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놈이 무시무시하다.
유럽 상공엔 눈이 좋은 요격기가 있다. 까마득한 거리까지 손바닥 보듯 하는 전투기. 토네이도 ADV다. 영국 공군의 기체인데, 여기에서 ADV는 Air Defence Variant의 약자로 ‘공중 방어형’이란 뜻. 그래서 보통은 토네이도 ‘방공형’이라 하는데, 이 기체는 보통 185 킬로까지를 수색하고, 적기가 그 안에 있다면 20대까지 따로따로 추적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중 겁도 없이 접근하는 게 있다면, 중장거리 미사일로 쏘아 잡는다. 이게 이 전투기의 기본 전투 방식이면서 일종의 필살기다.
당연히 필살기의 중핵은 레이더, ‘폭스 헌터’라는 레이더다. 만들 때는 상당히 애를 먹었지만, 일단 만들어 놓고 보니, 견줄만한 레이더가 별로 없는 고성능의 레이더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 지, 유럽 대륙에서 다른 나라 전투기들과 모의 훈련을 할 때, 딱 한 종류만은 이게 참 포착하기 어려웠다. 또 그 기체가 가까이 접근해, 찾아낸다 해도, 격추 판정을 받아내기도 힘들었고... 출신성분도... 영국에선 납득하기 힘든... 그러니까 저기 놀기 좋아하는.. 남유럽 쪽 전투기였다.
그것도 마이너 기종에다가, 비교적 속력도 느린 전투기.
유럽은 아무래도 부유한 국가들이 모여있다 보니, 보유 전투기도 대부분이 일류다. 나토 표준이라 하는 F16 파이팅 팰콘이 광범위하게 사용되며, 독일은 F4E 팬텀을 공중전 용으로 개조한 F4F을, 프랑스는 미라주 F1이나 미라주 2000, 그리고 남쪽으로 내려가서 이태리는 F104S 슈퍼 스타파이터가 주축이었는데, 도대체 어떤 전투기가, 폭스 헌터의 토네이도를 우스꽝스럽게 만드나?
이유는 하나였다. 너무 작아서. 양쪽 날개 길이 8.5 미터에 길이 10.3 미터로, 2차 대전 때의 프로펠러 전투기보다 더 작다면 작다고 할 사이즈.
속도는 시속 1090 킬로 미터로 나름(?) 준수하고... FIAT(피아트) G91이라는 소형 전술 전투기였다. 원형이 1950년 대 후반에 만들어졌으니, 꽤나 올드한 전투기.
아니, 그런데 피아트 G91? 그런 전투기가 있었나? 또 피아트는 국내에서도 피아트 500 친퀘첸토로 입을 많이 타는 자동차 회사잖아? 혹시 자동차 이름은 아니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사실 FIAT라는 이름의 뜻 자체가 ‘토리노 자동차 회사 연합’ 이런 의미를 지니고 있으니, 자동차가 연상된다 해도 그리 큰 잘못은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70년대 초, 기아 자동차의 자 회사인 아세아에서, 두 종류의 피아트 세단을 조립 생산한 적이 있었다. 피아트 124와 피아트 132. 두 차는 모두 호평을 받았고, 당시의 자동차 전문가가 이렇게 평가하기도 했었다.
“한국 땅에 굴러다니는 모든 차 중, 피아트 124가 가장 우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전문 회사가 아니다.
이태리가 제2차 대전에 돌입할 때, 가장 많은 대수를 차지했던 전투기가 피아트의 CR45 팔코(매)였으며, 전쟁 막바지엔 독일의 메셔슈밋트109를 너끈하게 이긴다는 G55 센타우로도, 피아트 제였으니까. 아니, 그렇다고 해도 이 전투기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지나(Gina)라는 이름이 붙는 듣보잡 전투기 G91. 그런데 ‘지나’는 또 뭔가? 여자 이름 아니야? 그렇다. 전 세계에서 거의 공식적으로 여자 이름이 붙는 유일한 전투기다. 그러나 이 전투기는 설계사상이 무시무시하다.
소련 기갑부대를 궤멸시키기 위해 만들어졌으니까. 탱크 킬러, 이게 본명이다. 그리고 770대라는 많은 숫자가 만들어져, 무려 40년 이상 하늘에 떠 있었다. 그리고 퇴역을 한 것은 소련이 해체되고도 한참 뒤인 1995년이었다. 그뿐 아니라 실전에도 참가했다. 포르투갈 공군기로 아프리카에서 게릴라들과 싸웠으니까.
시대는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를린 함락으로 나치가 완전 멸망한 지 10여 년, 이제 평화가 정착이 돼야만 할 때이나, 유럽인들의 불안은 여전했다. 나치 대신 새로운 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바르샤바 조약국들과 맹주인 소련. 그리고 그들은 엄청난 숫자의 탱크를 보유하고 있었다. 어느 날엔가 만약 전쟁이 터지고, 그 많은 탱크들이 서독 국경을 넘어 밀물처럼 공격해 온다면? 아찔했다. 대책이 안 서기 때문이다. 바로 지형의 문제였다.
영국에서 프랑스까지 파리행 해저 열차를 타 본 사람은 알겠지만, 차창 풍경은 정말 지루하기 짝이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평평한 밭과 낮은 구릉이 펼쳐진다. 서독 쪽도(지금의 독일) 마찬가지다. 북쪽 대부분은 거의 평야지대.
이게 환장하는 거다. 기갑부대 지휘관들이 미친 듯 좋아하는 지형. 유혹을 참아내기가 힘든 지형이다. 수 백, 수 천대의 탱크로 일시에 밀고 들어가면, 거칠 것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당시 나토 사령부는 이런 생각을 한다.
“소련 기갑부대가 밀려온다면, 탱크 숫자가 워낙 많아 지상군으론 역부족이다. 서부 유럽이 그냥 유린당할 수 있다. 그래서 이걸 막는 방법은 단 하나! 하늘에서 숫자를 줄여줘야 한다. 그것도 많은 수의 탱크 킬러들이! 따라서 우린 소형의 전술 지원 전투기를 만들어야 한다. 나토 각국 공군이 대량으로 장비할 수 있는 저가(低價)의 전투기. 그래서 물밀 듯 밀려오는 소련 기갑부대 상공으로 보내자.”
1955년 나토 본부로부터 설계 공고가 나온다.
“소형 지원 전투기가 필요하다. 작은 기체에, 작은 엔진, 폭탄은 많이 실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제작비가 싸고, 정비도 간단해야 한다. 또 전선의 임시 활주로에서도 쉽게 떠야 한다.”
조건이 하나가 더 있었다. 이건 유렵 각 항공사들이 손뼉을 치며 반길 조건.
“미국의 메이저들은 빠져라. 유럽 대륙에서 쓰는 특화된 기체이니 만큼, 유럽 항공사들만 참여한다.”
채택만 되면 대박 아닌가? 유럽 각 나라의 표준형 전투기로 선정된다는데, 이건 수 백 대가 아니라, 꿈의 숫자 1천 대가 넘어설 수 있다. 10년에서 20년 이상 배 튕기며 일 할 수 있는 일감이다.
그래서 전쟁의 상처를 딛고 막 일어서고 있는 10여 군데 항공사가 달려든다. 대형기가 아닌 소형 전술기라, 저마다 자신이 있다고 하면서... 특이할 만한 건, 프랑스가 열심이었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항공기 제작사 ‘브르제’를 비롯해, 당시 미라주 3의 원형인 미라주 1을 개발 중이었던 있던 닷쏘 사(社)도 응모를 했으니까.
드디어 합격자가 발표된다. 의외였다. 한 수 아래로 쳐주던 이태리였으니까. 이태리 피아트사! 전투기 명은 G91.
여기에서의 G는 설계자 이름인 가브리엘리의 첫 알파벳인데(이태리 항공계의 전통이다.), 어쨌든 이태리 쪽 공업계는 환호 일색이 되고, 프랑스는 실망에 빠진다. 그리고 프랑스는 영국에 대해 앙심을 품는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던 승전국 영국이 이태리를 강력히 밀었기 때문이다.
여기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G91에 들어갈 엔진이 영국제라는 것. 롤스로이스 회사의 보퓨스 엔진. 전투기 5백 대가 만들어지면, 같은 숫자인 엔진 5백 기가 만들어지고, 1천 대면 1천 기가 공장문을 나온다. 라이센스가 된다고 할 땐 또, 앉은자리에서 줄줄이 라이센스료를 챙기고... 그러니 이태리 피아트 사를 강력 지지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게 영국이었다.
그래서 심통이 난 프랑스는, 가장 먼저 이 사업을 보이콧한다.
“나토 표준 전투기라고? 웃기지 마! 우린 안 사!”
거기에 한 발 더 나아가, 실기(實機)까지 3대가 만들어져 G91과 경쟁하다, 탈락한 닷쏘 사 기체를 살려, 자기네 해군 함재기용으로 채용한다. 마침 2척의 항공모함을 건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에땅달’이라는 함상전투기인데, 낙선의 고배를 만신 이 기체를 잠깐 언급하는 이유는 그 개량형인 ‘수페르 에땅달’이, 그 후 지구 상 몇몇 분쟁 지역에 출격, 전 세계 언론에 주목을 받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그 한 예로 포클랜드 전쟁 시, 알젠틴 해군기로 용약 출동, 영국 함대를 습격한 사건이다. 그리곤 초장부터 사고를 치는데, 사고 내용은 영국의 4천5백 톤 급 프리게이트 ‘세필드’에다 미사일을 박아 넣어, 격침시킨 일. 그런데 미사일이 어디 건가? 역시 ‘엑소세(날치)’라는 프랑스제였다. 그래서 당시 전 세계 주요 언론들이 헤드라인으로 다루고, 대서특필했는데, 얼마 뒤 외신을 타고 이런 소식도 들려온다.
“프랑스 인들은 지금 속으로, 무지 고소해한다.”
그리고 후세인과 호메이니가 살아 있을 때의 일이다. 이란, 이라크는 9년 동안 전쟁을 했는데, 나중엔 이게 유조선 격침 전쟁이라는 일명 ‘탱커 워(tanker war)’로 발전한다. 걸프전에서 운항 중인 상대방 유조선을 격침시키는 전쟁, 여기에서 활약한 게 또 이라크 공군의 ‘수페르 에땅달’이었다.
그리고 ‘에땅달’은 어느 날 이란 군함을 발견했다고 생각하고, 2발의 엑소세를 발사한다. 그런데 그 군함은 다름 아닌 미 해군의 프리게이트 ‘스타크’, 37명의 사망자를 내고, 겨우 침몰을 면한 ‘스타크’ 피격 사건이 이것이다.
어쨌든 나토의 ‘표준 전투기 배틀’에서 승자가 된 피아트 사. 전 사원들은 그야말로 입이 귀에 걸린 체 1호기 제작에 들어가고, 이듬해 1956년 초비행에 나선다. 그런데 의외로 성능이 괜찮았다.
한마디로 말해 ‘소형 만능 전투기’였다고 할까? 작은 기체에다 작은 엔진을 달았기에, 생산가가 대폭 싸지면서, 정비가 편했다. 그리고 견고하면서 터프했다.
전선의 간이 활주로는 물론, 잡초가 무성한 시골 활주로에서도 문제없이 뜨고 내렸으니까. 그야말로 전술 전투기로서는 베리 굿!
물론 음속을 넘지 못 하고, 폭탄을 많이 못 싣는다는 단점이 있으나, 그것은 그리 큰 문제로 대두되지 않았다. 나토 사령부에서 중무장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한 놈만 패!”
예전의 한국 영화, ‘주유소 습격 사건’에서 골통 ‘무대포(유오성 분)’가 각목 하나를 들고, 외치는 대사다.
“우린 이 작은놈에게 지나친 기대를 안 한다. 공중전은 나중 문제이고, 적진 깊숙이 들어 가 폭격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 일단 전쟁이 터지면 소련 기갑부대 위로 쇄도, 한 번의 출격에 탱크 1대만 부셔도 족하다. 적의 견고한 진지나 토치카가 목표라면, 역시 하나만 박살 내도 그것으로 충분하고.”
"1번의 출격에 1대의 탱크! 하나의 토치카!"
여기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나토 회원국들이 대량으로 장비하는 까닭에, 대수가 많을 거라는 자신감이다. 단순 계산으로 5백 대가 출격하면, 탱크 5백 대를 부수니까.
또 하나는 기체가 워낙 터프하고, 정비도 간단해, 하루에도 여러 번 재 출격할 수 있어서다. 일단 출격을 해, 30밀리 기관포와 폭탄 2방으로 기갑부대를 습격하곤 돌아온다.
그럼 활주로에서 기다리고 있던 정비병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무기와 연료를 다시 채운다. 그리고 엔진을 회전시켜 다시 출격!
5백 대가 하루에 4번 출격한다면, 적의 입장에선 2천 대가 시간차로 밀려오는 게 아닌가? 한 번 더 출격했다면 2천5백대! 단순하며 심플하며 착한 계산이지만, 어쨌든 소련 탱크 지휘관들한텐 그야말로 정신없는 하루이며, 지옥의 하루가 되고도 남을 일이다.
더구나 이 기체한테는 남다른 이점이 있다. 피격이 덜된다는 점. 제2차 대전 때의 프로펠러 전투기보다 사이즈가 작으니까. 이 전투기가 얼마나 작은 지 F4 팬텀과 한 번 비교를 해 보자.
G91 ‘지나’의 엔진은 겨우 2.2톤.
그런데 팬텀은 8톤 짜리를 2개 달고 다닌다.
합이 16톤.
팬텀이 7배에서 8배나 파워가 크다.
자중(自重)은 어떻게 되나?
G91은 2.9톤이다.
팬텀은 14톤.
전통적으로 가볍고 날씬한
소련 제 미그 전투기와 비교해 보자.
미그 일족의 얼굴 마담, 미그 21
미그 21과 피아트 G91
엔진 파워, 7톤 : 2.2톤
자중, 5.4톤 : 2.9톤
역시 많은 차이가 난다. 팬텀과는 정말 어마어마한 차이가 나고... 물론 팬텀은 팬텀대로 하는 일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G91이 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적진 깊숙이 날아 가 대량의 폭탄을 떨어뜨리는 장거리 전천후 폭격기, 즉 헤비메탈 적 기체니까. 또 소련제 미그 21도 나름대로 잘 하는 게 있다. 경쾌한 운동성과 가속력 등이다. 그래서 팬텀한텐 회전반경에서 쉽게 안 쪽으로 돌고, 미라주 3한테는 압도적이진 못 해도, 빠듯하나마 우세하다.
그러나 G91은 G91 나름대로 할 일이 있고, 주특기가 있다. 단거리에서의 탱크 격멸이고, 지상부대 습격이다.
이제 나토 사령부는 만족을 표하고, 주문에 들어간다. 그리고 도입할 국가들이 나타난다. 당연히 자국 이태리가 첫 번째이고, 두 번째가 서독, 세 번째가 포르투갈이 된다. 그리스와 터키도 각각 50대씩 주문을 해, 피아트 사는 생산을 전부 다 완료하나, 두 나라가 미적미적거리자, 서독이 전부 다 가져가 그들 공군에 편입시킨다. 소련 기갑부대의 주 통로이기에, 어느 나라보다 많은 대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장에 있어서도, 30밀리로 바꿔 달 것을 요구한다(오리지널은 20밀리 기관포다). 대구경 기관포 30밀리. 당연히 탱크를 잡기 위해서다. 하늘에서 내리꽂으면서 이 대구경포를 쏘면 탄두 속도에 기체 속도까지 더 해져, 당시 소련 기갑부대 중핵이었던 T-54나 T-55는 그대로 박살 나고, 장갑이 두꺼운 중(重) 탱크 ‘스탈린’조차 구멍이 숭숭 뚫리기 때문이다.
생산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다시 새로운 장비가 추가된다. 카메라였다. 기수에 다는 3대의 카메라. 정찰기 역할도 겸하게끔 하기 위해서다. 지상공격을 하다가, 적기가 나타나면 기수를 틀어 공중전에 들어간다. 물론 이게 전공은 아니나, 워낙 작은놈이고 기동력이 좋아, 쉽게 격추되지는 않는다. 또 필요할 땐 정찰 비행을 한다. 기수에 카메라가 3대나 달려 있으니까.
국방비 절감의 일등 공신이, 따로 없다. 이 G91 ‘지나’라는 기체. 전투, 공격, 정찰, 3가지 임무를 1대의 기체와 1명의 파일럿으로 해 내니까. 그것도 기존의 다른 전투기의 3분지 1밖에 안 되는 몸으로... 그래서 일본의 항공 평론가 ‘하야시 고우찌’는 그의 책 ‘세계의 걸작 전투기’에서, G91을 이렇게 평하고 있다.
“간결한 구조와 소형, 경량의 설계.”
“비용 대 효과면에서, 이보다 발군인 기체가 있을까?”
그런데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타입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제트 연습기'
기체를 약간 늘리고, 조종석을 하나 더 설치했더니, 썩 괜찮은 연습기로 변하지 않는가? 그리고 이 기체엔 기존 엔진과 동일한 제품이나, 좀 더 추력이 작은 걸 집어넣는다. 연료를 아끼기 위해. 당연히 이 타입도 꽤나 호평을 받고, 주문이 들어온다. 전투기를 타기 직전의 고등 연습기로 이태리와 독일에서 채택이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습기 포함 총생산 대수는 770대!
마이너 기종으로는 상당히 많은 대수다. 물론 더 많은 대수가 생산될 수 있었다. 미 육군이 관심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체 1대를 가져가, 테스트를 한다. 최전방의 지원 전투기로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그런데 고정익 제트기를 육군이 갖는다는 게, 부담스러웠는지 프로젝트는 캔슬이 된다.
캔슬이 되지 않았다면? 대량 주문이 들어오고, 1천 대 생산은 쉽게 넘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수원, 평택은 물론이고, 의정부나 동두천 쪽 미군 활주로에서도, 이 작은 싸움꾼을 보게 됐을 테고... 왜냐하면 유럽보다 오히려 한반도 지형이, 활약의 장(場)으로서 더 알맞기 때문이다.
이 싸움꾼의 본명은 탱크 킬러, 그리고 북한 기갑 병력의 규모는 상당히 크지 않는가? 그래서 G91 비행대의 한반도 전개는 참 아쉬운 마음이 남는다. 또 미 육군이 어느 정도 사용 한 뒤, 우리 공군한테 싼 값으로 이전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미군 장비들이 그렇게 해서, 우리 군에 도입된 경우도 적지 않게 있었으니.
그래서 이런 상상을 해 본다. 만약 북한과 전쟁이 터졌을 때, 북한 기갑부대나, 기계화부대가 선봉으로 내려온다면, 이 작은 킬러들이 그들 머리 위로 쇄도하는 상상. 그때 우리 파일럿들은 30밀리 기관포와 로켓탄을 발사하면서, 혹시 이렇게 외치지 않을까?
“니들은 이제 다 죽었어! 우리의 쑈 타임이니까!”
물론 G91‘지나’는 걸작기 측에 들지 못 한다. 멋있거나 화려한 것과도 거리가 멀다. 그래서 F4 팬텀이나 F14 톰캣, F15 이글이나 미그 일족처럼 전설이 되지 못 했다. 또 초음속도 아니며 폭탄 탑재량도 적다. 공중전에 돌입한다면, 저공을 주 전투 공역으로 삼아야지, 중고도로 올라가면 힘이 달린다. 상승력이 열세이면서, 수직면에서의 불리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G91은 경량이며 소형이다.
그 카테고리 안에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천문학적 거액의 제작비를 대주면, 누가 좋은 전투기를 못 만드는가? 기름을 엄청 소비해 대는 대 파워의 엔진을 달게 하면, 누가 또 초음속으로 못 만드나? 그래서 이 기체를 장비한 나라들은, 마르고 닳도록 오래 사용한다. 아프리카로 G91을 가져 가, 그곳의 게릴라들과도 전투를 벌였던 포르투갈은(당시의 전투기록과 사진이 나오는 영국 서적을 가지고 있는데, 이때의 폭격 정확도는 혀를 내두르게 한다), 1993년에 가서야 퇴역을 시키고, 독일은 그보다 더 늦게 1995년에 가서야 이별을 하니까.
아니 1995년에 은퇴를 했다고? 초비행이 언제였는데? 너무도 옛날이라, 가물가물하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2년 뒤, 나토의 공모가 나오고, 그다음 해인 1956년에 날아올랐으니... 햇수로만 쳐도 40여 년.
맙소사! 40여 년. 그렇다면 이제 뭐 무슨 얘기가 더 필요할까? 합리성과 계산 면에 있어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독일인이, 그렇게 오래 사용을 했다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독일은 61년부터 사용했으니 35년쯤 된다.)?
그래서 우리도 이제는 무기를 보는 시선과 사고에서, 좀 더 성숙해져야 되지 않을까?
성능이 뛰어난 고성능 무기보다, 그 성능이 한반도 지형에 적합한가를 먼저 생각하는 마인드. 그리고 무조건 고가의 무기보다는, 비용 대 효과를 생각하는 마인드. 특히 국방 정책 담당자들과 공군 지휘관들, 또 소위 군사 전문가라는 양반들은, 그런 생각을 해야 한다. 우리 국민은 먹을 거 안 먹고, 쓸 거 안 쓰면서, 수 십조 원의 국방비를 해마다 내고 있으니까.
대당 1척 억이 넘는 초호화 전폭기 F15K 슬램이글도, 북한 깊숙이 있는 군사 시설을 때리기 위해,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G91 같은 소형 지원 전투기도 분명 우리 지형에 필요하다. 아니 오히려 더 필요할 수도 있다. 북한군이 대규모 남침을 시작했다고 해 보자. 그래서 급한 대로 F15K 슬램이글을 동원해 지상공격을 한다고 하면, 그건 몹시 멍청한 짓임에 틀림없다.
다른 말로 말해, 노는 데를 잘 못 찾은 것. 물론 이런 경우, 북한 지상군 대공화기들이 도달하지 못 하는 고고도에서, 공격을 하든가, 아니면 북한 후방 시설을 장거리 폭격하러 출격하는 등, 나름대로의 성능을 살리겠지만... 어쨌든 기본적으로 F15K는 총칼이 맞붙는 FEBA(Forward Edge of Battle Area) 라인에 사용할 전폭기가 아니다.
그리고 너무 비싸고 너무 크고, 출격할 때마다 아니면 돌아와서도, 숱한 정비원이 매달려야 한다. 고가 이면서 고성능의 세계 최고급 전폭기니까. F4 팬텀도 오래된 기체이나 조금은 그런 편이다. 대량의 폭장을 하고, 장거리 폭격에 나서는 쪽이 적성에 맞으니까.
전쟁 초기의 경기 북부나 휴전선 인근 전투는 성격이 다르다. 상대의 탱크 1대, 장갑차 1대, 그리고 보병한테 직접 기총소사를 해 버려, 죽여 버리는 전술기가 필요하다. 그것도 많은 숫자가. 야구로 치면, 돌아가면서 집중 안타를 때리는 식. 두 말할 것 없이, 피아트 91 같은 소형 싸움꾼 아닌가? 작으면서 정비가 쉽고, 가동률 좋으며, 그래서 많은 대수를 보유해도 부담 없고, 하루에도 몇 번씩 재출격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적인 기체.
만약 우리 공군에게 그런 싸움꾼들이 있다면 북한 기갑부대의 대규모 남침, 그리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 거라 생각을 한다. 바로 그 날이 북한 지휘관들에게 있어서, 거의 악몽의 하루가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