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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왓챠 WATCHA Mar 23. 2020

차별의 방식은 다양하다

디트로이트(2017)




영화 디트로이트. 1967년 실제로 일어난 흑인 폭동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이다. 2018년에 개봉한 참으로 완성도 높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관객이 2만 명을 조금 넘었을 뿐이다.


1992년 로스엔젤레스 폭동

우리에게 ‘흑인 폭동’하면 1992년이 떠오를 것이다. 백인들에게 당했던 울분을 난데없이 코리아타운에 쳐들어와 풀고 갔던 사건. 한인들은 총기로 무장했고 지붕에 올라가서 흑인 폭도들과 대치하면서 스스로를 지켰던 대단히 영웅적인 사건. 


이미 오래된 이야기고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복기하거나 반성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 파편적으로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차라리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감동적인 연설이라던지, 조금 식견이 있다면 말콤X에 대한 예찬 정도일 뿐 1992년 그 때 그 분노에 대한 기억은 한국사회에 조금도 남아있지 않다. 

흑인 청년 로드니 킹이 백인 경관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했던 것만큼 한인 상점을 운영하던 두순자씨가 15세 흑인 소녀 라타샤 할린스를 권총으로 쏘아죽이고 무죄를 받았던 사실을, 그로 인해 사태가 격화되었다는 사실을 대체 누가 기억하고 있을까.


그런데 1992년도 아니고 1967년이라니! 흑인 폭동이 그 때도 있었어? 사실 표현부터 문제이다. 동학난은 동학농민운동, 4.19의거는 4월혁명이라고 부르는 판에 여전히 흑인들의 저항은 ‘폭동’이다. 동학난과 흑인폭동이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그들에게는 거시적인 비전이 없고 그들은 결국 폭력적이었으니까? 흑인폭동이 보여주는 특유의 약탈적 요소, 흑인사회의 반복적인 참담함 같은 것들을 부정할 수는 없겠으나 여타의 민란과 혁명에서도 폭력적 요소가 다양하지 않았던가.


프랑스 혁명 당시에도 분노한 민중이 동네의 인심 팍팍한 빵가게 주인을 집단 폭행하여 죽인다던지 동학농민운동 당시에는 양반들의 무덤을 파헤치는 ‘굴총’이라는 폭력이 넘쳐났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폭동 외에 다른 어떤 단어를 붙일 줄 모르고 이런 용어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조금의 주저함도 없는 이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을 해야만 할까.

차별받는 사회에서 흑인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영화가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듯이 흑인 문제는 뻔한 패턴을 띈다. 일단 폭동의 원인을 백인들이 제공한다. 그리고 폭력 사태가 벌어지면 정부는 엄정한 법집행을 강조하며 필요하다면 군대까지 동원하여 진압에 나선다. 


이쯤 되면 사적 폭력이 넘실댈 수 밖에 없다. 치안 안정을 명목으로 흑인에게 폭력을 가하거나, 진압을 빌미로 살해를 하고, 흑인과 어울리는 백인 특히 백인 여성을 대상으로 온갖 모욕적인 언사를 남발하며 성폭력까지 저지를 수 있다. 흑인 지도자 그룹의 그 어떤 노력과도 상관없이 언론은 자극적인 사건사고를 보도하는데 여념이 없고, 만약 재판이 벌어지면 백인 배심원단이 꾸려진 상태에서 극히 약한 처벌만이 있을 뿐이다.

흑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실 할 수 있는 행동은 별 게 없다. 껄렁껄렁하게 다니면서 욕설을 지껄이다가 적당히 폭력적으로 백인들에게 위해를 가한 후 가혹한 처벌을 받으면서 범법자가 되는 길. 백인들과 거리를 두고 조심하게 생활하다 우연한 사건에 휘말려 고통을 당하며 제대로 된 사과와 배상도 없이 억울한 피해자가 되는 길. 그리고 충성스럽게 백인 주류 사회에 순종하며 살다 백인들의 필요에 따라 소모품처럼 활용되다 버려지는 길. 백인이 지배하는, 흑인을 차별하는 사회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흑인이라는 개인이 자율적으로 무엇인가를 이루어갈 수 있는 것들은 없다.


우리 사회는 어떨까.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라는 거대한 권력자가 사라진 사회. 단일민족까지는 아니더라도 황인종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니 차별 구조가 확연히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차별 구조가 없을까. 있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고쳐나갈 수 있을까. 미국에 대한 이해, 흑인 사회에 대한 이해 그리고 오늘 우리를 돌아볼 수 있는 묵직한 진심을 던져주는 영화 디트로이트. 



디트로이트, 지금 볼까요?


심용환 / 역사학자, 작가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이자 성공회대 외래교수입니다. <단박에 한국사>, <헌법의 상상력> 등 깊이와 재미를 고루 갖춘 작품을 쏟아내고 있죠. <KBS 역사저널 그날>, <MBC 타박타박 세계사>, <굿모닝FM 김제동입니다>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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