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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버금 Apr 14. 2024

욕망(1966)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 | 데이비드 헤밍스, 버네사 레드그레이브

욕망(1966) |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 | 데이비드 헤밍스, 버네사 레드그레이브, 사라 마일스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토마스

탐색을 거듭하는 그는 만족을 모른다. 따라서 과민한 신경에 스파크를 일으킬 열과 금속을 찾아 자신의 위치를 잇따라 변경한다. 채움을 향한 그의 욕망은 비어있는 것에 집착하는 태생적 본능과도 다르지 않다. 눈길에 닿는 존재를 손에 넣고자 할 때, 그는 생동으로 불탄다. 결코, 충동질 치는 내면을 억눌러 ‘자신’을 줄이지 않는다.

이기는 균형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이다. 외부 자극에 높은 민감도를 가진 그가 바깥에서 오는 질량을 견딜 수 있는 이유가 있다면,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과 나스시시스트적인 성격 때문일 것이다. 타인에게 강압적이면서, 자신에게 관대한 그에게 공감이나 이해심은 먼 나라의 이야기이다. 나를 위해 살아가고, 나로부터 파생되는 그의 세계에는 자전(自轉)으로 구축된 중력이 강하게 작용한다.


공원에서의 사진도 이렇게 탄생했다. 타인의 허락이나 동의 없이 오롯이 사진집의 마지막을 장식할 사진을 찍기 위해 들린 장소였다. 토마스는 폭력적인 이미지로 가득 찬 그것에 평화를 안겨줄 유일을 찾고 있었고, 늙은 남자와 젊은 여자 한 쌍을 발견할 따름이었다. 그는 그들에게 강한 이끌림을 느낀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공원, 오전, 나이차가 있어 보이는 커플의 데이트는 그에게 인상적인 영감을 가져다준다.

몰래 찍었음에도 당당하다. 젊은 여자는 토마스의 뒤를 쫓아와 삭제를 요청하지만, 그는 아랑곳없고, 되려 약점을 손에 쥔 권력자처럼 양양하다. 그는 집까지 찾아온 그녀에게 필름을 돌려주겠다 약속하지만, 다른 필름으로 바꿔치기한 가짜를 그녀에게 건넨다. 타인을 속이는 일에도 거리낌이 없는 그는 상황이 허락하는 한 자신의 유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토마스가 가진 재능만큼은 집시의 것과 비슷하다. 얽매이기 싫어하는 그는 훔치고 달아나는 소매치기처럼 순간을 포착하고 이내 자리를 떠버린다. 비록 현실의 재정에 발이 묶여 있지만, 자유로운 유랑을 소망하고, 떠다니는 현상을 인화하며 살아가길 원한다. 즉흥과 섬광의 조합은 질서와 상관없는 자신만의 발자취를 생성케 한다.


60년대 영국의 로큰롤 문화는 이런 젊은 세대들의 분방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얼굴에 하얀 분가루를 바르고 거리로 나선 이들은 사회 통념을 거부하고, 전쟁을 반대하고, 기존의 풍토에 반기를 든다. 저항하는 것으로 개전(開展)을 꾀하는 새로운 세대들은 그 자체로 불꽃을 일으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해방을 제창하는 그들의 마임에는 언어가 없지만, 움직임 자체로 많은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토마스가 촬영한 데이트 전경 역시 마찬가지이다. 소리 없이 정지해 있는 그 속엔 어떤 사고가 포함되어 있고, 보이지 않은 진실이 숨어있다. 캐릭터가 가진 집착과 재능, 이끌림의 총체는 우연을 만나 태풍 안을 향해 나아간다. 선명도 낮은 사진 위로 초점을 모으려 애쓰는 토마스의 집요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맥락으로 자리하게 되는 것도 은유와 상징으로 점철된 기조 덕분이다.


>> 살인

여자가 돌아간 뒤, 토마스는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인화한다. 그는 구도와 각도를 달리하여 찍은 여러 장으이 사진 속에서 어떤 감정을 읽어내려 애쓴다. 인적 드문 공원과 바람, 두 남녀 간의 사랑. 그가 찾던 정서는 이런 것이었다. 그러나 미묘하게 엇갈려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선 사랑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균열의 흔적을 찾아 추적을 지속하고, 고요한 풍광 속에 끼어있는 이질감의 정체가 여자의 불안에서 비롯됨을 알아챈다.


여자는 흔들리는 얼굴로 남자의 등 뒤를 주시하고 있다. 토마스는 돋보기를 들고 여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확대하고, 또 확대한다. 그리고 수풀 속에 형태를 알 수 없는 무엇이 존재함을 밝혀낸다. 흐리고 일그러진 그것은 필시 여자를 불안하게 하는 대상일 것이나 해상도가 떨어진 이미지는 추측이 불가능하다. 토마스는 촬영본 모두를 인화해 주위를 빽빽하게 채운다. 전모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자신을 찍는 누군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 토마스를 쫓아오던 그녀의 다급함과 곁에 선 늙은 남자가 아닌 다른 곳을 주시하는 그녀의 엇갈린 시선, 알 수 없는 초조와 영문을 모르는 늙은 남자의 당황이 스튜디오 벽면에 일렬로 나열된다. 사진 기자에 의해 재편집된 이들의 정서는 평범하지 않고, 평화나 고요와는 더욱이 거리가 멀다.

토마스는 여자가 남기고 간 연락처로 전화를 건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번호이다. 그는 울타리 속 형체를 한 번 더 확대하고, 나열해 놓은 사진들을 다시 한번 살펴본다. 사진이 보여주는 순간을 계속해서 되짚는다. 이윽고, 그는 공기를 무겁게 만드는 수풀 속의 형체를 알아낸다. 사람의 모습을 한 그것은 손에 총을 쥐고 있다.


마지막 퍼즐을 짜 맞춰낸 토마스는 론에게 전화를 걸어 살인미수에 그쳤던 오전의 상황을 설명한다. 토마스는 의도치 않게 찍은 자신의 우연 덕분에 늙은 남자를 구했다는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곧 오전의 사건이 미수가 아닌 살인 사건임을 깨닫는다. 도망하던 그녀의 발치에 걸려있는 것이 늙은 남자임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토마스는 사실 확인을 위해 공원을 찾고, 어둑해진 그곳에서 홀로 죽어있는 늙은 남자의 시체를 발견한다.


사진 속 파편을 모아 하나의 조감을 만들어낸 토마스는 그가 찾은 특별한 행태에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언뜻 스친 불안을 확대시켜 살인이라는 인과를 추출한 그의 집광력은 그가 조립한 전체만큼이나 환상적이다. 하지만 갑작스레 손에 쥔 낯 모를 죽음을 어떻게 거두어야 할지 알지 못한다. 그는 정처를 떠나 사람 속을 배회한다.


>>> BLOW-UP

영화에는 갈래를 달리하는 작은 사건들이 여럿 존재한다. 주인공은 살인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단순 목격자이기 때문에 그의 삶에 얽혀 있는 여러 인물들의 등장이 이상할 것은 없지만, 살인이라는 중심 플롯과 궤를 달리하는 사건의 개입은 내러티브가 탈선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벌어지는 궤도이탈은 토마스의 이목을 사로잡는 자극이자 영화의 주제이다. 솎아내지 않은 곁가지들은 다양한 욕망을 느끼는 그의 성상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때문에 한눈파는 모습이 그의 일일에 담겨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론과의 통화가 한창인 이때, 중단발의 모델 두 명이 토마스의 스튜디오를 방문한다. 그녀들과의 만남은 가야 할 목적지가 있었던 오전과 달리 홀로 남아 있는 지금, 거절할 이유가 없는 명분으로 등장한다. 예쁜 건 다 거기서 거기라던 토마스는 예쁜 그녀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장난을 가장한 신체 접촉을 벌인다.


알록달록한 원피스를 입은 그녀들은 쉴 새 없이 웃고, 떠들고, 장난하며 소음과 산란(散亂)을 일으킨다. 그들의 뒤섞임은 재미를 위한 단순한 유희이다. 동시에 성적인 농을 곁들인 본능적 끌림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것에는 책임이나 관계의 정립과 무관한 일순간의 흥일뿐이다. 그래서 토마스가 다시 자신의 사진 속 사건으로 관심을 옮겨갔을 때, 그녀들은 되려 타박을 듣고 쫓겨나듯 사라진다.

이런 토마스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그녀는 예쁘기만 한 모델들과 달리 함께 살고 싶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녀는 친구(빌)의 애인이기에 그의 손에 닿지 않고, 함께 할 수 없다. 그녀 역시 토마스의 마음을 알고 있지만, 그녀는 빌과 헤어질 생각이 없다. 따라서 그들은 친구 이상일 수 없고, 삼각관계를 이룰 가능성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친구와 사랑을 나누는 그녀를 보고 소리 없이 뒷걸음질 친 그날 밤의 연유도 삼자 일 수밖에 없는 그의 처지 때문이다.

집으로 되돌아온 토마스는 자신이 현상해 놓은 살인의 증거가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 벽과 난간 모두에 붙여놓았던 사진들과 필름마저 모두 사라지고 없다. 스튜디오 구석구석을 둘러보던 토마스는 틈새 사이에 꽂혀 있던 확대 사진 한 장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 사진은 증거로 삼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연락처도, 증거도 모두 사라져 버린 그는 론을 만나기 위해 차를 몰고 가다 공원의 여자와 비슷한 차림의 행인을 발견한다. 토마스는 그녀를 쫓아 어느 지하 공연장으로 향한다. 공연이 한창인 이때, 갑작스러운 장비 이상으로 스피커 송출이 나빠지자 분노를 참지 못한 기타리스트가 메고 있던 기타를 동강내 관중석으로 던져 버린다. 부서진 기타 넥(neck)을 잡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고, 토마스도 따라 뛰어든다.

뒤엉키는 사람들 틈에서 토마스는 사라진 그녀를 잊어버린다. 그는 기타리스트가 부러뜨린 기타 넥만을 욕망한다. 그것은 그의 욕망이라기보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에 가깝다. 애초에 밴드 공연을 위해 찾은 장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욕망의 초점이 기타 넥에 모이자 그도 같은 것을 욕망하게 된다. 일순간 그가 바라는 것은 공동의 욕망이 깃든 기타 넥을 소유하는 것이다.


자신을 쫓아오는 인파들이 사라지자 순간의 욕심도 시들해진다. 그는 꽉 붙잡고 있던 기타 넥을 쓰레기 버리듯, 길가에 버린다. 그리고 원래의 목적이었던 론을 찾아 어느 저택에 들어선다. 토마스는 자신이 겪은 이 기묘한 일화를 론에게 전하지만, 술과 마약에 취해 있는 그는 이 사건에 관심도 흥미도 없다. 론 역시 자신의 환상에 취해있고, 이외의 것에 관여하려 들지 않는다.

날이 밝자마자 토마스는 카메라를 들고 시체가 있는 공원으로 향한다. 그러나 어젯밤 보았던 늙은 남자는 흔적도 남아있지 않다. 허탈해진 토마스는 공원을 내려오다 분장을 한 젊은 무리와 마주친다. 그들은 빈 테니스장에 들어가 존재하지 않는 공과 라켓을 들고 테니스 경기를 벌인다. 그들이 내는 발소리만이 실사인 가운데, 토마스도 무성연극 같은 그들의 연기를 구경한다.


좌로 우로 네트 사이를 오가던 가상의 공이 테니스장 밖으로 떨어진다. 구경꾼들은 동시에 토마스를 바라본다. 토마스는 공을 줍기 위해 잔디밭으로 뛰어가고, 이내 공을 주워 던져주는 척 연기를 함으로써 그들의 연극에 동참한다. 그러나 테니스 경기가 재개되자 토마스의 귓가에 테니스공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토마스는 어젯밤 일어난 살인사건이 그의 욕망이 발현된 허상이었는지,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는지 확신할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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