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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왓챠 WATCHA Aug 30. 2019

어른대는 죽음, 이상한 활기.. 쥐잡이

쥐잡이 (1999)



<캐빈에 대하여>(2011), <너는 여기에 없었다>(2017)의 국내 개봉으로 감독 린 램지의 이름이 익숙한 관객도 있을 것이다. 이제 막 4편의 장편영화를 만든 린 램지의 장편 데뷔작 <쥐잡이>(1999)로부터 이 지면을 시작해보려 한다.


1970년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우의 가난한 노동자 집안의 소년 제임스 길레스피(윌리엄 이디). 불행은 벼락처럼 소년을 덮친다. 제임스는 실수로 친구 라이언을 집 앞 운하에 빠뜨리고 라이언은 눈 깜짝할 사이에 죽음에 이른다. 의도하지 않은 장난은 비극이 되었고 매일같이 뛰놀던 집 앞의 풍경은 두려움과 불안을 한껏 끌어안은 풍경이 된다. 내성적인 제임스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이 모든 걸 집어삼킨 물속을 말없이 가만히 응시하는 것이다.


영화는 죽음의 원인과 범인을 파헤치는 추적의 일에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다. 대신 충격적인 사건 이후 그 누구와도 이 일에 관해 말하지 못하는 제임스의 내밀한 심상, 소년이 오가는 동네의 변함없는 일상과 그 속에 잠복해 있는 다층적이고 다면적인 폭력과 비루함을 비춘다.

이를테면 제임스의 가족. 짐작건대 어머니는 자신의 많은 걸 포기하고 집안을 돌봐왔을 것이고 아버지는 제 마음 가는 대로 살아왔을 것이다. 영화는 이 집안의 상태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대신 하나의 장면을 무심히 집어넣어 둔다. 제임스가 미처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지쳐 잠든 엄마의 구멍 난 스타킹을 조심스레 당겨 비죽이 나온 엄마의 발가락을 덮어주는 장면 같은 것이다.


또 이를테면 제임스의 친구. 유일하게 제임스가 교감을 나눈 마거릿이 폭력적인 또래들에게 시달리다 안경을 운하에 빠뜨리게 된다. 제임스는 그 안경을 찾으려 애를 쓴다. 그 물은 라이언을 죽음에 이르게 한 물이다. 그 물속에 또다시 마거릿의 안경이 빠졌다. 물속을 헤집어보는 제임스의 안간힘은 이미 잃어버린 것과의 대면이자 다시 또 뭔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이중의 두려움이다. 제임스 주변의 정돈되지 않은 상황도 마찬가지다. 거리에 넘쳐나는 쓰레기, 곳곳에 어른대는 오염의 흔적들, 그곳을 누비는 쥐들.


린 램지의 세계는 많은 경우 (단편의 일부와 4편의 장편 모두에서)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사건이 벌어지지만, 또한 놀랍게도 린 램지의 세계는 그 비애 사이에 불균질적인 음악과 몸짓을 넣는 걸 잊지 않는다. 예컨대 <쥐잡이>에서 제임스의 친구 케니가 물에 빠졌을 때 제임스의 아빠가 케니를 구한 뒤 집안에서 벌어지는 짧은 파티의 장면 같은 것이다.

죽은 애인의 시체를 처리하는 끔찍한 순간을 마치 환희에 가득 차 흥겨운 의식이라도 치르는 듯한 장면으로 바꿔놓았던 <모번 켈러의 여행>(2002)이나 주인공 조(호아킨 피닉스)가 엄마를 죽인 자와 모종의 동질감을 느끼는 듯했던 <너는 여기에 없었다>의 한순간도 마찬가지다. 종잡을 수 없는 이런 이상한 활기가 비애를 더 극대화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불균형적이고 불균질한 것들의 혼종이야말로 세상의 모습이고 심상의 다면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그리고 마침내 결론에 이르러 <쥐잡이>의 제임스는 죽음의 공간이던 물과 이상한 방식으로 대면한다. 그것은 서둘러 잠에서 깨고 싶은 악몽처럼 보이기도 하고 정반대로 깨어나고 싶지 않은 영원한 몽환처럼 보이기도 한다.


린 램지의 영화에서 형태를 달리하며 계속해서 등장하는 수장(水葬)과 밀폐의 이미지는 이미 여기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명확하게 떨어지는 결론 같은 건 이 영화에 없다. 여기에도 속할 수 없고, 저기로도 갈 수 없는 제임스의 마음과 몸의 상태만이 있다. 무언가의 실체란 그런 이상한 중간 어디쯤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듯이.




정지혜 / 영화평론가


인디다큐페스티발 집행위원, 제11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전문위원, 영화 웹진 <REVERSE>의 필진이기도 합니다. 『너와 극장에서』(공저, 2018), 『아가씨 아카입』(공저 및 책임 기획, 2017), 『독립영화 나의 스타』(공저, 2016) 등에 참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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