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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작자의 수레바퀴 Jan 06. 2022

그녀의 100유로

이 별에는 이별만이 존재하겠지

삼십 대 초반에 아니 삼십 대 초반까지 4년이 넘게 만나던 인연이 있었다.

역복학을 하던 가을학기에 우연히 만나서 흔히 말하는 지금은 부르지도 않을 cc가 되어서, 졸업을 하고도 취업을 준비하고, 또 취업을 하면서도 특별한 갈등 없이 잘 지내고 있었다.


그렇게 잔잔하게 흐를 것 같았던 내 삶에서 난데없이 회사에 사표를 내던져버렸다. 물론 그냥 다녔어도 되는데, 너무 다니고 싶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다달이 고정적으로 주는 월급을 당장 다음 달부터 포기하는 일도 쉽지는 않았다. 자발적 퇴사라 실업급여도 안 나오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그냥 그만뒀다. 구체적인 이유야 더 있겠지만, 그냥 다니고 싶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렇게 나는 차선책 소위 말하는 이직을 준비하지도 않고, 출국 준비를 하고 있었다. 특별히 그럴 맘은 없었다. 그냥 지겹고 지긋지긋한 서울을 아니 대한민국을 떠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생계를 내팽개치고 떠난 일이 과감한 결정이라고 할 수는 없었겠지만, 나는 무조건 그냥 떠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일종의 도피여도 상관이 없고, 탈출이어도 상관이 없다.


사실, 대학교 2학년 때 한참 알바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을 때 고등학교 동창 녀석 두 명은 너무나도 쉽게 집에서 500만 원씩 투척해주며 견문을 넓히라며 유럽 여행을 보내줬다고 한다. 참 부러웠다. 그냥 구애받지 않고 정말 대학생일 때 떠날 수 있는 그 여유가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아르바이트하기도 바빴다. 내 삶을 탓할 수는 없었다. 당장의 여행은 사치였고, 무조건 시급 3천 원과 4천 원 사이의 돈이라도 받으면서 알바로 등록금의 일부라도 충당해야 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때 떠나지 못했던 일종의 한 혹은 응어리 뭐 그리움 뭐라도 좋다. 그것이 삼십 대 초반에 폭발한 것 같았다. 그렇게 비행기표를 끊고, 당시에는 굳이 유레일패스도 끊고, 배낭도 사고, 그렇게 이것저것 준비를 했던 것 같다. 라면이 고플 거라고 컵라면 소자를 다 뜯어서 비닐팩에 재포장을 하여 준비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6월 2일 출국의 날이 다가왔고, 여전히 나와 잘 지내던 그녀가 공항까지 마중을 나왔다. 사실 실망스러웠던 것도 사실일 것이다. 한 번도 그녀와 상의를 하진 않았다. 그냥 내 인생이고, 어쩌면 상당히 이기적인 태도로 그녀를 대한 것이다. 나는 전혀 그녀를 배려하지 않았다. 정말 내 생각만 하고 있었다. 철두철미하게.


공항까지 마중 나온 그녀와 커피를 한 잔 하고 여유 있게 저녁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두어 시간이 좀 흐르고는 이제 그녀는 돌아갈 시간이다. 그리고 그녀의 핸드백에서 새하얀 국민은행 봉투가 보이고 어느새 그 봉투가 그녀의 손에서 나의 손으로 거친다. 봉투 겉에는 적당한 메모도 보인다.


'잘 다녀와! 맛있는 거라도 사 먹어!'


라며 짧은 하지만 강렬한 한마디를 남기고는 쿨하게 떠났다.


봉투의 메모를 보니 가슴이 짠하다. 나의 여행을 응원하고, 몸 건강히 돌아오라는 얘기였다.

그리고 봉투 안에는 나의 첫 여정길이 유럽이기에 100유로를 환전해서 넣어준 것이었다.


뭘까 싶었다. 돈도 돈인데, 그녀의 마음이 참 고마웠다. 어떻게든 특별한 일이 아니면 그 돈을 안 쓰겠다고 무척이나 다짐했지만, 여행의 끝자락에 결국 돈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여행의 시작엔 그녀와 100유로가 곁에 있었다.


그리고 내 여행의 끝엔 100유로도 그녀도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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