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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박 Sep 25. 2020

나의 코로나, 4월

'그냥 일단 하는' 재택근무 후기

 나는 1차, 2차 산업혁명의 수혜자로 태어나 공산품으로 개성을 뽐내는 사람이 되었다. 3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컴퓨터로 메이플 스토리나 하던 내가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니. 감회가 새롭다. 언제나 누구는 잘하고, 누구는 못하는 세상이라 등수는 자연스러운 건 줄 알았는데, 다 같이 못해서 다 같이 바보 되는 기분도 나쁘지 않다.


 지구에서 문명을 누리는 우리들은 자연스럽고 점진적으로 스마트폰에 적응했다. 스마트폰은 영역을 무섭게 확장해왔다. 화상의 시대는 어떤가. 통화의 개인적인 용도를 넘어 회의와 같은 공적인 용도로 쓰이는 게 당연한 때가 분명 오고야 말았을 것이다. 나는 그 시대에 대해 어렴풋이 생각만 했을 뿐, 내가 살아있는 동안 화상 회의를 하게 될 줄 몰랐다. 우리는 코로나-19라는 쓰나미에서 살아남기 위해 걷기도 전에 열심히 뛰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무엇을 배우기에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한다는 것은 인간이 영역이 아니지 않나. EBS의 서버는 터지고, 박사 학위를 딴 교수들은 화상 강의가 낯설고, 일어나 보라는 부장님 말씀에 대리들의 팬티가 공개되는 지구촌처럼 우리가 언제 또 다 같이 멍청해질까. 대한민국의 회사들이 언제 준비해서, 어떤 필요성에 의해 이런 대대적인 재택근무를 시행할 수 있을까. 준비되기 전이지만 '그냥 일단' 해버린 덕에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나는 목요일마다 재택근무를 한다. 나머지 요일에는 지하철을 탄다. 지하철에서 조심조심 몸을 돌려가며 퍼즐처럼 다른 사람들과 공간을 맞춘다. 이 사람들도 출근하기가 무서울까? 괜히 마스크의 코 지지대를 꾹 눌러본다. 처음부터 완벽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하지 못했던 일들이 떠오른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화상 강의나 화상 회의로 인한 웃긴 에피소드들이 성장통처럼 느껴진다. 코로나-19가 지나가면 대부분은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재택근무는 사라지고, 당연한 듯 강의실에 모이고, 콘서트를 가게 될 것이다. 더워지는 날씨에 마스크를 언제까지 껴야 할까 걱정했다는 대화를 나눌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시기를 잊지 못할 것이다. 뜬금없이 맛보게 된 신기술과 인간의 근본적인 바보미(美)가 과연 어떤 식으로 자리 잡을 것인지 궁금하다. 재택근무와 화상 시스템이 비틀거리더라도 굴러가게 된 건 인간의 위대함 때문인지, 자본의 위대함 때문인지도 궁금하다.


 어차피 나는 1등은 글렀다. '그냥 일단 하자' 정신으로, 비틀거릴지언정 계속 걸어야겠다. 사람은 모두 바보였다가 덜 바보가 되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더 오래 걸을 수 있을 것이다. 날씨 좋은 4월. 마음속으로 오래오래 다 같이 걸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 2020.4.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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