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볶음밥 랩소디

우리가 사랑하는 후식 볶음밥에 대하여

by 식작가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 건 아니고


정말 오랜만에 동네에서 삼겹살을 먹었다. 어두컴컴한 불빛에서 두툼하게 썰려 점원의 손에서 구워진, 와사비나 히말라야 소금 따위를 찍어먹는 삼겹살 말고 진짜 동네 삼겹살. 적당한 불판에서 얇고 긴 생삼겹. 내가 구워야 하고 김치나 콩나물을 마구잡이로 올려먹는 그것. 조금은 타고, 그을린 것들과 함께 볶음밥으로 마무리되는 그야말로 동네 삼겹살의 정석.


고기도, 반찬도, 찌개도 적당히 좋았지만 그날따라 유독 볶음밥이 참 맛있었다. 별 것 아닌 재료에 투박하게 볶인 볶음밥이 유독 나를 건드렸다. 요즘 생각보다 자주 먹었다. 무언갈 자리에서 굽고, 볶고, 찌는 음식을 먹으러 갈 때면 어김없이 볶음밥을 먹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투박한 진짜 볶음밥은 유난히 오랜만인 것 같았다.


우스갯소리로 한국의 전통 디저트란 소리가 있다. 본 식사를 모두 끝마치고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 밥을 볶는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지만 밥을 볶을 판과 밥만 있으면 된다. 삼겹살이든, 닭갈비든, 떡볶이든 일단 볶고 본다. 기름 혹은 양념과 밥의 만남에 실패란 없다.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저 궁금했을 뿐. 왜 볶음밥이며, 또 어째서 내가 오랜만이라고 느꼈을까?



당연한 이유


왜?라는 질문을 던져본 적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고깃집에 가면, 특히 판판한 불판이 있는 고깃집에선 으레 볶아먹었다. 볶음밥이라는 메뉴가 있기도 했지만 아예 없는 경우도 있어 그냥 공깃밥을 넣어 셀프로 볶기도 했다. 대부분의 식문화와 마찬가지로 원조와 기원을 속 시원하게 알기 어렵다. 많은 칼럼과 기사, 정보들에선 결국 '~추정된다', '~예상된다'로 마무리된다.


내 생각에는 흔히 말하는 한국식 고깃집 문화가 큰 역할을 했다. 지금이야 구워주는 곳이 많다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고기는 손님이 직접 굽는 것이 대원칙이었다. 김치와 콩나물 같은 반찬을 올려먹는 것도 손님의 재량이었다. 주문한 공깃밥을 식사 말미에 남은 고기와 반찬과 함께 불판으로 올리는 것 역시 손님의 자유였을 것이다.


우리가 쌀을 너무 사랑하는 것도 있다. 요즘은 많이 줄었지만 과거, 식사는 곧 밥을 의미했다. 밥을 먹지 않으면 허하고 기운이 나지 않는다고 여겼다. 식사 중 반드시 밥을 먹어야 제대로 된 식사라고 생각했다. 단백질만 섭취한 식사는 식사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공깃밥이라는 메뉴는 고깃집에 붙어있었다. 다만 그 밥을 언제 먹느냐의 차이이지 않았을까.



맛이 없을 수 없는


대부분의 볶음밥은 한국식 고깃집에서 만들어진다. 그릴이나 석쇠에선 기름을 모을 수도, 밥을 볶을 수도 없기 때문에 주로 넓적한 불판을 사용한 고깃집에서 볶아진다. 삼겹살, 곱창 등이다. 대게 기름이 많이 나오고 고기와 함께 갖가지 채소, 반찬 등을 함께 구워 먹는다. 고기를 다 굽고 남은 불판에는 그 맛의 원천들이 모여 있다. 기름, 튀겨진 고기, 눌어붙은 반찬과 양념들. 탔거나 곧 탔을, 흔히 말하는 마이야르의 산물들.


그 위에 밥이 얹어진다. 밥은 그것들을 모두 흡수한다. 불판에서 고루 데워지며 맛있는 것들로 몸을 코팅한다. 스타일에 따라 김치가 그 행렬에 동참하기도 하며 김과 계란이 보조할 때도 있다. 그리고 종국에는 그 기름을 머금은 채로 스스로가 불판에 눌어붙는다. 밥이 누룽지로 변하면서 생기는 고소함과 동물성 기름이 가지는 풍미가 만나 어쩌면 메인인 고기보다도 더 응축된 맛을 낸다.


고깃집가 아닌 식당에서의 볶음밥도 비슷한 개념이라 생각한다. 닭갈비나, 즉석떡볶이처럼 테이블에서 조리가 이뤄지는 음식도 마찬가지다. 양념이 졸아들고, 재료들에서 나온 맛의 근원들이 밥에 입혀진다. 그렇게 볶음밥을 먹고 나면 불판과 식탁은 말끔히 비워진다. 그야말로 남는 것, 식재료든 맛이든 그 모든 것을 볶음밥에 투자한다. 실로 맛이 없을 수가 없는 맛.



최악과 차악


그래서 그런지 요즘 볶음밥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팬이 아닌 석쇠, 혹은 테이블에서 조리가 이뤄지는 음식이 아님에도 볶음밥이 메뉴에 더러 있다. 한국의 전통 디저트, 밥을 사랑하는 민족, 최고의 마무리 등으로 마케팅되면서 볶음밥이 존재하기 힘든 식당에도 볶음밥이 모습을 드러낸다.


일례로 아예 상이한 볶음밥 메뉴가 있기도 하다. 먹고 남은 것을 볶는 것이 아니라 깍두기 볶음밥, 양밥 등 아예 주방에서 별도의 음식으로 나온다. 그래도 이 정도면 준수한 편이다. 자투리 부위나 별미 반찬을 이용하여 시그니처로 자리 잡기도 하고 색다른 만족감을 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진정한 의미의 볶음밥과는 거리가 사뭇 멀고 이도저도 아닌 볶음밥으로 값비싼 가격을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말했듯, 위의 사례는 양반이다. 가장 안타까운 경우는 내가 먹고 남은 것을 활용해 주방에서 볶여 나오는 볶음밥이다. 볶음밥의 가장 큰 장점인 내 눈앞에서 조리가 이뤄지는 것, 볶음밥의 눌림 정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다는 것, 온도가 일정하다는 것, 이들 중 단 하나도 충족하지 못한다. 또한 내가 먹고 남긴 음식이 주방을 다시 출입하는 것, 모두가 남긴 것이 주방을 거쳐가는 것, 이것들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물론 맛이 좋고 간편하지만 내가 먹었던 이런 형태의 볶음밥은 대체로 아쉬움이 더 컸다.



최악과 차악을 먹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래서 그런 것은 아니다. 최악과 차악의 볶음밥을 요 근래 먹어서 이 글을 쓴 것은 절대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최근에 육천 원 하는 볶음밥부터 주방에서 들고 들어가 볶아지는 볶음밥 등 기상천외한 것들을 모두 먹었다. 맛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대단히 만족스럽지 않았다. 정작 내가 가장 만족했던 것은 동네 가성비 삼겹살 집에서 타고 눌리고 기름을 잔뜩 머금은 볶음밥이었다.


서두에서 내가 볶음밥을 오랜만에 먹었다고 느낀 것은 이 때문이었을까. 내가 생각하는 원형의 볶음밥은 본디 이런 모습이었다. 팬에서 볶아지는 그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 원래 오랜만에 봐야 하는 게 맞다. 팬에 지글지글 굽는 고기를 매주 먹을 일은 없으니까. 볶음밥이라는 타이틀이 너무 흔해졌을 뿐, 내 기억 속 볶음밥은 원래 그리 자주 먹는 음식이 아니었다.


한국의 전통 후식이니, 밥의 민족이니, 이런 우스갯소리들은 아무래도 좋다. 실제로 맞는 말이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꼭 밥을 볶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까지 볶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수요가 있어 팔리고, 메뉴에 올라있는 것이라면 할 말은 없지만 포맷이 너무 정형화되어 있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다. 굽거나, 자작한 양념만 있다면 어떻게든 밥을 볶아낸다. 아귀가 맞지 않는 직소 퍼즐을 힘주어 끼운 느낌. 가끔 들어서 그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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