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에 따귀 맞은 나의 편견들
나는 '응답하라 1988' 세대이다.
고2였던 1988, 덕선이 같은 피켓 걸은 아니었지만 학교에서 단체로 올림픽 배구 경기를 관람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살던 서대문구 홍은동에도 드라마에서 본 것과 비슷한 분위기의 골목, 분식집, 독서실이 있었다. 나에게도 있었던 나름 드라마틱했던 친구 관계, 첫사랑, 그 외 각종 사춘기의 사건 사고들이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 모든 중심엔 입시와 공부가 있었다. 한국의 학생 신분이라 함은 나의 존재가 공부와 일심동체가 된다는 뜻이었고 나도 밤낮으로 공부 생각, 성적 걱정에 빠져 살았다.
나는 초중고대학교를 모두 한국에서 나왔다. 경쟁과 입시의 고단함을 고스란히 경험했지만 '학업 성적'만으로 한 사람의 모든 걸 평가하는 한국적인 잣대를 100% 당연한 걸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이건 아마 내가 어렸을 때 1년 미국에서 사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리라. 대학교의 교수이셨던 아빠는 안식년을 받으셨고 미국에서 1년을 연구하셨다. 1984-1985, 7학년을 미국에서 다닌 내가 느낀 가장 큰 차이점은 그곳 아이들의 서열에 공부가 결코 유일한 기준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공부를 못해도 그림, 춤, 노래, 운동 등의 재능이 있으면 동경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말하고 보니 요즘 한국이 그럴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나는 80년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딱히 재주가 없다 하더라도, 친화력이나 유머 감각, 또는 패션 센스가 있는 아이들 역시 상위의 서열을 채운다. 물론, 공부도 잘하면서, 운동 실력도 좋고, 친화력과 유머는 물론 출중한 외모와 패션 감각까지 있다면 알파의 신분을 갖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공부라고 하는 하나의 잣대가 절대 권력을 갖는 사회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건 내겐 충격이었다.
잠깐이지만 이 1년의 해외 생활로 인해 나의 시각은 좀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내가 속한 나의 나리인 대한민국을 자꾸 제삼자의, 관찰자의 입장으로 보게 되었달까. 모두가 당연히 여기는 가치를 나는 종종 의심했다. 내가 30대 초반에 그렇게 해외에 나가고 싶어 동동 거렸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한번 커진 시야는 다시 좁아지지 않았고, 난 한국의 가치체계대로만 살기가 갑갑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나의 해외 살이에 대한 이야기는 이전 글 '소원을 말해봐 1'에 자세히 써놨다.
원래도 분석과 '썰'을 좋아하는 내가 버릇처럼 쉽게 한국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부분들이 있다. 이러이러한 면들이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하기도 하고 내겐 잘 맞지 않으며, 따라서 이리 떨어져 있는 나는 행운아, 라는 논리가 지배적이었다. 고국에서 보내는 시간이 적어질수록 나의 이런 논리는 공고해지는 듯했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희한한 일들을 경험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글로벌 트렌드의 큰 대세가 되어 버렸다. 한국 노래, 한국 콘텐츠, 한국 제품, 한국식 화장법, 한국의 음식 등 세계인들이 열광하는 한국적인 것 리스트는 점점 길어져만 갔다. 중학생 딸의 금발 머리 친구들이 BTS로 대동단결하는 걸 본 건 그렇다 치자. 우리 집 공사했던 시공사 사장이 한국어 전공을 하겠다고 고집부리는 딸에 대한 고민을 문자로 털어놓지를 않나. 최근에 알게 된 동네의 한 엄마는, 딸이 블랙핑크 옷 차림새를 똑같이 따라 한다며 나를 왠지 원망스럽게 쳐다보았다. 한국 드라마 알함브라가 너무 재미있다고 나한테 추천해 준 50대 후반의 회사 동료 역시 백인 더치 아저씨였다.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생각했다.
사실 우리의 춤과 노래와 드라마는 늘, 원래 기가 막혔다. 80년대에 사춘기를 보낸 나는, 이미 오래전 10대 여성들의 목청 데시벨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우리 가수들의 저력과 전 국민을 웃고 울리는 한국의 드라마를 보며 컸다. 갑자기 달라진 건 미디어와 소통의 기술이 좋아진 것. 즉, 엔터테인먼트의 global delivery method 가 달라지고 관객층이 전 세계로 넓어진 것. 그것 하나였다.
이 생각은 다시 새로운 질문을 생성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도, 또 옛날부터도 잘 해왔던 그것의 본질이 뭐지? 이게 그냥 우리 민족이 예부터 흥이 많은 민족이었다는 말로 퉁쳐지는 건가? 흥은 딴 나라도 많던데? 우리에겐 뭔가 있다. 국민들의 몸과 마음속에 배어 있는 끼와 실력과 열정을 끌어내서 그걸로 뭔가 근사한 것을 만들 줄 아는 재주가.
이걸 생각하면서 나는 원래 한국의 별로인 점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우리의 슈퍼파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했다. 난 그것들이 지겨워 멀리 도망 와 살고 있는데, 한반도에 콕 박혀 그것들을 버티고 이겨낸 사람들이 이렇게 한국을 넘어 세계를 감동시키는구나 하고. 그래서 여기서 그것들, 그 못된, 힘든 한국적인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려 이리 장황히 서두를 쓰고 있다.
1. 공부, 학습, 훈련
우리는 대략 6-7세가 되면 본격적으로 학습의 질과 양에 대해 경쟁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남들보다 더 일찍, 더 빨리, 더 많이 배우고, 자는 시간, 먹는 시간도 아껴 한번이라도 더 문제집을 풀거나 연습하는 게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더불어 이걸 또 더 고퀄의 방법으로, 더 효율적으로 하게 해주는 각종 학원과 학습지, 과외 선생님과 그들의 비법들. 그걸 사고파는 어마어마한 시스템과 시장 또한 갖추고 있는 곳이 한국이다.
요즘 아이돌 가수들이 길러지고 세상에 선보이는 방식을 보고 있자면, 우리의 지독한 공부 열기가 여기에도 적용이 되는구나, 느낀다. 어린아이들이 집 떠나 숙식하며 보고 싶은 마음, 먹고 싶은 마음, 다 참고 인내하는 모습, 또 꼬마 때부터 레슨과 연습에 묻혀 사는 걸 보면서, 아이돌이건 몀문대 음대건 뭐 그다지 다를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표를 위해 삶의 몇 년을 기꺼이 포기하는 고시원 속 삶도 떠올랐다. 다 비슷비슷한 방식이다. 조기 교육, 강도 높은 훈련, 통제된 삶을 통한 빠른 연마 - 이런 것들은 한국인이 특히 잘 해내는 특기 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어릴 때부터 자유롭고 즐거운 삶을 반납하고 미래의 성공을 위해 참고 희생하는 것. 이건 한국인에게는 삶의 대전제이다. 유럽인들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우리만의 몸부림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 모방을 하려 해도 잘 되지 않는 걸 거다. 노력을 짜내고 실력을 끝없이 갈고닦는 노하우. 그건 아마도 조선시대의 과거 시험 준비, 아니면 그보다 더 그 이전에 뿌리를 두고 있을 것이며, 수백 년 동안 축적해 온 모든 노하우가 결국 아이돌 배출 시스템으로 유입된 게 아닐까. (라는 나의 썰)
2. 다브랜드의 무한 경쟁
홍콩은 쇼핑의 천국이다. 리테일이 활성화되어있고, 바겐세일 시스템도 잘 되어 있어 좋은 물건을 사는 재미가 있다. 그런 홍콩인데도, 사실 주요 분야를 잘 들여다보면 로컬 브랜드가 그리 많지 않다. 2005년경 살던 때를 돌이켜 보면 텔레콤 회사가 2개. 은행도 대략 2개. 로컬 화장품 브랜드는 하나였던가. 왜 이걸 체감하기 시작했더라. 은행 계좌를 열어야 하는데, 당연히 HSBC를 써야 된다는 분위기였다. 매장에 가보니 의자도 없이 손님들은 길게 줄을 서서 30분 이상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무슨 이런 서비스? 하며 그 이후에도 은행 갈 일 있을 때마다 관찰을 했는데 그 어디에도 편하게 앉아 기다릴 수 있는 대기 공간은 없었다. 은행 하나를 고르는 데도 동네 상가에만 5-6 브랜드들이 즐비해 서로 경쟁하던 한국에서의 상황과는 너무 다른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생각해보니 우리나라에는 모든 카테고리에 참 많은 한국 브랜드들이 있었다. 자동차, 백화점, 방송국, 화장품, 아파트까지, 한 카테고리 당 10개 이상의 국내 브랜드가 피 터지고 싸우는 곳이 한국이다.
자본주의 이론은 모순과 오류가 많지만, 경쟁 체제가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맞는 것 같다. 한국에서 광고 마케팅 일을 할 땐 우리나라의 과잉 경쟁이 너무 서로 깎아 먹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한국 살기가 그렇게 빡빡하고 몰인정한 이유라고 결론짓고 조금은 여유롭고 넉넉한 사회를 원했다. 근데 막상 그다지 경쟁이 없는 곳에 와보니 제품과 서비스가 형편없었다.
이 좁은 한국에서 그 많은 아이돌 가수와 드라마를 누가 다 찾아보나, 걱정 아닌 걱정을 했는데 이제 전 세계인들에게 소비가 된다. 국내의 무한경쟁을 이겨내느라 갈고 닦아 엄청나게 고퀄이 된 우리 음악과 콘텐츠는 인터넷을 타고 나라 밖으로 넘쳐흘러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당당하게 정착하고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살면서 감내해야 하는 경쟁이 비정상적으로 거칠고 힘들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또 세계인들이 열광하는 한국적인 것들은 사실 다 이런 의례 없는 경쟁 시스템을 뚫고 성공한 산물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 지겹게 힘든 시스템 때문에, 한류는 쉽게 넘보지 못하는 훌륭한 품질의 각종 상품이 되었다.
코 흘리는 아이때부터 일열로 줄 서 있다가 '요이 땅' 하면 죽도록 뛰어야 하는 한국적 경쟁구도. 허나 달리 보면 같은 선상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등수를 갖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게 살벌하다고 생각했지만 정치와 권모술수를 무기로 싸우는 것에 비하면 '실력 칼부림'은 오히려 공평하다. 무엇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살아남은 위너들이 전 세계를 놀라게 할 정도의 실력자들이라는 것은 우리 시스템이 인재를 기르고 걸러내는 데에는 그 효과가 입증된 바라 봐야할 것이다. 우리의 모델이 어쩌면 순수한 경쟁에 가까운 것이라고 보고 싶다.
물론 지금도 반감을 갖고 있는 한국적인 점들이 없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겸손, 특히 여자들의 다소곳함을 강요하는 유교적 문화는 지금도 나를 불끈하게 만든다. 또한 약자한테 잔인한 갑질 문화 역시 옳지 않다고 믿는다. 그러나 훗날 혹시 이런 것들도 다 그 이유와 합당한 의미가 있다고 느껴질까나...
한국인 친구 줄리아가 그랬다. There has never been a better time to be a Korean. 한국 사람인 게 이렇게 좋았던 때가 없었단다. 캐나다 교포인 그녀보단 훨씬 짧은 외국 생활임에도 난 이 말의 뜻을 잘 알고 있다. 내가 아는 것들과 일하는 방식과 사람을 대하는 철학이, 한국이란 곳에서 배우고 익힌 나의 존재 방식이 이 지구상의 모든 삶의 방식들 중에서도 꽤 괜찮게 느껴지는 그런 느낌. 지구라는 별에서도 당당하고 높은 곳에 서 있는 느낌. 이런 느낌은 아주 최근에 처음으로 느껴보는 새로운 경험이었으니까.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어쩌면 그동안, 아직도 한국인임에, 우리의 문화와 저력에, 한국인의 열정과 실력에 충분히 성원과 믿음을 주지 못하고 그저 인색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버릇처럼 앞세워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이젠 같은 선상에 놓고, 공평하고 객관적으로 더 잘 관찰하고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한국의 재능에 대해. 그걸 뽑아내는 우리 살벌한 시스템의 슈퍼 파워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