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세계 각국의 전차 명명법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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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dreamstime.com
세상에서 탱크라는 무기를 제일 처음 만들고, 실전에 대량 동원한 나라 영국.
비록 물탱크에서 연유됐으나, 탱크라는 이름도 그들이 지었으니, 분명 영국은 탱크의 모국이다. 그래서 그런가? 1차 대전 초기의 탱크에 마더(Mother)라는 게 있다.
어머니? 모든 탱크의 어머니라서?
물론 그런 뜻으로 붙인 건 아닐 것이다. 이후의 모든 전쟁에서 탱크가 육상의 왕자로 등극할 줄, 누구도 생각 못 했으니까. 중년이 되면 뚱뚱해지는 유럽 여자들처럼 몸집이 커 그랬나? 아니면 어머니처럼 보병을 잘 지켜 달라는 염원에서?
*참호전에서의 영국의 마크 1형 탱크. 보통 ‘마더’라고 불렸다. 출처: vignette.wikia.nocookie.net
어쨌든 영국인의 물탱크(?)의 그 탱크는 전 세계의 탱크가 된다.
서양이나 일본 식 한문 조어를 되도록 배척하는 중국도 탱크만큼은 탱크라 부르니까. 한문으로 담극(擔剋)인가 담극(擔克)으로 쓰고, 발음을 탱크 비슷한 ‘탕쿼’로 발음하는 것 같다.
소련도 그렇다. 탱크의 모국은 영국이나, 탱크의 왕국은 소련 아닌가? 냉전 시 수 만대의 탱크로 유럽 대륙을 덮을 수 있었던 전차의 왕국. 그런데 소련 사람들도 탱크를 탱크라고 한다. 소련식 발음으로, 약간의 변형인 ‘땅크’가 되지만.
물론 독일은 탱크라 하지 않고 판저(Panzer)라 한다. 폭풍우가 쳐도 우리는 전진한다는 유명한 ‘판저 리드(기갑병의 노래)’가 나오는 영화 ‘발지 전투’에서도, 판자라는 자막이 나온다. 어렸을 때 그 영화를 봤는데, 판자? 무슨 나무 판자? 라고 의문을 가진 기억이 난다.
판저라는 게 독일어로 갑옷, 장갑, 흉갑이고, 탱크의 시대가 되면서 그대로 전차가 됐는데. 번역은 독일어를 모르니, 그냥 발음 그대로 쓴 것 같다.
그런데 1차 대전의 결정적 무기 탱크. 그래서 그 완강했던 독일군이 결국은 손을 들게 만들었던 무기가, 전쟁 후에는 그냥 찬밥이 아니라 완전 쉰밥 취급을 받는다. 당시의 연합국 대부분에서 그랬는데, 특히 탱크를 만든 영국에선 더욱 심했다.
이유는 군 상층부의 보수적 사고.
“한 때 써먹었던 무기야. 이젠 쓸 데가 없어.”
그래서 탱크를 신데렐라 무기라 했다. 갑자기 혜택을 받은 운 좋은 무기. 장래의 전쟁터에선 별 볼일 없다는 거.
“옴짝달싹하던 참호전 때문에 써먹었지, 그런 전투를 안 하면 뭐에 써먹나?”
그러니까 전차의 특징인 스피드와 충격력에 대해 생각을 못 했고, 그것에 의한 돌파력에 대해서도 눈을 감았다.
허나 독일 군은 달랐다. 이를 감지(특히 구데리안 같은 군인)했다. 그런 전차를 집단으로 묶어 돌격케 하고, 뒤에서 역시 비슷한 스피드로 지원해 줄 때의 엄청난 효과를...
옛날 로마에선 기병대를 별 볼일 없이 취급했다. 등자가 없어 말 위에서의 전투는 불안정 했고, 그래서 기병대는 결정적인 병과가 되지 못 했다. 더구나 로마 인들은 말을 잘 타지도 못 했고 말 타고 달릴 들판도 적었다.
그래서 장교들이 기병대로 가는 건.
“나, 밀려났어.”
*그림은 멋있으나, 안장도 형편없고, 결정적으로 등자가 없다. 출처: pinimg.com
영국에서 전차가 그 짝이었다. 그래서 예산은 제대로 배당되지 않고, 겨우 겨우 전차라는 무기의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이었는데,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유럽 분위기가 바뀌자, 비로소 주목을 받는다.
그리고 전쟁의 먹구름이 점점 몰려오자, 영국은 신형 탱크 개발에 서두른다. 그때 영국에서 만들어진 게 '마틸다'.
그러나 경제가 좋지 않아, 예산이 나오긴 나오는데 충분치가 않았다. 그런 이유로 마틸다 1은 ‘괜찮은 탱크를 만들자’, ‘그러나 되도록 돈은 안 나가게’ 이런 모순적 개념으로 만든 전차였다. 캐터필러 덮개도 없고, 1인용 포탑으로 아주 작았다. 아니 포탑이 아니고 총탑이었다. 기관총을 달랑 1정 달았으니.
그래서 생긴 것도 이상해진다.
*1인용 포탑에 달린 기관총은, 드라이버의 해치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다. 출처: ytimg.com
게다가 이름도 특이했다.
마틸다.
수많은 탱크가 그 후로도 전쟁터를 누볐지만, 여자 이름은 유일무이하다. 그래서 마니아들이 이 여성 명에 대해 적잖이 궁금해했는데, 묘하게도 여기엔 정설이 없고 여러 가지 설만 존재한다(탱크 이름으로 이런 경우도 드물다).
하나는 당시 1930년 대 후반 무렵 영국 만화(탱크 만화라는 얘기도 있다)에 나오는 오리 이름. 그 오리가 마틸다였다고. 쪼들리는 예산 하에 이것저것 떼고 만드느라 모양이 오리 비슷해졌다는 것이다.
*내가 오리 닮았다고? 꿱, 꿱! 그러나 앞부분 장갑은 제법 두꺼웠고, 2차 대전 터지기 4년 전이면 준수(?)하지 않을까? 출처: worldoftanks.eu
또 하나는 전차 공장에서 만들 때의 암호명이라는 얘기다. 이른바 마틸다 프로젝트. 그래서 계속 그 이름으로 불리어졌다나?
그리고 3번째 설이 있다. 이거는 그럴듯했다. 마틸다는 전쟁의 여신, 전쟁의 여왕.
마틸다 하면, 필자는 부디카(Boudica) 여왕이 생각나기도 한다. 2천 년 전인 서기 60년. 로마 지배 하에서 반기를 들고, 한 때 최강의 로마군을 궁지에 몰아넣었던 용맹한 영국의 여왕 부디카.
그 후 이름을 그대로 이어받은 마틸다 2가 만들어진다. 전운이 점점 밀려오자 당연히 좀 더 강화된 성능과 형태. 7.7밀리 기관총 총탑을 2파운드, 40밀리 주포로 바꾼다. 그러니까 보병 상대에서 대 전차 전투도 할 수 있는 본격적 전차.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산 부족은 여전해, 당시 런던을 다니고 있었던 2층 버스 엔진을 그대로 쓴다. 아니 버스와 탱크가 무게가 비슷해? 힘이 되느냐고? 그래서 엔진 2개를 쌍으로 달았다.
그리고 전쟁이 터진다.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 영국은 프랑스와 함께 선전포고를 하고, 영국은 BEF, 영국 원정군을 유럽에 파견한다. 그리고 자랑스러운 오리 자매들도 프랑스에 발을 딛게 된다.
그러나 전황은 절망적. 독일의 전격전이 그대로 먹혀들어 가, 연합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그런데 이 마틸다 자매, 다른 건 몰라도 장갑이 제법 두툼해 전면을 맞아도 끄덕 없이 전투를 계속한다. 제2차 대전 사에 있어 한 획을 긋는 전투에 참가, 용맹을 떨친다.
상대는 롬멜의 제 7기갑의 유령사단. 겁도 없이 프랑스 국내로 돌진하던 그 사단의 옆구리를 친 것이다. 그 유명한 ‘아라스’의 전투다.
*마틸다 1의 뒤를 이은 마틸다 2, 40밀리 주포를 장착한 데다 장갑은 더 두꺼워져 ‘오리’라는 인상이 사라졌다. 출처: kenny22.com
그러나 이 아라스 전투는 부분적인 승리. 그저 독일 군을 한 번 깜짝 놀라게 해 준 것에 불과, 예정됐던 패배는 피할 수 없었다. 이제 프랑스 군과 BEF(영국 원정군)은 독일 군에게 포로 되는 걸 피하기 위해, 후퇴를 시작하는데, 목표는 "덩케르크" 항!
(만일 이때 탈주가 실패하고 포로가 되면 베를린이 함락될 때까지 5년 동안 수용소에서 살아야 한다.)
그래서 죽어라 후퇴 길에 나서는데, 놀랍게도 덩케르크 까지 가보니, 그동안의 전투 속에, 또 고난의 후퇴 길에도 단 1대의 손실도 없었다고. 마틸다 1도 같이 했는가에 대해선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이 자매의 강인함과 함께, 필자 생각을 잠깐 곁들인다면, 런던 2층 버스 엔진의 우수성을 여실히 드러낸 일이라 하겠다.
그 후 마틸다는 다른 곳의 전쟁에 참가한다.
이번엔 열사의 사막, 북 아프리카.
그곳에선 무적이었다. 적수가 없었다. 이태리의 변변찮은 전차와 변변찮은 기갑부대 지휘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이 상륙하고 그들이 염병할 88밀리 고사포를 가지고 올 때까지는!
*마틸다는 전진한다! 구미에 있는 독특한 미술 장르, ‘전쟁화’에서의 전투 여왕. 출처: enuii.com
이제 마틸다의 뒤를 이을 전차가 만들어진다. 좀 더 장갑을 강화하고 주포를 더 큰 걸로 단 본격적인 전차. 그런데 그 후계 전차 이름도 역시나 이상했다. 전차 이름으로는 매우 우스꽝스러웠다.
"발렌타인"
이후 영국 최고 수훈의 전차가 되는데도 이름이 그랬다.
제 2차 대전의 전 기간을 통해, 영국의 수훈 전차라 하면 발렌타인을 꼽는다. 전쟁 내내 생산한 모든 전차 생산량의 반이라고 하면 그 우수성은 증명하고도 남는다.
소련에도 많은 숫자가 건네 졌는데, 필자 기억이 맞는다면, 스탈린이 처칠한테 이런 부탁을 한 것도 같다.
“발렌타인 좀 더 생산해 주면 안 될까요?”
그런데 마음이 가는 건 그 이름이다. 밀리터리 마니아, 특히 AFV 마니아들은 한 번쯤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도대체 발렌타인이 뭐야? 그게 왜 붙어?”
전차병이 발렌타인 데이 때, 무단으로 몰고 와 애인한테 꽃을 줬나?
*제2차 대전 최고 수훈 전차라 평가받는 발렌타인. 생산량이 많아 바리에이션 타입도 많고, 주포의 구경도 여러 가지다. 출처: pinimg.com
마틸다 1, 2를 만들었던 빅커스 사. 이 회사 전차 설계자들은 그 후계 전차의 설계와 제안서를 육군에다 제출한다.
“훨씬 더 장갑이 두껍고, 센 전차를 만들겠다.”
바로 이 날이, 영국의 성 발렌타인 데이, 나흘 전이었다. 그래서 이름이 그렇게 됐다는 것.
그러나 또 다른 설이 있다.
하나는 설계 스탭 중 저명한 전차 기술자인 존 카덴(Jhon Carden) 경의 미들 네임이 발렌타인이라 그렇게 됐다는 거다. 그러니까 풀 네임이 '존 발렌타인 카덴'.
세 번째가 있다.
빅커스 사와 차기 전차로 경쟁했던 암스트롱 사(두 회사가 같은 자본인지는 모르겠다)와 이름을 합쳐 Vickers Armstron Limit on Tyne을 줄이면 VALon Tyne, ‘발론 타인’이 되고, 이게 발렌타인이 됐다는 설.
그런데 요즘은 이 3가지를 각각 정설로 쳐 준다. 그래서 이렇게 얘기가 된다.
“전부 다 맞아. 어쨌든 모두 발렌타인이니까.”
그런데 이게 참 흥미로운 일 아닌가? 먼젓번에 만들었던 마틸다도 그렇고, 발렌타인도 그렇고. 이름이 있긴 있는데, 누가 지은 지도 모르고, 그래서 이름에 대한 상층부의 확실한 컨펌도 없었는데, 대량 생산이 되고 전투에 내 보내는 거.
그것은 상대 국가였던 독일이 히틀러 총통 하, 일사불란하게 상명하복 식의 구조를 갖고 있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히틀러는 전차에 매우 관심이 많았고 일일이 생산을 지시하기도 했으며, 이름이 마음에 안 들땐 바꾸라고 명령을 내리기까지 했다고.
영국은 그렇지 않았다. 각각 다른 의견이 제기되는 민주주의적 사회 구조였다. 누가 전쟁의 위기 속에 탱크 이름을, 오리 닮았다고 만화 오리 캐릭터 이름으로 붙이고, 때가 어느 때인데, 발런타인 이라고 이름을 붙이겠나?
그러나 이 전쟁이 본격화되기 시작하자, 이야기가 달라진다. 영국산 신형 전차에는 대부분 'C'자로 시작되는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다. 전투적 느낌이 물씬 베어 나오는 이름.
*캐비넨타 탱크와 함께 C로 시작되는 원조, 크루세이더. 출처: pinimg.com
북 아프리카 전 이후의 영국 전차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크루세이더(Crusader) - 십자군의 기사
센토(Centaur) - 날개 다린 용마
카미트(Comet) - 혜성
전차의 개발자 중 한 명이며 당시의 영국 수상에서 따온 중후한 보병 전차 처칠(Churchill)
*한국전에도 처칠 전차는 그의 바리에이션 타입인 크로커다일과 함께 참전했다.
그리고 전쟁 말기의 걸작 중 걸작 센츄리언(Centurion) - 로마군의 백인대장. 모두가 캐피털 레터가 'C'다.
이 전통은 전쟁 이후에도 이어진다.
소련의 괴물 중전차들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컨쿼러(Conqueror) - 정복자, 또 독일에 주둔하던 라인 군단의 주력도 'C'로 시작되는 치프틴(Chieftain) - 추장 이다, 이후 걸프전에서 대활약을 한 챌린저(도전자) - Challenger 까지.
*완전 헤비 급 전차 챌린저. 출처: wikimedia.org
또 언제일지 모르나, 장차 챌린저 2의 후계차가 만들어진다면, 영국군 관계자들은 사전에서 'C' 항목을 뒤질 것이다. C로 시작되는 적당한 이름을 찾느라.
그것은 아마 수 천년 전 메소포타미아의 전쟁 필살무기, 두 마리 말로 달리는 고대전차로부터 나온게 아닐까?
그 고대 전차 이름이 채리오트(Chariot). 'C'로 시작되니까.
2천 수 백년에 벌어진, 아시아와 서양을 가른 페르시아 운명의 전투 가우가멜라 들판에서, 알렉산더의 원정 군을 향해, 페르시아 군의 채리오트들이 돌격해 들어갔다. 양쪽 바퀴에는 긴 낫을 달아 맹렬히 회전케 하고, 채리오트 위에선 창을 던지거나 활을 쏘면서.
*출처: usf.edu
그리고 한참 지난 2천 년 뒤, 그 중동 지방의 신생국가 이스라엘 신형 채리오트를 만들어낸다. 특이하게도 전차 앞부분에 엔진을 집어넣어, 적탄이 직격을 해도, 그 엔진 실이 승무원들의 피해를 막아주게 하는 구조.
그리고 그런 구조로 인해, 탱크 뒤 쪽은 프리(free), 그래서 거기에 출입구를 둔 희한한 구조다. 이후 그 육중한 사막의 탱크는 곧 존재감을 나타낸다. 베이루트 내전 때, 시리아의 소련제 최신형 전차들을 격파하는 등, 중동 최강으로 군림하는 것이다.
그 이름이 '메르카바'다. 그러니까 채리오트의 히브리어.
*엔진이 앞에 달린 이스라엘의 채리오트, 메르카바. 출처: wikimedia.org
채리오트(메르카바)는 중동 땅이 고향이며, 그 중동의 사막이 고대로부터 그의 전장터였다.
그런데, 어디서 이상한 초원이나 달리던 소련제들이 나타났으니, 거의 3천년 전부터 이곳을 홈그라운드 삼은 채리오트한테 밀릴 수 밖에...
(다음 편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