM
Gene Kelly, Frank Sinatra and Jules Munshin - New York, New York
https://www.youtube.com/watch?v=x7CIgWZTdgw
GenGen Kelly, Frank Sinatra and Jules Munshine Kelly, Frank Sinatra and Jules Munshin -
.
.
오랜만에 브런치에 연재하는 여행 글이네요!
뉴욕 여행기는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