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으로 생신축하 파티를 비대면으로 열어보았다.
부모님의 생신 파티는 가족들이 모두 만나는 계기가 된다.
다 함께 사는 대가족이라면 느낌이 다르겠지만
대부분 떨어져 사는 가족들이 유일하게 모여서
함께 식사를 하며 웃고 떠드는 날이다.
부모님의 생신을 축하하는 자리인 만큼
자식들은 멋진 시간을 선사하고 싶어 한다.
물론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현실이 따라주지 않아서 그렇지
그래도 모든 이들의 마음은 같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특별한 날을
어쩌면 1년에 한두 번 있는 그런 시간을
코로나라는 괴물이 다가와서
생전 처음으로 만나보는
아주 많이 버라이어티 한 생신 파티를 만들어주었다.
고민도 해봤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모두 모이기 힘든 상황이어서
비대면으로 만나보자는 아이디어를 꺼내보았다.
나를 제외하고 다들 처음으로 화상 프로그램에 접하는 것이었지만
싫지는 않은 반응이었다.
'그래, 한번 해 보자!'
생신 전날 리허설을 하기 위해
장인 장모님을 제외한 모든 가족이 화상회의 프로그램에 접속했다.
큰 처남은 카메라 각도를 이리저리 돌려보면서 맞춰보고
작은 처남은 노트북에 마이크가 안된다며 만져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다들 비대면으로 얼굴 보고 인사만 하는 줄 알고 있었겠지.
하지만 느닷없이 장기자랑을 하자고 말을 꺼내니
폭탄선언이나 한 듯 모두들 난리가 났다.
케이크만 자르고 끝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장기자랑이라니...
근데 더 놀라운 반전이 있었다.
장기자랑을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어떤 것을 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이 무척이나 즐거워 보여서 슬슬 신이 나기 시작했다.
큰 처남은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지 고민된다며 흥얼거리기 시작했고
아내는 숨은 재능을 뽐내기 위해 쉴 새 없이 칼림바를 튕기고 있었다.
작은 처남은 부모님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게 되어 있어서
장기자랑을 면제(?) 해줬다.
다들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는 것이 파티 전야제나 다름없었다.
원래 이렇게 뭔가 준비할 때
행사 자체보다 준비하는 과정이 더 즐겁지 않은가.
여행 가기 전 맛집 찾아보는 것처럼 말이다.
초등학생 조카는 생신축하곡을 부르기로 했고
큰 처남댁이 피아노로 반주를 하기로 했다.
아내는 칼림바 연주를 하기로 했지만
사실 우리는 비장의 무대를 선보이기로 결심했다.
어떤 것인지는 다른 가족들에게는 공개하지 않았는데
현장에서 깜짝쇼로 보여줘야 감동이 배가 될 것 같아서였다.
우리의 계획은 바로 환상의 커플댄스였다.
우스꽝스러운 노란 가발, 검은 가발에 선글라스를 폼나게 쓰고
듣고만 있어도 흥이 돋는 아모르파티를 틀어놓고
유튜브에 나오는 안무 선생의 춤을 신나게 따라 하는 것이었다.
(둠칫 둠칫~ 사실 음악이 절반은 커버해준다)
장인, 장모님은 박수를 치면서 좋아하셨고
큰 처남은 일어나서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고
평소 점잖았던 작은 처남은
둘이 합쳐 백 살 가까이 된 누나와 매형의 춤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환한 미소에 박수를 치면서 말이다.
멀리서나마 부모님을 즐겁게 해 드리기 위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악기를 연주하는
자식들의 모습에 장인 장모님은 즐거워하셨다.
소감을 여쭤보았더니
'직접 만나는 것보다는 못하지만 너무 즐겁고 고맙다'라고 말씀하셨다.
어쩔 수 없이 비대면으로 생신파티를 시도했지만
난생처음으로 자식들은 부모님 앞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만약 대면의 상황이었다면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화면으로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더 과감할 수 있었다.
불현듯 코로나가 만들어 준 장성한 자식들의 재롱잔치.
장인어른의 랜선 생신 파티는 그렇게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이제 또 설날이다.
또다시 랜선으로 만나 뵈어야 할 것만 같다.
감흥은 전과 다르겠지만
죄송스러운 마음도 조금 덜 하진 않을까...
이렇게 생각해보니
가족이 함께 얼굴 맞대고 식사하는 것이
소소하지만 대단한 행복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