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보고 뛰며 쓰다
전 세계가 열광하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보았다.
나름 영화적 재미도 있고 주제 의식도 뚜렷해 보인다.
공유가 기훈에게 '빨강 딱지 고를래? 파란 딱지 고를래?'라는 장면은 '메트릭스'에서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빨간약과 파란 약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장면처럼 거대한 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긴장감을 준다.
첫 번째 게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도 그렇지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책도 모르는 MZ세대가 많을 것이다.
박통이 재미 핵물리학자 이용후 박사와 함께 핵무기를 만들려다 죽임을 당한다는 김진명 작가의 논픽션 소설이다.
책에서 처럼 멋 모르고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은 장난감처럼 체스판의 말처럼 죽임을 당한다.
두 번째 게임, 달고나 뽑기
달고나는 설탕에 소다를 넣어 만든다. 달달함을 위해 설탕과 소다를 너무 많이 넣으면 달다 못해 쓰기까지 하다.
별 모양으로 우산 모양으로 겨우 잘 뽑았는데 그 맛이 달기는커녕 쓴 맛만 난 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모든 적당히 넣자. 달고나의 설탕처럼 인생의 땀처럼.
세 번째 게임, 구슬치기
세 번째 게임은 구슬치기이다. 구슬치기는 어렸을 때 딱지치기와 더불어 가장 많이 한 놀이이다.
구슬로 하는 놀이는 다양했다. 땅따먹기를 할 수도 있고 구멍에 넣는 사람이 이기는 놀이도 있고 벽에다 놓고 굴려 누가 더 많이 굴러가나를 재는 놀이도 있었다.
영화에서 상우는 홀짝 게임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외국인 알리에게 구슬 한알을 남겨 두고 모두 진다. 상우는 4판 연속 연속 자신이 지는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 않아 속임수를 쓴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그러나 서울대 경영학과를 수석으로 입학한 상우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연속으로 진 것은 단지 운이 나빴을 뿐이라는 것을.
도박 좋아하시는 분들은 한 번쯤 해봤을 게임이 '바카라'이다. 바카라의 게임 룰은 구슬로 하는 홀짝 게임과 동일하다. 뱅커와 플레이어에 각각 돈을 걸어 9에 가까운 쪽에 건 편이 이기는 경기이다.
말 그대로 운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뱅커에서 돈을 따면 두 번째 판에서 또 뱅커 쪽에 돈을 건다.
연속으로 뱅커 쪽에 돈을 걸어 5번째까지 돈을 따면 당신은 어느 쪽에 돈을 걸겠는가?
5번째까지 뱅커에서 돈을 따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는 플레이어 쪽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여 6번째부터는 플레이어 쪽에 돈을 건다. 반대로 뱅커가 줄을 탔다며 뱅커에 자신이 가진 돈을 올인하는 사람들도 몇 있다.
이를 모두 '도박사의 오류' 라고 한다. 확률에서는 앞 사건의 결과와 뒤 사건의 결과가 서로 독립적인데, 도박사의 오류는 이를 이해하지 못해서 발생한다. 연속해서 홀이 나왔다고 다음 판에는 짝이 나올 거란 기대는 자신이 신이 아닌 이상 접는 게 좋다.
왜냐하면 게임 대부분이 독립 확률에 의해 승패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독립 확률, 즉 서로 영향을 끼치지 않는 일련의 확률적 사건들에서 상관관계를 찾아내려 하는 사고의 오류가 도박사의 오류다.
그런 이유로 카지노 게임에서는 유일하게 두 종류의 도박사만이 존재 가능하다.
하나는 홀덤 게임이고 또 하나는 블랙잭 게임이다.
두 게임 모두 독립 확률이 아닌 종속 확률에 의해 게임이 진행되기 때문에 그 전 판의 확률을 계산할 줄 아는 선수(?)들은 돈을 딸 수가 있다. 친구들과 포커나 고스톱을 하다 보면 따는 놈이 계속 따는 경우가 많다.
포커나 고스톱처럼 종속 확률 게임은 동물적 감이든 수학적 지식이든 그 게임을 잘하는 사람이 이기는 도박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블랙잭 게임의 짜릿한 성공 스토리 '21' 이란 영화도 있다. MIT 공대생들이 블랙잭 게임에서 종속 확률에 기대어 카드 카운팅 기법으로 자신들이 유리할 때 돈을 왕창 걸어 카지노를 거덜 내는 실제 이야기다.
그러나 지금은 종속 확률인 블랙잭 게임이 카드 셔플을 무한정하게 할 수 있는 기계로 바뀐 뒤부터는, 즉 종속 확률에 의한 예측을 원천 차단하여 독립 확률이 된 후부터는 돈을 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네 번째 게임은 드라마를 안 보신 분을 위해 남겨 두고 마지막 게임을 소개해야겠다.
마지막 게임, 오징어 게임
어렸을 적 가장 기억에 남는 놀이가 오징어 게임이다. 왜냐면 방과 후 반 친구들과 오징어 게임을 하다가 팔이 부러져 며칠간 깁스를 하고 학교에 갔었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은 영화에서 처럼, 내가 어렸을 때 팔이 부러진 것처럼 몸으로 하는 피 튀기는 전쟁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중간 통로를 통과하면 한 발이 아닌 두 발로 자유롭게 뛰어다닐 수 있다.
깽깽이걸음에서 양발을 자유롭게 쓰는 러너로의 변신은 드라마 속 외침처럼 암행어사가 되는 것이다. 과거를 통해 평민에서 암행어사로의 수직 신분 상승이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게임에서 이기려면 수비수를 밀어내고 오징어 머리의 원에 발을 딛어야만 한다.
학교를 졸업하면 편할 줄 알았지만, 취직을 하면 꽃길일 줄 알았지만, 결혼을 하면 깨를 볶을 줄 알았지만 인생에는 수많은 수비수들이 계속 등장하여 승리를 방해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수비수들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다.
내 안의 탐욕(貪), 내 안의 분노(瞋), 내 안의 어리석음(癡), 삼독(三毒)이 내 인생길 최대의 수비수들이다.
돈 많은 사람과 돈 없는 사람의 공통점이 뭔 줄 알아?
재미야. 재미가 없다는 거야.
드라마 마지막에 반전 캐릭터 노인이 던진 마지막 말이다.
드라마 속 참가자들은 놀이를 놀이가 아닌 일로서 해야 한다. 목숨을 건.
반면 프런트맨은 소파에 앉아 위스키를 마시며 스크린 속 참가자들 행동 감시 일을 한다. 마치 놀이처럼.
김범수 의장은 대학생 때 포커나 게임, 술 마시기 등 원 없이 놀기만 했다고 한다. 그 경험을 살려 한게임 고스톱을 만들어 대박을 쳐서 지금의 카카오 제국을 건설하였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말 대신 마음껏 밖에 나가 놀라고 해야 한다.
공부 잘해 좋은 대학 나와 대기업에 취직한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는 세상이 아니다. 어렸을 때 공부만 했던 범생이들은 나이 50에 회사에서 잘리면 나머지 50년을 백수로 지내기 십상이다.
호모루덴스, 놀이하는 인간.
재미있게 살자.
일을 놀이로. 놀이를 일로.
그래야 천상병 시인처럼 이 세상에서 잘 놀다 간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