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평균율 1권 22번, 나지막하지만 강렬한 절규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서서히 줄어들고 격리해제가 된 사람이 빠르게 늘어나자, 거의 한 달을 폐쇄해 놓았던 내 연습실도 다시 문을 열었다. 피아노 앞에 앉은 나는 바흐 평균율 악보부터 꺼냈다. 평소처럼 평균율의 프렐류드를 한 곡 골라 30분 정도 손풀기로 쳐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내 시선은 1권의 22번 b플랫단조 BWV 867에 딱 멈췄고, 자석처럼 이끌리는 느낌을 가지고 쳐나가기 시작했다. 느린 템포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듯한 왼손의 연타 위로 툭툭 건드리는 듯한 음이 하나씩 추가되고, 오른손은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엔진 고장난 자동차처럼 음이 힘겹게 서서히 상향되어 나간다.
일단 나는 첫 프레이즈를 채 끝나지 못하고 1~2분 동안 멍하니 있었다. 이 프렐류드의 곡상이 시국과 맞물려 강하게 내 가슴을 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연습하고 있는 연습실이 코로나로 인해 폐쇄되던 그 날, 연습실 문 밖을 나서자마자 마주한 무서웉 정도의 적막한 대구 시가지 중심의 모습이 사진이라도 찍은 듯 눈앞에 선했다. 고개를 돌려 보아도 자가용이라곤 한 대도 없고, 큰길을 가끔 지나다니는 시내버스만 몇 대 눈에 띌 뿐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처음부터 연주했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프렐류드 끝까지 갔다. 오선지와 음표만 그려져 있는 악보가, 마치 세상에서 가장 슬픈 소설책을 읽듯 너무나 슬픈 워딩으로 보일 지경. 정신을 차리고 나름대로 분석적으로 악보를 보면서, 성부를 분리해서 다시 꼼꼼하게 연습해 보았다. 이 프렐류드는 하나의 분기점이 되는 13마디까지 서서히 상향하거나 하행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큰 틀에서 보아 양손이 향하는 방향이 다르다. 오른손은 대체적으로 상향 위주고, 왼손은 대체적으로 하향 위주인데, 왼손의 베이스 성부는 정말 서서히 꿋꿋하게 계속 내려간다. 계속해서 하향하는 베이스의 이 먹먹함이란.... 피아노 레슨 유투버 한 사람은 이 곡을 다루면서 “독일의 다 무너져 가는 고성 주위를 터벅터벅 걷는 느낌” 이라고 설명한 기억이 나는데, 나에게는 코로나 시국 때문에 사람이라고는 죄다 사라져 버린 시가지를 보는 듯한 먹먹하고 쓸쓸한 느낌이다. 상습 정체 구간으로 악명이 높은 대구 수성구의 범어네거리의 그 넓은 도로들이 시내버스만 가끔 지나다니는 텅텅 빈 도로가 된 사진이 떠오른다. 음악은 13마디를 기점으로 해결방안을 찾으려는 듯 성부간의 티키타카가 나타나기 시작하지만, 그 움직임은 미약하기 이를 데 없다. 음악은 쥐도 새도 모르게 다시 그 먹먹한 느낌으로 돌아가면서 음표가 점점 더 조밀해지며 긴장감을 더해 가다가, 22마디에서 감7화음 코드를 누름으로써 뭔가 강한 폭발을 일으키는 느낌을 준다. 이 감7화음의 존재감은 이 시국에 어이없이 정쟁만 일삼는 양심없는 여야 정치인들의 충돌 같아서 더 가슴이 아프다. 이 결정적인 감7화음 때문일까, 두 마디 더 남은 음악의 흐름은 정리하는 분위기가 아닌 상당히 격앙되고 불안한 분위기로 끝나고 푸가로 넘어간다.
바흐 :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 중 22번 b플랫단조 BWV 867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피아노
프렐류드가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의 먹먹함이었다면, 푸가는 긴장감이 가득한 절규다. 이 푸가가 바흐가 많이 썼던 3성이나 4성이 아닌 5성으로 되어 있다는 것은 정말 의미심장하다. 더군다나 주제는 건반악기 어법보다는 성악의 어법이 강하게 반영되어 음의 낙차가 상당히 크다. 이것이 느껴지니 손에 힘이 들어가고 주제를 크게 치려고 노력하게 되는데, 원칙적으로는 이건 뻘짓이다. 바흐의 작품에서 낭만곡에서나 접할 수 있는 포르티시모의 소리를 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푸가의 템포는 빠르지 않지만 무려 5성이나 되는 복잡한 성부들이 앞서 언급했듯이 성악적인 어법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각자 강하게 낸다.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마트 앞에서 몇백 미터의 줄을 서고, 정부를 성토하는 시민들의 장면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나는 푸가도 프렐류드처럼 각 성부를 나누어 연습하기 시작했지만, 프레이즈 하나 치고 몇 분을 멍하니 있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결국 30분만 평균율을 치고 주력 곡을 연습하려고 했던 계획이 완전히 뒤틀려 한 시간이 훨씬 넘게 이 곡을 붙잡고 있게 됐다. 가슴이 아팠다. 프렐류드와 푸가를 합해 고작 네 페이지에 지나지 않는 작은 곡이지만, 이 짧은 음악 안에 바흐가 풀어놓은 메시지는 바로 2020년 대한민국 시민들의 수난곡 그 자체였던 것이다.
내가 바흐의 작품을 이렇게 스토리를 부여해서 해석하는 것을 의아하게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이러한 생각은 당연히 할 수 있으며, 음악적으로도 결코 틀리지 않다. 캐릭터 피스(성격소품)의 걸출한 명곡을 대거 남긴 슈만은 바흐의 푸가를 가리켜 “바흐의 푸가는 최고의 형태의 성격소품들이며, 그것들은 매우 시적인 창조물들이므로 그 각각의 작품들이 개별적인 표현과 색채를 요구하고 있다” 고 말한 바 있는데, 이것은 바흐의 음악이 가지는 무한한 범용성과 자유로움의 부분집합으로서도 이해할 수 있다. 어찌 됐든 바흐의 이 b플랫 단조 평균율 한 곡은 시국과 맞물려 가슴으로 다가온다. 직접 연주해 보고, 또 명인들의 연주로 들어 보니 이 곡은 내 가슴을 서사적으로 위로한다. 연습 시작 전 손 풀려고 악보를 펼쳤다가 음악 자체의 포로가 되어버린 이 체험, 결코 흔한 체험은 아니리라. 코로나 시국이 꼭 나쁘지만은 않은가 보다. 생각 없이 그냥 듣던 음악들을 재발견하는 체험이 흔한 빈도로 가능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