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내 앞에서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나는 현관 앞에 신발을 신은 채 아내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5분째 바라보고 있었다. 보다 못한 나는 양손에 든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며 한마디 했다.
"우리 오늘 나갈 수 있는 거야?"
아내는 답변 대신에 핑계를 내놓는다.
"여자들은 원래 나갈 때 할 일이 많은 거야. 화장해야지, 옷 입어야지, 짐 챙겨야지. 응?"
짐도 많지만 핑계도 참 많다. 이것저것 챙기면서 현관으로 나오는 아내를 보면서 나는 나름 획기적인 생각을 떠올렸다.
'다름을 인정하자'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매우 긍정적이며 합리적인 생각이었다. 사람마다 시간 개념이 다를 순 있으니까.
'그래! 우린 다른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기는 했다. 우리가 다르다니... 맞아. 우린 다른 거야. 좋아하는 음식도 다르고, 좋아하는 영화도 다르고, 좋아하는 많은 것들이 다르지 않은가. 어떻게 같을 수가 있을까. 생각이 이쯤 이르니 마음이 푸근해지면서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약속시간은 같지 않은가.
"얼른 가자!"
물론 이 글은 아내의 습관을 폭로하는 글은 아니다. 여성에 관한 글은 더더욱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약속시간에 늦는 사람들에 관한 글이다. 항상 늦는 사람들은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 얘기를 쓰려는데 우연히아내의 에피소드가 떠오른 것뿐이다. 아내는 또 뭐가 생각났는지 한마디 하면서 다시 방 안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