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플렉스 때문에 내 생애 최고의 플렉스를 하게 된 건에 대하여
엄마를 노동에서 해방시킨 지 6년이 지났다.
6년. 자신의 전 생애를 담보 잡혀 시 부모, 원 부모를 부양해야 했던 5060 세대에겐 명함도 내밀지 못할 시간이다. 그들이 자신의 지난한 삶을 토로하면 "맞아 맞아"라고 맞장구를 쳐주는 친구들이 적어도 수 십 명은 있을 것이다. 시대를 잘못 타고 난 쓸쓸한 세대. 그들에게 주어진 세대적 공감과 위로는 그래서 당연하다.
친구들이 결혼해 아이를 양육하거나 비혼 삶을 누리는 동안 나는 엄마를 부양했다. 당연하게도 내 상황이나 감정을 나눌만한, 이를 경험했던 친구들이 없었다. 양육에 관한 수많은 정보와 이슈를 공유하는 맘카페는 있어도, 맘을 부양하는 도터카페는 없었다. 고독했다. 오은영 박사의 상담 프로그램에 나온 개천용 자식들이 부모들에게 돈을 빼앗기고 학대를 당한 이야기만 가쉽처럼 소비되고, 그 나이가 되도록 부모의 인정을 바라는 자식의 헛된 짝사랑에 모두들 혀를 차곤 했다. 나도 저들과 뭐가 다를까 곰곰히 생각해본다.
나의 경우 엄마가 강요한 바는 없었다. 물론, 유약한 모습으로 나의 연민을 자극하거나 실제적으로 노후가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 있긴 했지만 어느 누구도 나에게 그 상황을 해결하라고 강요한 사람은 없었다. 만약 내가 6년 전 부양의지를 공표하지 않았다면 엄마는 계속해서 텔레마케팅 보험 설계사 일을 했을 것이다. 엄마는 도박을 하거나 사치나 허세도 없는 사람이고, 나를 가스라이팅하지도 않았으며, 언제나 돈을 그만 보내도 괜찮다고, 항상 미안하다는 말부터 내뱉는 순한 성정을 가졌다. 사실 그게 더 견고한 굴레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통념적으로 나쁜 엄마였다면 단박에 끊어버렸을 텐데. 왜 엄마는 도박도 사치도 허세도 없으면서 나를 가스라이팅하지도 않아서 부양을 끊어버리지도 못하게 만든단 말인가.
어쨌든 부모 부양, 그래서 추천하십니까?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하실 건가요? 앞으로 남은 모친의 생애를 전부 감당할 계획이십니까? 라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아니 내 스스로 자문한다면 나는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다만 확실한 건 이것이다.
안 해도 되는 일.
그래서 누구에게 칭찬도 인정도 비난이나 비판도 받을 필요 없는 일이라는 것.
안 해도 되는 일을 하면서 괴로워 하는 일은 어리석다. 그러나 나는 6년간 그 어리석음의 터널 속에서 발을 자주 헛딛었다. 손을 짚어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제자리에 있었다. 터널을 지나면, 쏟아지는 햇살을 꽃가루처럼 맞으며 모두의 박수와 환호 속에 마지막 피니시 라인을 돌파하는 마라토너가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여러분, 제가 6년 간 모친을 노동에서 해방시킨 자식입니다!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터널 밖 사람들은 놀랍게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까 하지 말라고 했잖아.
누가 그렇게 하래?
안 해도 된다고, 할 필요 없다고 했잖아.
부모도, 형제 자매도 다 남이라니까.
인정을 강요하지 마.
그거 네 컴플렉스 아니야?
금은동메달은 아닐지언정 적어도 등수 없는 꽃목걸이 정도는 받을 줄 알았건만, 바짝 마른 목구멍을 적신 시원한 물 한 모금이 소금물일 줄이야. 6년 간 나는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하면서 거대한 바위를 위로 굴리며 괴로워했다. 적어도 시지프스는 저주라도 받았지. 야, 너 거기, 돌 좀 그만 굴려! 쟤 왜 저래? 그 소리를 들으면서도 멈추지 못했다. 도대체 왜?
그래서 이 글을 쓴다.
어쨌든 칭찬도 인정도 비난도 비판도 따로 떼어놓고, 내가 왜 그랬는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돌아보려 한다. 인생 최대의 플렉스를 할 수밖에 없게 만든 내 콤플렉스에 대해 돌아볼 작정이다. 사실 이 이야기를 쓴다는 것도 꽤 그럴싸한 결론에, 그러니까 단물까지는 아니더라도 겨우 소금기 없는 물을 마시는 방법을 알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것은 부양이 아니라, 양육이라고.
양육, 아이를 보살펴 자라게 하는 본능적인 이타심. 아이를 엄마로 치환해 보자. 그래, 이건 부양이 아니라 양육이었다. 그걸 발견하게 된 순간 나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안 해도 되는 부양을 관두고 하고 싶은 양육을 하자. 12월 생이라 이제 만으로 68세가 된 엄마. 그러나 친구들은 칠순이 된 엄마를 잘 키워보자고 다짐하는 순간, 나는 나를 돌아볼 용기를 얻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부모같은 자식이 자식같은 부모를 양육하기까지 겪었던 고독에 대한 기록이자 혹시라도 나와 같은 상황에서 괴로워 하는 40대 자녀들에게 보내는 동조자로부터의 편지이다. 어디 멀리에서 어리석은 고독에 몸부림치는 그들에게 가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첫 글을 발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